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472.4원에 개장 … 7개월만에 최고치 美 관세 리스크·주요국 통화 불확실성 등 요인 겹쳐 고환율 뉴노멀에 산업계 직격탄 … 원자재 급등 시름 전문가 "고환율 지속, 韓 경제 펀더멘털 약화 반증" "수입 의존도 높은 韓, 고환율이 경제 미치는 충격 커"
  • ▲ 부산항 감만부두. ⓒ뉴시스
    ▲ 부산항 감만부두. ⓒ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중반대에 고착화되고 있다. 고환율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면서 우리 경제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과거엔 환율이 오르면 상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기업들의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이 같은 공식이 사실상 힘을 잃었다. 원자재와 중간재를 해외서 들여와 가공해 다시 수출하는 우리 산업 구조 상 환율 상승은 원가 부담 상승으로 직결되서다. 

    지난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날보다 7.7원 오른 1475.6원이었다. 지난 4월 9일(장중 1,487.6원·종가 1,484.1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1469원선으로 내려섰지만, 고공 행진의 연장선상이다. 

    최근 원화 약세의 주요 요인으로는 미국 관세 정책 리스크,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통화정책 불확실성,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확대, 엔화 약세 등이 꼽힌다. 여럿 구조적 요인들이 얽히면서 전문가들은 고환율이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장기화된 고환율 현상에 대해 "환율은 대내외 요인이 굉장히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 절하는 해외로 나가는 자금이 많은 요인 때문에 달러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앞서 구 부총리는 14일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해외투자에 따른 외환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는 경우 시장 참가자들의 원화 약세 기대가 고착화 돼 하방 경직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해 대처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구두개입성 발언을 내놓았다. 당일 환율은 20원 가까이 떨어졌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구두개입은 정부가 결정적인 순간에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단 한 번 강하게 해야 효과가 있다"며 "현재 수출이 양호한데도 환율이 오르는 것은 자본수지 쪽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고환율이 뉴노멀로 자리잡으면서 우리 경제는 점점 더 큰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르면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P) 하락하고 중소기업은 1%만 올라도 손실이 0.36%P씩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김태훈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기업집단의 수출 전략이 점차 가격 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변화하면서 원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제품의 수출가격 하락을 통한 매출 증대와 같은 매출효과가 사라졌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 대출의 건전성 악화도 이미 현실화됐다.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가파르게 늘어나면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53%로, 2017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총 675조8371억원으로 9월 말보다 4조7494억원 늘어났다. 넉 달 연속 증가세로, 하반기 들어서만 11조7503억원 불어났다. 

    고환율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산업계는 비상등이 켜진지 오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원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38.17로 집계됐다. 2020년 10월(96.2)과 비교하면 무려 43.6%나 뛰었다. 

    안동현 교수는 "고환율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우리 경제 펀더멘털이 약화됐다는 방증"이라며 "국내 투자가 부진한데다 규제, 인건비, 경직된 노동시장 등으로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환율이 내려갈 만한 이유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장기간 침체 국면이 이어진 건설업계는 '고환율 리스크'가 덮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자재 원가 오름세를 견인하며 공사비 부담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10% 상승하면 건설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비용은 0.34%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예컨대 시멘트 생산의 주원료인 유연탄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철강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가격 상승은 철근 가격을 견인한다. 고환율이 장기간 지속되면 공사비  역시 상승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정유사도 전량 수입하는 원유 결제로 환율 상승으로 부담이 커지고 있다. 통상 정유사는 환율이 10원 오르면 연간 약 1000억원의 환차손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분기보고서에서 3분기 말 기준 환율이 10% 오를 시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544억원 감소하는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철강업계 미국 관세 50% 부담에다 고환율 이중고에 짓눌리고 있다. 원가 부담이 커지는데다 저가 중국산 물량 공세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요까지 둔화되면서 '설상가상'이다. 

    국산 원재료 사용 비중이 31.8%에 그치는 국내 식품 제조업들도 원자재 가격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 정치 공백기에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섣불리 가격 인상을 단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발 관세 위기속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투자·고용도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다. 일부 기업은 환헤지 확대와 원가 절감, 경비 축소 등으로 방어에 나섰지만 대외 변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제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비용부담이 커지고 이는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돼 체감물가가 더 크게 오르는 구조가 된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원자재,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환율 상승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다른 나라보다 크다"고 했다. 이어 "원가 상승으로 마진이 축소돼 비용구조가 악화되면서 설비 투자와 채용이 지연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