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성' 등 인기과 복귀율만 안정적기피과 현실 그대로 드러나 … 필수·지역의료의 몰락 전문의 초인적 근무와 한시적 수가 지원으로 버텨온 현장공공의대 담론과 전공의노조 출범 … 환자 없는 논쟁으로는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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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와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는 '예년의 76.2% 회복'이다. 정은경 장관은 "상당수 사직 전공의가 복귀해 의료체계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 평가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안도할 만하다. 그러나 응급실과 소아과 등 기피과를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충원율은 40%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가 말하는 정상화의 그림 속에서 응급실은 여전히 텅 비어 있다는 것으로 그야말로 '평균의 함정'이다.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일부 대학병원은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전공의 교육 자체가 끊길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내세운 평균값 뒤에는 이렇게 절박한 현실이 숨어 있다.

    ◆ 응급실은 여전히 비상체제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수도권,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응급의학과는 40% 초반에 머물렀다. 정상화를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4일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기존 8명 전공의 중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또 다른 대형병원은 16명 중 4명만 복귀했다.

    응급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1년 반 동안 1600여 명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초인적 근무와 정부의 한시적 지원 덕분이었다. 전공의 공백 속에서도 이들은 중증외상,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생사가 걸린 환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24시간 버텼다.

    특히 응급진료 전문의 진찰료 인상과 인상분의 50% 이상을 전문의에게 직접 보상한 조치는 현장에서 가장 큰 효능감을 줬다. 그동안 원가 이하로 책정돼 있던 응급의료의 저보상 구조를 잠시나마 메워준 것이다. 

    실제로 건정심 보고에 따르면 2024년 2월 이후 3300억원이 투입돼 응급의료체계 유지에 쓰였다. 이 정도가 과도한 지출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국민들이 응급실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얼마나 유한한 자원인지 절감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정부 내부에서는 이 지원책을 '비상시기 한시적 조치'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코로나19 긴급 대책처럼 종료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끊이지 않는다. 이 교수는 "응급진료 전문의 진찰료 인상과 직접 보상은 현장에서 효능감이 컸던 정책이다. 상시화가 절실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 무너진 소아청소년과, 기피과 현상 가속화   

    응급실과 나란히 위기라는 점에서 소아청소년과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13.4% 수준에 그쳐 소아청소년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일부 대학병원은 지원자가 전무해 사실상 수련이 중단될 위기다.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는 단순히 한 전문과의 몰락이 아니다. 신생아 진료와 영유아 예방접종, 소아응급 등 필수의료 전 영역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적 문제다. 이미 전국적으로 분만병원과 소아전문병원이 문을 닫고 있으며, 지방은 아예 소아전문 응급실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도권 대형병원조차 전공의 부족으로 소아응급센터 운영 축소를 고민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맞물려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는 사회는 미래세대의 안전망이 무너지는 사회다. 응급실 위기와 소아청소년과 붕괴는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가진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며, 지금 당장 수술대에 올려야 할 응급 과제다.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심장혈관흉부외과,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기피과의 복귀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인기과인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은 90%을 웃돌며 정원을 채우는 형태로 정리됐다. 

    한 지방 수련병원 교수는 "인기과와 기피과의 격차는 더 심해졌고 지역의료의 공백을 메꾸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의료정상화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 전공의 노조는 생겼지만 환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일 대한전공의노동조합(전공의노조)이 공식 출범했다. 유청준 위원장은 “혹사의 정당화는 끝났다. 전공의는 노동자이며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첫 활동으로 신고센터 운영과 실태조사를 내세운 것도 병원 내 불법적 근무 관행을 제도권으로 끌어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료대란의 피해자인 환자들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응급실과 소아청소년과의 붕괴가 현실화되는 가운데, 전공의노조 출범이 환자 안전을 위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기피과 회피는 여전하고, 의료 현장의 무너진 필수의료는 그대로인데 '전공의는 노동자'라는 구호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부 의사단체는 환영했지만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노조의 팽창이 아니라 무너진 필수과의 회복이다. 의협 역시 '시대적 흐름'이라 평가했으나 노동조합 담론만 커지고 환자 안전 담론은 사라진다면 의료계는 또 한 번 국민과 멀어질 것이다.

    ◆ 공공의대로 응급실·소아과 현실을 가릴 순 없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운영 계획에서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병원 확충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아무리 빨라야 5~10년 뒤 효과를 볼 수 있는 장기 과제다.

    정작 오늘 밤, 환자가 밀려드는 응급실과 소아응급센터에는 전공의 공백이 여전하다. 응급의료 지원책을 '임시방편'으로 치부하고 접어버리는 순간 공공의대 담론 역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5년 뒤의 제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자정에 뇌출혈로 실려간 환자를, 발열로 숨 가빠진 아이를 살려줄 의사다.

    정부는 평균 숫자 뒤에 숨어 정상화를 말한다. 그러나 응급실과 소아청소년과만 놓고 보면 그 숫자는 착시일 뿐이다. 전공의노조 출범이 환자 없는 구호에 머무른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기만일 것이다. 

    진짜 안정화는 응급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상시적, 구조적 지원에서 시작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