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외환보유액 4220억달러 … 넉 달째 증가에도 ‘불안 심리’ 여전유가증권 90% 육박, 현금화 어려운 ‘장부상 자산’명목상 세계 10위 수준이지만 IMF 권고선 밑도는 실질 방어력“시장 유동성 방어력, 외환위기 이전보다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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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금리 사이클 전환과 달러 초강세 속에서 한국의 외환방패가 흔들리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넉 달 연속 늘며 4200억 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유동성은 급속히 말라가고 있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논의, 지지부진한 한미 통화스와프 협상, 치솟는 환율이 한꺼번에 금융안정을 위협한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허전한 한국 외환체계의 민낯을 진단하고, 위기 대응 능력의 실질적 수준을 가감 없이 짚어본다. <편집자 주>

    외환위기 트라우마 이후 28년 만에 한국의 '외환 방패'의 실질 두께가 다시 빠르게 얇아지고 있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20억 2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57억 3000만 달러 증가했다. 5월 말 4046억 달러로 5년여 만에 최저치를 찍은 뒤 6월(56억 1000만 달러 증가), 7월(11억 3000만 달러 증가), 8월(49억 5000만 달러 증가)에 이어 넉 달 연속 늘어났다. 유가증권 평가이익과 금융기관 외화예수금 증가가 주된 요인이다.

    외환보유액 숫자가 늘면서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전체 외환보유액 중 유가증권이 3784억 달러(89.7%)로 압도적인 반면, 즉시 유동화 가능한 예치금은 185억 달러(4.4%) 수준에 불과하다. 2020년대 초반 10%를 넘었던 현금성 자산 비중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시장의 시선도 단순한 '총량 증가'에 머물지 않는다. 유가증권 대부분이 미국 국채 등 장기 자산에 묶여 있어 급격한 환율 변동이나 외환 유출 시 즉시 활용 가능한 '실탄'이 제한적이라는 것. 한 시중은행 외환담당 임원은 "예치금과 단기자산이 빠진 외환보유액은 위기 때 현금화가 어렵다"며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위기 대응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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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외환보유액 4200억 달러는 명목상 세계 10위 수준이지만, IMF 권고 적정선(47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액이 현실화될 경우 외환보유액의 84%가 한 번에 이탈할 수 있는 위험도 도사린다. 환율 역시 1400원대를 돌파해 외화 유출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운용 수익 증가와 분기말 외화 예수금 증가가 주요 원인"이라며 외환보유액은 충분한 수준이라는 안정 기조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외환보유액 증가가 실질적 안전판이 아니라 장부상 착시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높다. 일부 증권가에서는 실질 방어 가능한 달러는 200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에 따라 한국 외환시장도 긴축 종료 이후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픽스는 10개월 연속 하락 중이지만, 이는 달러 약세가 아니라 국내 예금금리 인하 영향이라는 점에서다. 외환 방어력이 실질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수익형 자산 비중이 높아지며 실제 위기 대응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외환위기 당시 204억 달러였던 보유액이 지금은 20배 이상 늘었지만, '속빈 강정'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양적 확대보다 질적 방어력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유가증권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단기 예치금과 현금성 자산 비중은 여전히 낮다"며 "미 달러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실질 방어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