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과 기피·인기과 쏠림 그대로 … 1년 6개월 공백, 구조적 문제만 재확인줄어든 근무시간과 당직 배제 등 요구 … PA 간호사와 업무 충돌 불가피환자·시민사회 "특혜 협상, 국민 외면한 이중 잣대" 반발
-
- ▲ ⓒ뉴데일리DB
2025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전국 수련병원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지난해 2월 의대증원 반발로 집단 사직한 지 1년 6개월 만에 복귀 절차가 열리면서 정부는 초과정원까지 허용해 '수련 연속성 보장' 요구를 수용했다. 숫자만 보면 공백 해소가 가시권에 들어온 듯 보이지만 의료 현장은 마냥 반기지 않는다. 필수과 기피·인기과 쏠림, 교수·전공의의 감정 대립, PA(진료지원) 간호사와의 업무 경계 다툼 등 갈등의 뇌관이 곳곳에 깔렸다.특히 지난 12일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가동돼 2027년 의대정원 논의를 시작했으나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한의사 참여를 요구하는 등 직역 갈등의 구도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만약 이번에도 증원 규모가 크면 재차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인기과 쏠림, 기피과 악순환 더 심해졌다복귀 물꼬가 트였지만 지원 쏠림은 오히려 심화됐다. 최근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대비 6월 전공의 수 증가폭이 가장 컸던 과는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정형외과, 비뇨의학과 순이었다.반면 내과·응급의학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모두 성형외과 증가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의료계 관계자는 "필수과는 의정 갈등 이전에도 지원 미달이 잦았는데 이번 사태로 사직 전공의 상당수가 복귀를 포기하면서 공백이 더 커졌다"며 "이대로면 일부 필수과는 당직과 수술 일정조차 정상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당직은 못 한다" vs "수련 핵심 무너진다"서울 주요 병원의 일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은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심야 당직 제외'를 조건으로 달았다. 내과·외과·산부인과 등 근무 강도가 높은 필수과일수록 당직 거부, 근무시간 제한, 업무 선택권 보장 등 다양한 요구가 나온다.정부는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에서 72시간으로, 연속근무를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였다. 이를 두고 일선 교수들은 "당직은 위기 대응과 술기 능력 훈련의 핵심"이라며 "줄어든 수련 시간이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반면 전공의들은 "주야를 오가는 당직 등 고강도 근무는 소위 '의노예'라는 자조적 형태의 단어로 불렸다. 과거 당직은 교육이 아니라 착취였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의정 갈등 국면에서 일부 전공의들이 교수들을 '중간착취자'라 비난한 이후 양측의 신뢰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복귀를 앞둔 상황에서도 "예전처럼 강하게 지도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 교수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한 서울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혹시라도 부당 대우 논란이 될까 전공의 눈치를 보게 된다"며 "지도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전 모시기'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이미 복귀해 근무 중인 전공의들도 긴장감을 숨기지 못한다. 한 복귀 전공의는 "교수님이 '나갔던 애들이 돌아오면 편해지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힘든 일은 너희 몫'으로 들렸다"며 "복귀 전공인 동료와의 관계가 더 불편해질 것 같다"고 했다.◆ 환자·시민사회 "전공의 특혜 협상, 국민 외면한 이중 잣대"전공의 복귀를 둘러싸고 환자·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등은 "전공의 집단행동은 위법이자 윤리적 일탈로, 그 피해자는 국민과 환자"라며 "복귀의 전제는 위법 행위에 대한 책임·재발방지 대책·진정성 있는 사과여야 한다"고 밝혔다.이들은 전공의 단체가 사과를 '복귀 협상 수단'으로 활용했다며 군입대 전공의 수련 연속성 보장·병역 휴직제·수련정원 보장 등 요구사항을 '특혜'로 규정했다. 정부가 이를 비공개 협상으로 수용한 점도 강하게 비판했다.또한 본과 3·4학년 의대생의 8월 졸업 허용과 국시 추가 시행 추진 보도에 대해서도 "노동 파업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면서,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병원 손실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메우는 이중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이들 단체는 정부·국회에 공청회 개최, 특혜 논란 해명, 공공의료 강화 방안을 즉각 발표할 것을 요구했다.◆ PA 간호사와의 '업무 탈환전'의정 갈등 장기화로 대형병원들은 PA 간호사 인력을 평균 70% 이상 늘렸다. 봉합, 삽관, 튜브 관리 등 원래 전공의 업무였던 영역을 상당 부분 맡겼고, 일부 병원은 전공의 전용 공간을 PA 사무실로 전환했다.복귀 전공의가 돌아오면 '업무 탈환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병원은 효율성을 이유로 PA 운영을 유지하려 하고, 전공의는 교육 기회 확보와 전문성 강화를 이유로 업무 복귀를 요구한다.◆ 전공의 없는 체계 적응 … 의대교수협 "미래 포기" 경고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는 1년 6개월간 전공의 없이도 진료와 운영을 유지해온 경험 때문에 복귀 이후에도 인력을 최소화해 수련교육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전공의 없이도 병원이 돌아간다'는 판단 하에 굳이 예전처럼 대규모로 뽑아 시스템을 재편하기보다 소수만 선발해 교수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자는 기류다.이에 대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의대교수협)는 즉각 반박했다.이들은 "전공의 수련은 미래 전문의를 만드는 국가적 투자다. 수련을 회피하려는 것은 상급종합병원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라며 "복귀를 결심한 전공의들이 다시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와 병원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귀 이후 6개월, 한국 의료의 시험대정부는 이번 하반기 인턴 3006명, 레지던트 1년차 3207명, 상급연차 7285명 등 총 1만3498명을 모집했다. 현재 수련 중인 전공의 2532명을 포함하면 1만6000명 이상이 된다.하지만 숫자만 채운 복귀는 문제 해결이 아니다. 필수과 인력난과 인기과 쏠림은 오히려 심화되고, 당직 기피·업무 충돌·감정 대립이 얽히면 복귀 후유증은 장기화할 수 있다.특히 향후 6개월은 사실상 '카운트다운'이다. 전공의 복귀 이후 병원 운영이 정상화되는 데 걸리는 시기이자, 정부가 약속한 수련환경 개선과 제도 개편 성과를 내야 하는 정책적 시한이기도 하다.내년도 신규 전공의 모집 구조를 안정시키려면 올해 하반기 안에 필수과 인력 충원, 당직 정상화, 교수-전공의 갈등 봉합, PA 간호사와의 업무 재정립이 마무리돼야 한다.결국 이번 복귀는 의정 갈등의 종결점이 아니라, 한국 의료의 체질을 다시 시험하는 출발점이다.이 6개월을 넘겨야만 복귀 전공의가 진짜 '수련생'으로 자리잡을 수 있고 K-의료가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다. 실패한다면 1년 6개월의 사달 끝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같은 위기가 반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