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 짧은 활주로·조류퇴치 부실 등 총체적 난국 드러나'고추 말리는 적자공항' 오명 벗으려 무리한 국제선 운항 정황새만금공항 등 정치논리로 짓는 신공항 전면 재검토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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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항공기 참사는 기체 결함 가능성 외에도 짧은 활주로 길이, 조류 퇴치 미흡, 공항 운영 경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대형 사고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고추 말리던 공항'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무안공항이 오명을 벗기 위해 무리하게 국제선 운항을 시도하다 참사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31일 전라남도 등에 따르면 무안공항은 2007년 개항 이후 만성적인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개항 당시 중국 상하이 등으로 주 9회 운항하며 '환황해권 거점 공항'을 목표로 했으나, 이용률이 바닥을 치면서 전국 공항 15곳 중 최하위를 기록하는 상황이 반복됐다.2022년 기준 무안공항의 활주로 이용률은 0.1%에 불과했다. 비행기가 연간 1000번 뜨고 내릴 수 있다면 실제로 이착륙을 한 것은 한 번뿐이었다는 뜻이다. 하루 평균 100명도 채 안 되는 이용객 수로 인해 '고추 말리던 공항'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얻었다.무안공항의 활주로 길이도 문제였다. 개항 당시 2.8km 길이의 활주로로는 대형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했다. 이에 전남도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활주로 길이를 3.126km로 늘리는 연장 공사를 진행 중이었고, 이 공사로 인해 무안공항 활주로는 300m가량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실제 이용 가능한 거리는 2.5km였던 셈이다.◇ 무안공항 5년 적자만 1000억… 지방공항 적자 메우려 혈세 펑펑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무안공항은 최근 5년간 1000억원 이상의 누적 적자를 냈다. 이는 무안공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천, 김포, 제주, 김해 공항을 제외한 지방 공항 대부분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특히 대구국제공항을 제외한 광주공항, 울산공항, 청주국제공항, 양양국제공항, 여수공항, 사천공항, 포항경주국제공항, 군산공항, 원주공항 그리고 무안국제공항 등 10개 공항은 2014년부터 10년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었다.지방 공항들이 저조한 성과를 내는 이유는 고속열차 등 지상 교통망의 발달과 지역 인구 유출로 항공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방 공항 건설 및 운영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공사에는 약 500억원이 투입됐으며, 최근 국회에서 추가로 100억원의 예산이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쪽지예산'으로 불리는 비공개 협상으로 예산이 확대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무안공항은 광주공항과 불과 40km 떨어진 인접 지역에 위치해 있다. 두 공항을 통합하자는 논의가 지속됐으나 지역 정치권의 반발로 무산됐다.무안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 착공해 2007년 개항했다. 인근에 공항이 있는데도 선심성 공약으로 추진돼 당시 사업을 주도한 한화갑 국회의원의 이름을 따 '한화갑 공항'으로 불린다.공항 건설 전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던 무안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23만2700명 수준에 불과했다.◇ '관문' 경쟁 들어간 지역 정치권… '에어 포퓰리즘'의 현실지방공항 대부분이 적자를 보이고 있지만 신규로 건설이 추진되는 공항은 10곳에 이른다.특히 2029년 개항 예정인 새만금국제공항이 호남권 관문공항 위상을 두고 무안공항·광주공항 등과 다투게 될 예정이다.새만금공항은 전북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2019년 예타 면제가 확정됐다. 새만금공항이 개항하면 지금도 낮은 무안공항의 이용객 수요가 더 분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역에 들어서는 신공항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고 건설된다"며 "이용객 수요, 노선 계획 등은 뒷전이고 지역주민의 숙원 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지어진다"고 설명했다.황 교수는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곳에 무리하게 공항을 짓는 것은 오히려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며 "11개 공항이 적자인데 10개를 또 짓는 것은 '에어 포퓰리즘'이다"고 비난했다.지역 균형 발전을 명목으로 지역별로 공항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사업이 추진되다 보니 실제 활용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무분별한 지방 공항의 건설로 항공사가 파산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은 99개의 공항을 보유하고 있지만 과도한 지방 공항 건설과 무리한 운항으로 인해 2010년 일본항공(JAL)이 파산하는 사태를 겪었다. JAL 파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지방 정치권이 비행기 운항을 강요하면서 발생한 운영 적자였다.황 교수는 "(신공항 건설에 앞서) 객관적인 수요 및 경제성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건설된 신공항엔 '무분별한 건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