Makers vs Takers금융자본 M&A 우려 커져'먹잇감' 될라… 재계 예의주시금감원도 견제구… 이복현 "부작용 많아"산업계 "국내 비철금속 와해될 수도"
  • ▲ ⓒ뉴데일리
    ▲ ⓒ뉴데일리
    미국의 저널리스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가 지난 2016년 펴낸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는 산업자본을 잠식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 제목에 언급한 메이커스(Makers)는 ‘만드는 자’로 비금융산업을, ‘테이커스(Takers)’는 ‘거저먹는 자’로 금융산업을 말한다.

    2024년 대한민국 산업군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르내린 기업은  ‘고려아연’이다. 초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기업을 일으킨 최 씨와 장 씨, 두 집안의 우애가 깨어지는 한 지붕 내 싸움으로 치부됐다. 오너 2세대인 장형진 영풍 고문과 3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간 세대 간 다툼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영풍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으며 분쟁의 성격이 ‘산업자본 대 금융자본간 대결’로 바뀌었다. 한국경제도 미국처럼 금융 논리가 대세로 잡은 지 오래지만, 고려아연 사태의 중심에 선 MBK는 지금까지 봐온 금융자본과는 다른 결을 띠고 있다.

    ‘만드는 자’ vs ‘거저먹는 자’…승자는?

    MBK는 기업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상적인 기업에까지 M&A(인수합병)의 손길을 뻗었다. 전형적인 ‘기업사냥꾼’에서 행동주의와 바이아웃을 결합한 ‘액티바이아웃(acti-buyout) 펀드’로 전향한 모양새로, 첫 타깃은 고려아연이 됐다.

    재계가 더욱 놀라는 점은 약탈적 금융자본 공격의 길을 열어준 장본인이 총수라는 것이다. 그것도 창업회장의 기업 성장사를 목격했고, 경영권을 물려받아 성장시켰던 오너 2세 장형진 고문이라는 점에 재계는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영풍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장 고문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MBK를 끌어들이는 데에도 장 고문이 직접 관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며 “주총 표 대결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70년 넘게 지켜온 경영권을 하루아침에 PEF에 넘겨준 것은 충격적”이라고 전했다.

    국내 재계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시대에 맞춰 지배구조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빠른 추진력과 결단력, 성패를 포괄한 무한 경영책임 등 오너 중심 경영 시스템의 순기능이 아직까지는 한국 기업 풍토에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 ▲ (왼쪽부터)장형진 영풍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 (왼쪽부터)장형진 영풍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고려아연 사태는 지배구조를 놓고 국내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벌어지는 ‘만드는 자 대 거저먹는 자 사이에 벌어지는 혈투’로 정의 내릴 수 있다. MBK에 의한 강제적인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등 재계 주요 대기업도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최근 발간한 ‘행동주의 캠페인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주주제안, 위임장 대결 등 행동주의 캠페인에 성공한 기업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천문학적 비용을 낭비하는 것을 막고 본업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동주의를 표방한 금융자본 공세의 심각성을 짚은 것이다.

    10년 전인 2014년 12월 한경협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인 당시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시장친화적인 기업구조조정 제도 구축방안’ 보고서에서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PEF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PEF를 활성화하기 위해 현재 사모투자회사에 적용되는 최소 의무투자비율 규제, 차입·채무보증에 대한 규제를 폐지하고, 기업집단 소속 사모투자에 대한 규제는 일부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0년 뒤인 현재 재계 본산인 한경협의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대한 시각은 180도 바뀌었다.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해온 견실한 고려아연도 금융자본의 표적이 돼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위협받는 현실이 목도되자 재계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한 결과로 풀이된다.

    성장전략 없이 경영권 확보 ‘몰두’

    기업은 이윤을 남겨야 하고, 주식회사는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려아연과 영풍 모두 자사주와 기관의 주식 보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일반 주주 비중은 낮아 일반 소액주주들에 대한 긍정적 혜택이 제한돼왔다.

    이번 고려아연 분쟁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르는 이유다. 장 고문 일가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 지분을 통해 막대한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 이에 장 고문과 영풍 계열사가 고려아연의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이익과 배당에 관심이 더 크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윤범 회장은 ‘만드는 자’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이 비철금속 세계 1위를 넘어 글로벌 환경 소재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차전지소재,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자원재활용 등의 신사업을 추진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제시했다. 현대차그룹, LG, 한화, 한국앤컴퍼니 등 재계 주요 그룹과도 든든한 협력 관계도 구축했다.

    하지만 영풍‧MBK의 공세로 고려아연 미래를 제대로 그려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초경쟁 상황에서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장 고문의 영풍과 김병주 회장의 MBK는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만 외칠 뿐 구체적인 성장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MBK는 특히 고려아연 사태를 금융의 틀 안에 가둬 재계 및 산업계 이슈로 확산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비금융산업 경험과 이해도가 낮은 약점을 감추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주총 표대결에서 이겨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금융자본에 함몰된 기업은 단기간 내 경영상황이 반짝 개선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성장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게 여러 사례로 증명됐다”며 “금융자본 잠식될 시 임직원들의 창의성과 능동적인 문제해결 의지, 기술개발을 위한 열정은 사그라지고,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하려는 보신주의가 팽배해져 자멸의 길로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약탈적 금융자본에 넘어간다면, 고려아연뿐 아니라 이미 수중에 들어간 영풍까지 기업 고유의 활동을 제한받아 궁극적으로는 국내 비철금속 산업의 와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오너인 최 회장을 중심으로 한 고려아연 지배구조 체제가 지속돼야 하며, 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차라리) 고려아연이 영풍을 인수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