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50년까지 원전 300기 건설 … 시장 규모 4000조 추정한수원, 美 웨스팅하우스와 손 잡고 합작 투자사 설립 추진美 시장서 유리한 고지 선점하면 한국 경제 '신성장 동력'원천기술 없는 韓, 美와 제3국 공동 진출 가능성도 열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원전 건설 지원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원전 건설 지원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초 체코원전 수주 과정에서 맺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비밀 협약이 공개되자 '굴욕 계약' 논란이 거세다. 우리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장비 구입·기술 사용료로 향후 50년 동안 1조원 넘게 지불해야 하고 세계 원전 시장의 3분의 2를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여당에선 "매국적 불평등 계약"이라며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는 미국 내 신규 원전 300기를 건설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원전 정책에 'K원전'이 참여할 길이 열리는 등 한미 양국의 '윈-윈'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오는지 세 차례에 걸쳐 자세히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 6월 최종 수주한 체코 두코바니 신규원전 2기의 수주액은 26조원이다. 그런데 미국은 2050년까지 25년 동안 약 300기(1기당 1GW 기준)의 신규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단순 산술적 계산만 해도 미국의 신규 원전 시장 규모는 4000조원에 달한다.

    미국의 물가와 비싼 원자재값,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시장 규모는 이보다 훨씬 거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수원이 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와의 조인트 벤처(JV·합작투자사) 설립할 경우 이런 거대한 미국 신규 원전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조선업 부흥 전략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뛰어넘는 한미 원전 동맹으로 작용해 한국 원전이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은 물론,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일으켜세울 신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한수원에 따르면, 황주호 사장을 비롯한 한수원 임직원 20여명이 이날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번 방미는 미국 내 다양한 기업들과 원전 산업 내 전략적 협력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1월 모든 법적 분쟁 중단하고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한다고 선언한 뒤 JV 설립을 물밑에서 추진해 왔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미국 기업 관계자들을 다양하게 접촉해 JV 설립에 관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미국 방문에서 JV 설립 관련 서명식은 진행되지 않는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JV 설립 추진은 미국 원전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설계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시공 및 운영 능력이 없어 단독으로 원전을 건설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합의에서 한수원이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1조1400억원을 내도록 했지만, 결국 설계·시공·운영 등 전주기 원전 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구조라는 게 원전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내야 하는 1조1400억원 중 약 9000억원은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머지 2400억원은 기술 사용료다.

    한수원 관계자는 "물품 및 용역 계약 비용 9000억원은 웨스팅하우스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누군가에게 구매해야 할 돈"이라며 "실제로 웨스팅하우스에 주게 되는 돈은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라고 설명했다.

    미국 신규 원전 시장은 급속도로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신규 대형 원자로 10기를 건설하고 2050년까지 현재 100GW(기가와트) 수준인 원전 용량을 4배인 400GW까지 늘린다는 구상을 밝혔다. 원자로 1기 용량 약 1GW 규모다. 향후 25년간 총 300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한수원이 지난 6월 최종 계약에 성공한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의 수주 금액은 26조원으로 1기당 13조원 꼴이다. 이를 미국 시장에 적용하면 단순 산술적 계산만으로 약 4000조원에 육박한다. 

    원전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수원이 체코 원전을 수주할 당시 프랑스 전력공사(EDF) 등 경쟁자들보다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우월했기 때문에 가격이 낮았다"며 "미국의 경우 체코와는 다르다. 25년 동안 자재 비용, 물가 상승 비용, 높은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그 이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팀 코러스(KORUS·Korea+US)'를 구성해 미국 외에도 유럽 등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원전 기술 종주국으로, 자국의 원천 기술이 포함된 원자력 관련 제품이나 기술을 제3국에 수출할 때 반드시 미국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의 동의 없이는 한국 독자적으로 해외 원전 수출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는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미국 원전 시장에 진출하게 되고, 이걸 계기로 우리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도 있다"며 "원전 분야 상호 협력이 더 발전하게 되면 제3국에 공동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