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PC에 3500억달러 넣어라" … 일본식 '백기투항' 요구트럼프 2029년 1월 임기 종료 감안하면 투자 효용에 의문 美 항소법원 "상호관세 무효" … 대법원서 확정될 수도美 싱크탱크 "韓, 17조원 지키려고 왜 487조원 내주나"
  •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08.26.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08.26. ⓒ뉴시스
    한미 관세 후속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한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굴욕적' 협상 조건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487조원)를 현금으로 지불하느니 차라리 관세를 물고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게 낫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는 2029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트럼프 행정부에 487조원을 쏟아붓느니, 25%의 관세에 따른 손실을 감당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각 무역 국가들에게 부과한 상호 관세를 무효로 판단한 미 항소 법원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수 있어 한국으로선 성급하게 협상 타결을 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의 한미 관세 협상의 후속 협의를 마치고 14일 귀국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한국이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집행하고 1000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는 것을 조건으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도 25%에서 15%로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상호 관세는 지난달부터 15%를 적용받고 있지만 자동차 관세는 여전히 25%다. 현대자동차는 앉아서 한 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다. 

    한미는 추가 협상에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구조와 방법, 이익 배분 방식 등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 가운데 직접 투자는 5% 정도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대출과 보증 형식으로 미국이 정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안을 원하고 있다. 또 한국 정부가 미국에 3500억달러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달러 유출로 원화 가치 폭락 등 외환시장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일본과 동일한 조건으로 한국이 대미 투자 펀드를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3500억달러를 넣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제한 통화 스와프에 대해서도 한국에 해주면, 다른 국가들도 동일한 방식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은 관세 협상 대가로 대미 투자금 5500억달러(약 765조원)를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처를 지정한 날로부터 45일내 일본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기존보다 더 높은 '관세 폭탄'이 부과된다. 일본이 투자 원금을 회수하기 전 발생하는 수익은 양국이 50%씩 가져가지만 회수된 뒤에는 90%를 미국이 가져간다.

    이를 두고 일본이 미국에 너무 성급하게 '백기 투항'을 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한국이 2029년 1월 임기가 끝나는 트럼프 행정부에 외환 보유액(4163억달러)의 84%에 달하는 350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도 미국 투자 의지를 꺾는 요소다.

    한국의 최근 5년간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2020년 166억달러, 2021년 227억달러, 2022년 280억달러, 2023년 444억달러, 2024년 557억달러로 총 1674억달러다. 최근 5년간 미국으로부터 거둔 무역 흑자를 전부 반납하더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이 약속한 대미 투자 방식과 관련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설명한 방식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 한·일이 합의를 수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베이커는 "미국이 15%로 낮춘 상호관세를 25%로 올리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국내총생산(GDP)의 0.7%인 125억달러(17조원) 감소할 수 있다"며 "왜 125억달러를 지키려고 3500억달러를 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요구한 3500억 달러의 20분의 1(175억 달러)을 피해 기업과 노동자를 지원하는 데 쓰는 게 더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직면한 관세 사법 리스크도 한국에게는 유리한 조건이다. 최근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각 무역국에 부과한 상호관세를 무효로 판단했고, 대법원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판단을 유지할 경우 트럼프가 부과한 관세 정책은 폐기 수순을 밟는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경제 규모, 외환 보유 등을 감안했을 때 지금 우리 상황에서 일본식 협상 모델을 따르기는 어렵다"며 "협상 타결을 위해선 우리가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끝까지 일본식 모델을 고집할 경우 관세를 부담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를 부담할 경우 자동차 관세는 지금과 같은 25%가 될 것이고, 상호관세만 15%에서 25%로 올라가는 건데, 상호관세는 연말쯤 미국 대법원 판결이 나올 수 있어 변동 소지가 있다"며 "그럼에도 한미는 오랜 우방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해법이 도출 되지 않겠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