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자 행정 시스템 오락가락… 리스크 키워반도체·車·배터리·조선·철강 전산업 영향재계, "숙련 인력 공급 차질"… 정부지원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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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Ellabell)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yundai Motor Group Metaplant America, HMGMA)’의 준공식을 개최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브라이언 켐프(Brian P. Kemp) 조지아 주지사가 기념 사진을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전문직 취업비자(H-1B)와 전자여행허가제(ESTA) 수수료를 동반 인상 방침을 밝히면서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사업 운영과 출장·단기 파견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자동차, 배터리, 철강 등 제조업뿐 아니라 항공업계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대표 기업들이 미국 전역에 투자한 규모는 200조원을 웃돈다.정부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근로자 구금 사태를 계기로 단기 상용 비자(B-1) 체류 자격 해석을 넓히고 H-1B 비자 할당 확대 등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업계는 비자 제도 개선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 트럼프 행정부 조치로 기업들은 충격에 빠졌다.22일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오는 30일부터 ESTA 신청 수수료는 현행 21달러에서 40달러로 인상된다. ESTA는 한국을 포함한 무비자 협정국 국민이 90일 이내 미국을 여행할 때 필요한 전자여행허가 제도다.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각) H-1B 비자 발급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에서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올리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해당 조치는 21일부터 즉시 시행됐다. 다만 이미 제출되거나 승인된 청원과 비자 소지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이 10만 달러를 내고 싶지 않다면 미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미국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H-1B 비자는 미국 내 전문직 종사자에게 발급되는 대표적 취업 비자로, 제조업에서는 미국 현지 법인에서 품질경영 엔지니어, 전략 관리자, 시장 조사 담당자 등 다양한 직무에 해당 인력을 운용해왔다.미국 내 H-1B 비자 승인 통계에서 한국은 5위 국가다. 미국 이민서비스국(USCIS) ‘2024 회계연도 H-1B 승인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승인된 H-1B 비자 약 39만 건 중 한국인은 3983건으로 전체의 1.0%를 차지했다. 인도(71%), 중국(11.7%), 필리핀(1.3%), 캐나다(1.1%)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았다.ESTA 비자의 수수료 인상도 타격이다. 업계는 통상 한 달 미만의 단기·일회성 업무 파견 시 ESTA 비자를 활용해 왔는데, 이번 수수료 인상으로 기업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이번 조지아주 사태 관련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317명 가운데 ESTA 비자를 사용한 인원이 170명으로 가장 많았다. -
- ▲ 트럼프 대통령ⓒ연합뉴스
◇ 조단위 투자 진행 중인데 … 기업들은 비상문제는 자동차, 배터리, 조선, 철강 등 한국 제조업 기반 기업들이 모두 대규모 대미 투자를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재계 관계자는 "이번 조지아 사건으로 안정적 미국 업무를 위해서는 비자발급이 필수가 된 상황인데 비자발급비용을 100배 인상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라며 "특히 공장 신설, 기술 이전 등 신규 활동을 위해서는 관련 인원이 많이 필요한데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고 나아가 미국 관련 경제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불과 몇칠 전만해도 현대차그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와 조지아주 배터리 합작공장 지연 등 잇단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생산 현지화와 투자 확대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향후 3년 간 미국에 260억 달러를 투자하고 올 3월 준공한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의 연간 생산 능력을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이날 현대차가 공개한 향후 5년 글로벌 투자 계획도 70조3000억원에서 77조3000억원으로 7조원 늘어났고 증액분 절반 이상인 3조7000억원은 미국에 배정됐다. 현대차의 향후 5년 미국 투자액은 11조6000억원에서 15조3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조선업계에서도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타격이 불가피하다.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총 370억달러 이상을 투입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을 위한 반도체 후공정 공장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배터리 3사도 미국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4개 공장을, 삼성SDI는 GM·스텔란티스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온 역시 조지아·켄터키·테네시주 공장을 완공했지만 장비 관련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배터리 업계를 비롯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국내 기업이 미국 전역에 쏟아붓는 투자 규모는 200조원을 웃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자 전략 전반을 다시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항공업계에서도 미국 입국 비용이 커지면서 단기 여행이나 출장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로 인해 미주 노선을 운영 중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에어프레미아의 타격이 예상된다. -
◇ 재계, 미국 사업 리스크 넘기 위해 정부 지원 요청
- ▲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엘러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켐프 조지아 주지사가 한국에서 현대차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체포 및 구금 사태 대응과 함께, 비자·관세 등 직면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재계는 미국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자, 통상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개최한 ‘대한상의 국제통상위원회’에서 기업들은 전략 산업 관련 관세 면제·완화, 품목별 관세 대응, MASGA 등 전문 인력용 별도 비자 신설을 정부에 건의했다. 조선·원전 등 미국 내 공급망이 미완인 산업은 국내 공급망이 공백을 메워야 하며, 관세 확대 시 제조원가 상승과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전달됐다. 이번 회의에는 포스코,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 GS, HD현대, 대한항공, CJ, 두산 등 주요 기업 관계자가 참석했다.특히 미국 현지 투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인력 확보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강조됐다. ESTA·B1 비자는 단기 파견에 한정되고, H-1B 비자는 쿼터와 발급 지연 문제로 제약이 크다는 점도 논의됐다. 기업들은 전문 인력용 별도 비자 신설, H-1B 쿼터 확대, 발급 절차 단축 등 제도 개선을 정부에 요구했다.한 기업 관계자는 “미국 진출 초기에는 다수 운영 인력이 필요하지만, 신속 발급이 가능한 ESTA나 B1 비자는 현지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H-1B 비자는 쿼터 제한과 긴 발급 절차로 제약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앞서 논의 중인 단기 파견용 비자 카테고리 신설이나 한국인 전용 전문직 비자(E4) 도입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 향후 미국 공장 운영에 필요한 숙련 인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업계는 한국과 미국 간 협의 결과, 비자 제도 개선이 현실화될지 여부에 따라 현지 생산 계획과 투자 속도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외교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정부는 이번 조치가 우리 기업과 전문직 인력들의 미국 진출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미측과 필요한 소통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