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신규원전 공론화 필요" … 사실상 재검토 시사 李대통령도 "원전건설 15년 걸려 AI 전력대응 현실성 없어" '탈원전 시즌2' 신호탄에 한수원, 원전 등 부지선정 보류 가능성
  • ▲ 하늘에서 바라 본 고리원전 ⓒ연합뉴스
    ▲ 하늘에서 바라 본 고리원전 ⓒ연합뉴스
    최근 원자력발전 관련 정부 조직이 세 갈래로 쪼개진 가운데 김성환 환경부 장관과 이재명 대통령이 잇달아 이미 확정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고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른바 '탈원전 시즌2'가 시작될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환경부에 따르면 김성환 장관은 지난 9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원전은 안전을 담보로 계속 연장해 쓰더라도 원전을 신규로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사실상 신규 원전 건설 원점 재검토 입장을 시사했다.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2038년까지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건설 계획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뒤엎을 수 있다는 뜻이다. 환경부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돼 에너지 정책을 맡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회기할거란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향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으로 늘어날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원전 건설'은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며 현실 가능한 대안은 재생에너지뿐이라고 못박았다.  

    이 대통령은 "데이터센터 등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니 원전을 짓자고 하는데, 맹점이 있다. 원전을 짓는데 최소 15년이 걸린다"면서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그 얘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15년간 적용되는 전기본은 장기 전력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발전 설비를 어떻게 채울지 계획을 담은 문서다. 11차 전기본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으로 전력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2038년 전력 수요가 현 수준보다 약 30% 급증할 것으로 판단, 총 2.8GW 설비용량 원전 2기를 2037∼2038년에 도입하고 '차세대 미니 원전'인 SMR도 2035∼2036년에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실무안에서는 3기의 대형 원전 건설이 포함됐으나 여야 간 협상에 따라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로 결론났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2015년 7차 전기본 후 10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마련된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멈춰선 원전 생태계가 다시 복원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번 김 장관의 발언에 따라 사실상 이전 정부의 성과인 11차 전기본은 유명무실해졌다. 올해 하반기 공식 논의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12차 전기본도 김 장관의 신규 원전 재검토 가능성 언급에 따라 사실상 신규 건설 안을 축소 또는 폐기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조직이 사실상 환경부로 이괸되는 정부 조직개편안이 공개되자 원전 정책이 축소될 거란 우려는 이미 확산 중이다. 원자력 연구개발(R&D) 및 규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전 산업은 산업부로 이미 기능이 나뉘어 있었는데, 다시금 원전 산업 정책은 기후부가 맡고 원전 수출은 산업부에 존치되는 등 원전 관련 기능이 세 갈래로 쪼개지면서 원전 정책의 협업 기능을 약화해 '탈원전 악몽'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11차 전기본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에 따라 확정한 중요한 내용인데, 다시 '물음표'를 던진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탈원전을 주장했던 장관이 12차 전기본에서 다시 내용을 담겠다는 것은 향후 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겠다는 시그널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탈원전 시즌 2를 연상케하는 현 정부의 원전 정책 기조에 따라 11차 전기본이 사실상 엎어질 위기에 놓이면서 한국수력원자력이 12차 전기본 확정 때까지 원전과 SMR 부지 선정 등 관련 절차를 보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수원은 이번 조직개편안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기관으로 옮겨진다.

    한수원은 올해 2월 계획 확정 후 연말까지 원전과 SMR 부지를 확정할 계획을 세우고 3월에 신규원전 부지선정 절차 알림을 통해 2025년 하반기에 유치 지역 공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9월 현재까지 한수원은 공모 절차를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SMR 부지 선정 절차가 미뤄진다면 정부가 지난달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 발표한 'SMR 산업 생태계 구축 및 수출 동력화' 정책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11차 전기본의 SMR 건설 계획은 전력 수급 성격도 있지만 한국형 SMR을 실제 지어 성능을 확인하는 '기술 실증·검증' 성격도 있어 수출의 필수 단계로 꼽힌다.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적법하게 수립한 계획이 손바닥 뒤집듯 바뀔 가능성이 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수급한다면 AI 혁명, 데이터센터 확충 등으로 폭증할 전력 수요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또 전기 요금도 대폭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원전 신규 건설에 15년이 걸리니 AI 대응 등에 현실성이 없고, 결국 재생에너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글로벌 대기업들도 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자력으로 이행하기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