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심사 논란 재점화 … 한의사들 "보험사 진료 통제권 확대" 격분국토부 "과도한 장기치료 방지 목적 입법예고" … 나이롱환자 차단 일환 의협-한의협 직역갈등 일단 접고 공동대응 전선 구축 촉각
  • ▲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지난 23일 국토교통부 청사 앞에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펼쳤다. ⓒ대한한의사협회
    ▲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지난 23일 국토교통부 청사 앞에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펼쳤다. ⓒ대한한의사협회
    교통사고 환자의 치료 연장 여부를 두고 의료계와 국토교통부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국토부는 보험사의 진료비 심사 권한 확대가 아니라 일부 부정수급 차단을 위한 제도 정비라고 설명했지만 각 단체는 진료권을 보험사에 넘기는 구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공동 대응에 나서면서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일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경상환자의 치료기간을 최소 8주로 보장하되 경상환자가 8주를 초과해 치료를 희망하는 경우 진단서, 치료경과기록지 등으로써 치료 경과 확인 및 필요성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이를 두고 한의협 측은 "치료 연장 여부를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셀프 심사' 도입"이라고 규정했다. 윤성찬 회장은 국토부 앞에서 입법예고 반대를 위한 1위 시위를 벌였다. 

    유창길 한의협 보험부회장은 "이번 개정안은 보험사의 비용절감만 고려한 졸속 입법이다. 환자가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면 행정적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 "보험사가 환자 자료를 자의적으로 평가하는 구조는 공정성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 관계자 역시 "교통사고 환자의 진료 지속 여부는 반드시 임상 경험이 있는 의사가 판단해야 한다"며 "의료전문가 판단이 배제되면 환자 권익 침해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나이롱환자 차단책 일환 … 국토부 "셀프 심사 과장된 주장"

    국토부는 의료계의 '셀프 심사'라는 비판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자동차운영보험과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개정안은 감사원의 지적에서 출발했다"며 "'향후 치료비'라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치료 종료 이후에도 부당 합의금을 청구하는 부정수급 사례가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향후 치료비'란 개념은 실질적인 치료가 종료됐음에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치료를 가정해 미리 보험금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국토부는 "대부분은 합리적 수준에서 합의금 개념으로 활용되지만 장기 치료를 지속하거나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존재했다"며 "감사원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아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 금융당국 협의 끝에 경상환자의 치료 종결 기준을 기존 의협의 4주보다 두 배 늘린 8주로 설정하고 그 이후 치료가 필요할 경우 환자가 직접 치료 경과 자료를 보험사에 제출하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국토부는 "8주 이후에도 추가 치료가 필요한 진짜 환자는 자료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장기치료 유발을 방지하는 최소 장치"라며 "보험사가 진료비 자체를 심사하는 구조는 아니다"며 "진료비 심사는 계속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맡으며, 보험사는 단지 추가 치료 필요성 여부를 1차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국토부는 이 제도가 오히려 합리적 기준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그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 분심위 구성부터 파행 … 보험사 중심 재편 의혹 증폭

    이번 논란은 이미 자동차보험 진료수가분쟁심의위원회(분심위) 구성 과정에서도 촉발된 바 있다. 그간 의료 전문가가 맡아온 위원장직을 국토부가 비의료인 변호사로 내정하려 하면서 의료계의 격렬한 반발이 일었다.

    분심위는 보험계 6명, 의료계 6명, 공익 6명으로 구성된다. 의료계는 의협, 병협, 한의협이 각각 2명씩 추천한다. 현재 위원장직은 공석이다.

    한의협 측은 "분심위는 의료적 필요성을 심사하는 곳인데 보험사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가 심판을 맡겠다는 발상 자체가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이런 구조가 유지되면 심의회는 결국 보험사의 진료비 삭감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토부는 위원장 인선 논란과 관련해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의료계는 이를 두고 전반적인 '보험사 중심 재편 시도'라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 기습 입법예고까지 이어진 갈등… 醫韓 공동전선 구축

    입법예고 기간 중 갈등은 심화할 전망이다. 그동안 의료계와 협의를 이어오다 새 정부 장·차관 임명 직전 갑작스럽게 입법예고를 한 것에 대해 의료계는 "정권 교체 혼란기에 보험사의 숙원사업을 밀어준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의료직역 차원에서 이번 사안은 '보험사 중심 구조 개편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국토부는 분심위 일부 기능을 산하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논의했지만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사·한의사 단체 간 오랜 직역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됐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의료인의 전문성을 배제한 진료비 통제는 환자 권익과 공공보험 재정을 침해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토부 해명이 이어지고 있지만 반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향후 새 정부 체제 아래에서 국토부와 의료계가 재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