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 외치면서 기금 출연 압박에 금융권 '이중고'금융사 이익은 '사회적 주머니'?… 이중잣대에 업계 반발 거세저신용자 구제 취지 불구, 도덕적 해이·시장 왜곡 우려 고조서민 내세운 금융위…시장원칙 흔들고 관치금융 강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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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원회가 배드뱅크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서민금융안정기금' 신설까지 거론하면서 금융권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는 이면에 은행권에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는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금융위에 따르면 금융사의 일부 이익과 정부 재정을 합쳐 서민금융을 지원하는 서민금융안정기금 설립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금리로 서민·저신용 차주의 이자 부담이 한계치에 다다른 만큼, 별도의 재원을 통해 장기적 지원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소비자 중심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서민금융안정기금 신설 등을 통해 다양한 자금공급이 이루어지고 금융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 원장은 첫 공식 일정으로 8대 금융지주 수장들과 만나 생산적 금융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금융 대전환 동참을 촉구했다.

    해당 기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서민정책금융 공약과도 맞물려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금융은 공동체의 화폐 발행 권한을 활용하는 산업"이라며 "사회 전체를 위한 기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금융사 수익을 공공재처럼 활용해야 한다는 대통령 메시지가 정책 검토의 동력이 됐다는 해석이다.

    ◆ 배드뱅크도 지지부진한데 또 다른 기금?

    하지만 금융권은 벌써부터 고개를 젓고 있다. 배드뱅크조차 가동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기금을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배드뱅크는 금융권이 분담금을 출연해 장기 연체채권을 매입·정리하는 구조인데, 이마저도 업권별 출연 비율을 놓고 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 생명·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대부협회 등 업권별 협회는 배드뱅크 출연금 분담 비율에 대해 협의하고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부는 배드뱅크 설립을 위해 필요한 재원 8000억원 중 4000억원을 금융권에서 조달하기로 했지만, '누가, 얼마만큼 나눠 내느냐'를 두고 신경전이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기금 운용의 성격이 모호해 업무 중복 논란도 제기된다. 배드뱅크가 부실채권을 매입해 정리하는 후방 구조라면 서민금융기금은 이자 경감·금리 인하 등 전방위 지원을 다루게 된다. 제도 목적은 다르지만 수혜 대상이 상당 부분 겹치는 만큼, 운영 과정에서 기준 혼선과 자원 낭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동일 차주가 중복 지원을 받는다면 도덕적 해이 논란은 불가피하며, 금융당국 스스로 원칙으로 내세운 '신용위험 기반 금리 산정'도 무력화된다.

    문제는 금융위가 한쪽에서는 금융지주에 모험자본 확대·첨단산업 투자 등 민간의 자율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기금 출연을 압박하는 관치금융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시장 기능을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융회사의 이익을 사회적 기능 수행에 강제로 투입하라는 것. 업계에서는 "정권 기조에 맞춰 '투자 확대'와 '사회적 기여'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떠넘기는 건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시장 시스템 허무는 부메랑되나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금융회사의 이익이 많으니 일정 부분을 출연해 공동기금을 마련하면 된다"며 서민금융안정기금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사실상 금융사 기여를 전제로 한 발언으로, "민간 수익을 정부 정책의 주머니쌈지로 전락시킨다"는 금융권의 불만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발언이 단기적으로는 서민금융 확대라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질서를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리 체계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고신용자 역차별, 저신용자 도덕적 해이, 은행 리스크 관리 왜곡 등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다. 정부가 당장은 성과를 챙기겠지만 결국 시스템을 허무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

    서민금융 지원의 대의는 공감하지만, 원칙 없는 기금 신설은 배드뱅크와 마찬가지로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금융위가 생산적 금융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와의 기능 충돌을 해소하고, 출연 구조의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제학계 한 교수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익이 많으니 내놓으라는 접근은 세금 논리와 다를 바 없다"며 "이런 식이면 금융사는 위험 관리를 포기하고, 결국 부실은 다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