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19일 기업금융상황 점검회의 개최“금융권 자금공급 역할, 섹터별 선제 점검”5대은행 기업대출, 2개월 연속 감소 전망주식‧채권시장, 외인 이탈에 조달창구 역할 약화
  • ▲ 김병환 금융위원장. ⓒ뉴데일리 DB.
    ▲ 김병환 금융위원장. ⓒ뉴데일리 DB.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금융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기업들의 유동성 리스크 발생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정국 혼란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 부담에 대출 문턱을 높이면 가뜩이나 환율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업대출 줄이는 은행권… 당국, 자금공급 역할 강조

    18일 금융권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오는 19일 주요 은행의 은행장들을 소집해 ‘기업금융상황 점검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금융권의 유동성 등을 점검하고 기업 경제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 운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들에 대한 자금공급과 관련해 현재 위험 시그널이 잡히거나 하진 않았지만 경제 상황이 어려운 만큼 금융의 자금공급 역할을 섹터별로 점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기업금융 상황을 점검하고 나선 것은 환율과 시장금리가 요동치는 가운데 은행권의 자급공급 역할이 위축될 경우 실물경제에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 경기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은행들은 기업대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은행과 금융지주의 자본 비율을 낮추는 고환율 영향으로 대출을 추가로 취급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탓이다.

    이달 들어 지난 12일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린‧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829조1108억원으로 전월말대비 4843억원 줄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두달 연속 감소세가 예상된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829조5951억원)은 전월 말(830조3709억원)대비 7758억원 줄어 올해 들어 첫 감소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대기업대출이 1조13억원이나 감소했다.

    통상 회계마감을 앞둔 12월에는 기업대출 잔액이 줄어들긴 하지만 11월부터 대기업대출이 1조원이나 감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1월 기준 5대 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2021년 2조5000억원, 2022년 4조2000억원, 2023년 3조6000억원 늘었다.

    올 연말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 감소를 단순히 계절적 패턴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 투자심리 ‘위축’… 채권‧주식시장 자금조달길 막힌다 

    은행 대출 등 간접조달 대신 기업들이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해 투자자로부터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 모처럼 연말 '훈풍'이 불던 회사채 시장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속되는 탄핵 정국에 투자심리가 얼어붙는 모양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직전 한 주간(11월27일~12월3일) 2조원 넘게 순증했던 회사채 발행규모는 이후 한주(12월4일~12월11일) 동안 2920억원 순감했다.

    계엄 선포 전 60bp(1bp=0.01%포인트)를 밑돌았던 크레딧 스프레드도 최근 66bp 안팎을 기록중이다. 

    크레딧 스프레드는 3년 만기 국고채와 회사채(신용등급 AA-) 간 금리 차를 뜻한다. 이 폭이 벌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웃돈(이자)를 더 줘야 회사채 거래가 가능할 정도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시장에서는 내년 초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속 국정 리더십 공백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심리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경기부진에 따른 추경용 국채발행 증가 가능성은 회사채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할 수 있는 요인이다.

    불안감이 감도는 채권시장과 달리 주식시장은 이미 계엄사태로 인한 외국인 이탈로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급락하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로서의 역할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10일 이후 전날까지 6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이면서 1조5000억원 넘는 자금을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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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40원대 위협하는 환율… 유동성관리 촉각

    문제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에도 내년 기업금융상황이 개선되기보다 악화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점이다.

    가장 큰 위협은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2주일 만에 36원 뛰면서 144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전날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1,439.7원으로 약 2년 2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인 지난 3일보다 36.0원 오른 수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자금이 한국을 이탈해 미국 주식으로 쏠리면서 원화 가치 약세 요인으로 작용될 수 밖에 없다”며 “내년 1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있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환율 상단을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환율 수준에서는 기업들의 외화 부채가 늘어 예상치 못한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들은 현금 확보가 시급해지는 반면 은행은 대출문을 더 굳게 걸어 잠궈야 한다. 환율이 높아지면 은행이 외화로 빌려준 대출의 원화 환산 값이 커지면서 자본비율 하락 요인인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환율과 주식 시장에 비해 비교적 계엄 여파가 덜했던 채권시장도 새해를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 경기 상황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에 내년 국채발행 물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면서 “한은이 연초 기준금리를 한번 더 인하해도 시장금리가 하락하지 않고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채권금리가 치솟으면 기업들이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질 뿐 은행의 대출여력도 떨어지게 된다. 은행들도 은행채 발행 등 대출을 내주기 위한 자금마련에 애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건전성 관리를 고려하면 은행들이 영업전략 차원에서 기업대출을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내년에 경기가 계속 안좋아 질 경우 정부차원에서 금융권을 통한 기업 지원책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