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분 이익잉여금 사상 최대코로나 후 지속 증가 … 불확실성 대비차세대 반도체 및 미래 먹거리 투자 시급총수 부재에 대규모 재원 활용 쉽지 않아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달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정상윤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달 3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정상윤 기자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미처분 이익잉여금(사내 유보금)이 146조를 넘겨 사상 최대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재원 활용은 또 다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압박이 이익잉여금 활용과 기업가치 제고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삼성전자의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연결 미처분 이익잉여금은 146조886억원으로 나타났다. 직전년 말 138조4542억원 대비 5.5% 늘어난 수준으로, 역대 최대였던 2022년 145조6519억원을 넘어섰다. 

    미처분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법인세까지 납부하고 남은 순이익 가운데 투자나 배당 등으로 쓰지 않고 사내에 쌓아둔 이익을 뜻한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외에 재고자산, 유·무형자산 등 여러 가지 자산 형태로 존재하므로 ‘곳간에 쌓아둔 돈’이라는 단순 인식은 어려우나, 이를 채권 삼아 자사주 매입 등으로 활용할 여지는 충분하다.

    삼성전자의 사내 유보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근 몇 년간 지속 증가하고 있다. 2019년 86조2600억원이었던 삼성전자의 미처분 이익잉여금은 2020년 96조3286억원으로 늘었다. 이후 2021년에는 122조2506억원으로 처음으로 100조를 넘겼으며, 2022년 145조6519억원까지 확대됐다. 2023년에는 138조4542억원으로 직전년 대비 소폭 줄었다. 

    이러한 증가는 코로나 이후 지속 늘고 있는 국내외 지경학적 불확실성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2020년 코로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이어지며 유가, 물가, 금리 등의 변동성이 커졌다. 여기에 주력인 반도체 산업의 혹한기까지 겹치며 외연을 확대하기보다 충분한 자금 확보로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재고자산 역시 2019년 26조7664억원에서 작년 말 51조7548억원으로 6년간 93.4% 증가하며 유보금 확대에 일조했다.

    미처분 이익잉여금의 증가는 자본총계 확대와 부채비율 하락 등 재무안정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업이 보유한 자금을 적극적으로 투자에 활용하지 못하면, 기회비용 상승과 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및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시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을 둘러싼 10년간의 사법리스크 때문에 대규모 투자 집행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부정거래,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의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그러나 1심에서 19개 혐의 전부에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달 3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등기이사로의 복귀와 대규모 투자 등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기대감이 반영되며 다음날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날 대비 3.3%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대법원 상고를 강행키로 결정하면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는 물 건너 가게 됐다. 1심과 2심에서 19개 혐의 모두 무죄가 나온 만큼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나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사법리스크가 수년 더 이어지게 되면서 대규모 투자도 사실상 당분간 어려워지게 됐다.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되듯 검찰의 상고가 결정된 지난 7일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법적 불확실성이 투자 결정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만큼 대규모 자본을 집행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총수의 의사 결정 없이 독단적으로 커다란 M&A를 실행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등 핵심 사업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시급한 시점에서 이재용 회장의 법적 문제는 투자 집행을 지연시키는 주된 요인”이라며 “향후 법적 분쟁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 한 삼성전자의 기술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보금의 증가는 단기적 재무 안정성은 보장하지만, 장기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법적 문제 해결과 함께 신속한 투자 집행이 필수적”이라며 “현재의 법정 공방이 조속히 마무리되어야 향후 투자 결단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