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오천피' 구호에 너도나도 '빚투' … 신용융자 역대 최대당국, 시장 진정 커녕 투기 부추겨, 연기금까지 동원할 판AI거품론·환율불안·금리인하 후퇴 등 증시 지뢰밭 투성이 급락시 개미 '나락'갈수도 … '오천피'구호 내려놓고 빚 관리해야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참석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참석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증시가 외국인의 변덕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천수답'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초 '이천피'에 머물러 있던 코스피가 '사천피'라는 새 역사를 썼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코스피가 이례적으로 급상승한 만큼 정부는 '오천피'라는 구호에 매몰되기보다 빚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투자자들도 신중을 기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AI 버블론, 원화 가치 폭락, 미국 기준금리 인하 후퇴론, 과도한 빚투 등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 "빚투는 레버리지" … 가계부채 관리 손 놓은 당국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만 코스피 지수가 2%이상 오르고 내린 날이 5거래일이나 되며 지난 14일에는 3.8% 추락하면서 '검은 금요일'을 연출했다. 

    이날 코스피 추락은 지금까지 누적된 지뢰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마이클 버리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AI버블론과 유동성 장세의 원천이었던 미국 기준금리 인하의 중단 가능성, 원화 가치의 폭락 등이 코스피를 일거에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일본 낸드플래시 메모리 전문기업 키옥시아가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적을 발표한 것은 AI발 반도체 수요 폭증이 상당부분 부풀려졌다는 일종의 경고장일 수 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실제 코스피 상승의 주역이었던 외국인들은 지난달 '사천피'를 돌파한 이후부터 꾸준히 한국 주식을 팔아 왔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등 한국 대표 주의 주가가 오를 만큼 오른데다 원화 가치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지하고 개인 투자자들에게 '경고장'을 내놓아야 할 정부 당국자들은 오히려 개미들의 포모(FOMO) 심리를 자극해 빚투를 권장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이재명 정부의 '오천피' 공약에 가계부채 관리, 물가 및 환율 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마저 잊은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는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청년층 빚투 증가세에 대해 "그동안 너무 나쁘게만 봤는데 레버리지의 일종"이라고 말해 사실상 빚투를 권장한다는 비판을 샀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역시 "신용대출이 위협될 정도는 아니다"라는 안이언 발언을 내놓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조차 최근 "국내 주가가 버블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면서 정부의 증시 부양론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는 한걸을 더 나아가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까지 동원할 태세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추가 매수를 위해 자산 배분 비율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전술적 자산배분(TAA)를 활용해 자산별 목표 비중을 추가로 2%포인트 늘리는 방식으로 국내 주식 매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 규모만 3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TAA는 외부 충격에 따른 시장 급등락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돼 온 비상 카드다. 주식 추가 매수를 위해 쓴 전례는 없다. 정부의 압박 내지 눈치보기라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여당에서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한 증시 전문가는 "주식이 과열될 때마다 포모에 빠진 국민에게 섣불리 빚까지 내 투자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는 물론 한국은행까지 나서 주식 투자를 권하는 분위기"라며 "빠르게 오른 증시는 큰 폭의 조정이 불가피한데, 그 때는 국민들에게 무슨 말로 변명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 '빚투' 26조 사상 최대 … 시장 급락 시 '반대매매' 비명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 규모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11월 첫 주에만 1조 2000억 원 가까이 폭증했다.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26조 2165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외국인들이 '사천피' 고점에서 차익 실현에 나서는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막대한 빚을 내어 그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거품 붕괴론이 확산되고 미국 금리인하가 늦어져 국내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을 경우 빚으로 투자한 개인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주가 하락으로 담보가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하는 '반대매매'가 속출할 수 있어서다. 반대대대는 시장 매도 물량을 증가시켜 주가 하락세를 한층 가속화시킨다. 실제로 코스피 변동성이 커졌던 지난 7일 반대매매 금액은 380억원으로 올 들어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6일 기록한 440억원 이래 최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20~30대를 중심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압박 속에 무리하게 빚투에 뛰어든 경우가 많다"며 "자산 가격 하락 시 심리적, 재무적 충격이 매우 클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오천피 구호를 잠시 내려놓고 시장 건전성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