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정부, 작년 7월 한수원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웨스팅하우스 "韓이 기술 도용" … 체코 정부에 진정美과 관계 부담 느낀 체코 "분쟁 해결해야 최종 계약""웨스팅하우스 시공 능력 없어 결국 韓에 손 벌리는 구조""경영진들,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불가피한 선택한 듯"
  • ▲ 체코 두코바니 원전 조감도 ⓒ한수원
    ▲ 체코 두코바니 원전 조감도 ⓒ한수원
    26조원 규모 체코 원자력발전소 수주 과정에서 우리 측과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비밀 합의서 내용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향후 50년 동안 우리나라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에 1조원을 내고, 북미·유럽 등 주요시장엔 한국이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인데, 이런 비밀 계약을 맺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이 지난해 11월 웨스팅하우스와 작성한 합의문에는 한국이 원전 수출을 할 경우 웨스팅하우스에 최소 1조원 이상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원전을 수출할 때 1기당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에게 제공하고, 원전 1기당 1억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내야 한다.

    한수원·한전이 웨스팅하우스에 약속한 원전 1기당 6억5000만 달러 규모의 일감 목록에는 원자력 제어계측시스템(MMIS), 핵증기 공급 계통(NSS) 등 핵심 기자재와 시스템이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또 우리 기업이 소형모듈원전(SMR) 등 독자 기술 노형을 개발해 수출할 때도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한국 측이 SMR을 포함한 모든 차세대 원전을 독자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을 받는 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웨스팅하우스 측이 한국의 원전 수출 여부를 승인하는 구조다. 계약 기간도 50년에 달해 원전 주권을 미국에 내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한국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원전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 합의문에는 북미·유럽·일본·영국·우크라이나 시장은 웨스팅하우스만 독점적으로 수주 경쟁에 나설 수 있고, 한국 측은 중동·동남아·아프리카 일부 국가만 진출할 수 있도록 명시됐다.

    실제로 한수원은 지난 1월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를 발표한 이후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에 이어 폴란드에서까지 원전 사업을 접기로 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폴란드 원전 사업 철수 계획을 묻는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일단 철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한수원은 그동안 폴란드를 유력한 추가 원전 수출 후보지로 보고 공을 들여왔고 현재도 현지 사무소를 두고 있는데, 사업 철수 의사를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 ▲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과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과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원전 수출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한수원 측은 웨스팅하우스와의 비밀 계약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웨스팅하우스가 발목을 잡을 경우 계약 무산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체코 정부는 한수원을 두코바니 5·6호기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같은해 8월 "한국이 원천 기술을 도용했다"고 주장하며 체코 정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제동을 걸었다. 이 때문에 체코 정부와의 최종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당시 사정에 밝은 원전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체코 정부는 미국 측의 항의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한수원 측에도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을 먼저 해결해야 최종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 핵심 관계자는 "미국과의 관계에 부담을 느낀 체코 정부가 웨스팅하우스와 분쟁을 해결하고 오라고 선결 요건으로 제시를 했다"면서 "당시 웨스팅하우스와 분쟁을 계속 끌고 갔을 경우 최종 계약이 물건너 갈수도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수원 측이 원천 기술만 보유하고 시공 능력은 없는 웨스팅하우스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신규 원전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결국 한국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보고 합의서를 작성해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는 원천 기술만 있고 시공이나 운영 능력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결국 한국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백을 못 먹는 한이 있더라도 일부라도 먹으면 국내에 있는 원전 서플라이 체인에 도움이 된다고 저희들은 판단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영진들이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 아니었겠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황주호 사장은 전날 국회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그 수준은 저희가 감내하고도 이익을 남길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웨스팅하우스가 수주에 성공한 원전에 두산에너빌리티·현대건설 등 한국 기업과의 협업을 늘리고 있어 국내 원전 생태계에 득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한수원과 한전 이사회에서 비밀 합의 관련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 만큼 불공정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한 재협상 가능성을 적극 타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편, 대통령실은 비밀계약 논롼 관련 즉각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강훈식 비서실장이 한수원·한전 및 웨스팅하우스 간 협정에 대해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진상 내용을 보고하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