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개정안 입법예고 종료 후폭풍산업계 '환영' vs 의료계·환자단체는 “실험 대상화·제도 왜곡"산업 활성화 중요한데 … 안전·효과성 검증 미흡이 최대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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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신의료기술 관련 '즉시 진입 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의료기기·AI 업계는 규제의 허들을 넘는 산업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까지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고 의견서을 받았다. 개정안은 식약처 허가를 받은 신의료기기를 복지부와 협의해 신의료기술로 인정하면 의료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12일 AI 기반 진단보조 기술 등 의료기기 기업들은 제도 도입이 상용화 속도를 높이고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 AI 기업 관계자는 "외국에 비해 늦어지고 같은 기술임에도 진입 시기가 달랐던 만큼 이번 개정안은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빠른 시장 피드백을 통해 기술 고도화와 데이터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료계는 선진입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올초 대한영상의학회가 주최한 '진단보조 인공지능의 적절한 적용' 포럼에서 해당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당시 발제를 맡은 최준일 가톨릭의대 교수는 "정부가 선진입 제도의 진입 장벽을 계속 낮추고 있지만 이는 결국 제도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즉시 진입 제도는 기업이 검증 노력 없이 수익만 올리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우러했다. 

    박성호 서울아산병원 교수도 "AI 기술은 현장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오류를 낼 수 있어 정밀한 검증이 필수"라며 "전문가 주도의 성능 모니터링과 명확한 퇴출 기준 없이는 의료현장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비급여 폭탄, 환자·시민단체 반대의견 제출 

    정부의 이번 개정안에 대해 시민사회와 환자단체는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공개 의견서를 통해 "정부가 식약처 허가만으로 의료기술을 3년간 시장에 비급여로 사용하게 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라며 "신의료기술평가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기존의 신의료기술 유예제도보다 훨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며 평가 기능을 단순한 등급 분류 수준으로 격하시킨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운동본부는 "그간 비급여는 최소한 안전성과 효과는 검증된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기술이 그대로 환자에게 적용되고 의료비는 고스란히 환자 부담으로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중질연)도 보건복지부에 공식 반대 의견서를 내고 "희귀·난치 질환자들의 절박함을 악용해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비용 자부담 형태로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인체 실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신의료기술 사용 현황 보고 주기를 매월에서 반기로 완화한 점에 대해서도 "감시 기능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비급여 기술이 퇴출 없이 시장에 남아 환자 부담만 가중되는 구조는 명백히 기업의 수익만 보장하는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건강보험 보장률은 더 낮아지고 국민의료비를 높리는 비급여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산업계 일부 "검증 책임 공감 … 제도 설계 개선 필요"

    일부 기업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준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기업’의 일탈을 걸러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시장 진입을 위해 막대한 투자와 연구를 진행한 업체일수록 부담이 커진다. 

    AI 기반 의료기기 관계자는 "규제가 풀려 우후죽순 쏟아지기 전에 검증을 위한 시험은 반드시 필요하며 신뢰 있는 기업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의학적 근거를 쌓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제도의 실효성과 공정성 확보가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마무리하고 최종 시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기술 혁신과 환자 안전, 그리고 의료비 부담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