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한 방에 647개 행정시스템 마비 … 이중화 시스템 사실상 부재정부, 2008년부터 공주 백업센터 추진하고도 18년째 문 못 열어재작년 건물 완공했지만 예산 집행 0원 … 2025년엔 16억으로 감액정부가 민간에 요구한 대비책, 정작 공공엔 적용 안해… 예고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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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대본 회의에 앞서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허리숙여 사과하고 있다. 2025.09.29. ⓒ뉴시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일제히 마비된 가운데, 정부가 시스템 이중화를 소홀히 한 데 따른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정부는 지난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카카오 측에 다중화 클라우드 서버 구축 등 강도 높은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2023년에는 정부 행정망이 먹통이 됐는데도 정작 정부는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특히 재난·재해 등으로 인한 마비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국가 전산 시스템을 보호하는 국정자원 공주센터(백업센터)가 예정대로 가동됐다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2008년부터 추진한 공주 백업센터는 1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2023년 5월 건물을 다 지어놓고도 지금까지 운영을 하지 못한 채 18년째 표류하고 있다.2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대전 유성구 국정자원에서 리튬배터리 이전 작업 중 화재가 발생해 전산장비 740대와 배터리 384대가 전소했다. 이 불로 647개 행정정보시스템이 가동을 중단했다.정부는 화재에 직접 영향을 받은 96개 시스템을 제외한 나머지 551개를 중심으로 정상적으로 가동되는지 확인한 후 서비스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29일 오전 10시 기준 복구된 정부 시스템은 55개에 불과해 완전 복구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문제는 전산실 한 곳에서 발생한 화재 한 건으로 국가 전산망이 일제히 마비되는 사태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3년 전인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정부는 카카오톡에 다중화 클라우드 서버 구축 등 강력한 대책을 요구했다. 당시 국정자원은 "대전센터가 화재나 지진 등으로 한꺼번에 소실될 경우 실시간 백업된 자료로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도 정작 국가 전산시스템이 화재 한 건으로 붕괴됐다.2023년 11월엔 주민등록 발급이 중단되는 등 정부 행정망 마비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노후 장비 교체와 이원화 시스템 구축 등을 담은 종합 대책을 밝힌 바 있다.그러면서 재해·재난뿐 아니라 장애 상황에서도 작동하도록 '액티브-액티브(Active-Active)' 방식의 재난복구(DR)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DR 이중화는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재난 상황 발생 시 복구할 수 있는 DR 시스템은 서버 DR과 클라우드 DR이 있는데, 클라우드 DR이 구축됐다면 화재·홍수·폭격 등 재난·재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중화를 통해 다른 시스템에서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이용석 행안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은 27일 브리핑에서 "재난 복구(DR)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큰 규모가 아니라 필요 최소한의 규모로 돼 있거나 데이터 백업 형태로만 돼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
- ▲ 28일 국과수 요원들이 화재가 완진된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5.09.28. ⓒ뉴시스
국정자원 공주 백업센터가 제때 가동됐어도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국정자원은 1센터(대전 본원), 2센터(광주 분원), 3센터(대구 분원)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전쟁·재난·재해·대규모 장애 등 비상사태로 대전·광주·대구센터 기능이 동시에 마비되더라도 국가 전산망이 작동할 수 있도록 충남 공주에 '쌍둥이 재해복구(DR) 클라우드 센터'를 짓고 있다.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2025년도 예산안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제4센터인 공주 백업센터는 정부 재해복구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8년부터 추진됐다. 2008년 7월 '정보보호 중기 종합계획'에 통합 전산센터 백업센터 구축'이 세부과제로 포함되면서다.공주 백업센터는 총사업비로 2354억원(건축 1533억원, 정보화 821억원)이 책정됐다. 그러나 예산 문제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면서 2019년 4월에서야 공사를 시작해 2023년 5월 건물 공사를 마쳤다.공주 백업센터는 직격 핵을 제외한 모든 무기체계에 대한 공격에 견딜 수 있도록 터널 내 전산동을 구축하고, 화생방, 내진, EMP(전자기펄스) 차폐 등 특수시설로 방호체계를 갖췄다. 폭격에 대비한 방폭밸브와 방폭문이 설치됐고, 방사능 낙진과 태양풍 등에도 견디도록 설계됐다.건물 공사를 마친 뒤 본격 운영에 들어가야 할 공주 백업센터는 2024년 1차 정보화 예산으로 251억5000만원이 편성되고도 그해 8월까지 예산이 전혀 집행되지 않았다. 결국 2025년 공주 백업센터 예산은 235억원이 감액된 16억1400만원만 편성됐다. 1533억원을 들여 건물을 지어놓고도 2년 4개월 넘게 가동을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025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국정자원 공주센터 신축 사업은 2024년 구축 사업이 총사업비 협의로 지연되고 있다"며 "사업이 추가적으로 지연되지 않도록 집행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예결위는 "사업이 지연된 이유는 2023년 11월 발생한 전산망 장애에 대한 종합대책 내용을 반영하면서 기획재정부와 총사업비 협의절차를 거치게 돼 사업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행안부는 국정자원 공주 백업센터를 2025년 9월까지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행안부 계획대로 구축이 완료됐다면 화재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산망은 정상 작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29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 앞서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