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인사혁신처, 지방·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상사의 위법한 명령 거부해도 인사상 불이익 주지 않겠다"관가 "내란 TF 휴대전화 제출 거부해도 불이익 주지 말아야"육아휴직 기준 완화, 난임휴직 신설 … 병주고 약주기 처방도
  • ▲ 김민석 국무총리. ⓒ이종현 기자
    ▲ 김민석 국무총리. ⓒ이종현 기자
    정부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상사의 위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지방·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25일 입법예고했다.

    공무원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76년만에 폐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직사회에서는 최근 총리실이 출범시킨 '헌법존중 정부혁신 총괄 TF(태스크포스)'를 두고 "휴대전화 제출 같은 내란 TF의 위법한 요구를 거부해도 불이익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이날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도 같은 내용으로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소속 상사의 위법한 직무상 명령에 대해서는 따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위법한 지휘·감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이행을 거부한 공무원에게 불이익한 처분이나 대우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법에는 직무 수행 시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만 규정돼 있었고, 위법한 명령에 대한 별도 조항은 없었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그 직무 수행에 관하여 서로 협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공무원의 복종 의무' 조항에서 '복종'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됐다.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된 이후 76년만이다. 

    인사혁신처는 또 공무원의 '성실 의무' 관련 조항도 고치겠다고 밝혔다. 현재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 것을 "모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로 바꾸겠다고 했다.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은 국민 모두의 삶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질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본적인 일"이라며 "앞으로도 일할 맛 나는 공직사회가 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공무원이 상사의 위법한 명령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불복할 수 있도록 법률상 규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국민과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직사회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반응은 냉담하다. 최근 총리실은 중앙행정기관 49곳에 '헌법존중 정부혁신 총괄 TF'를 공식 출범시키고 공무원 75만 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위헌 논란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란 TF는 공무원들에게 개인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해 내란 가담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자발적 제출을 권장한다고 하지만, 의혹이 짙다고 판단되는데도 제출을 거부한 경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계획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의 제보와 투서를 받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이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과 함께 공직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내란 연루 공무원들은 내년 2월 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를 받을 예정이다.
  • ▲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뉴시스
    ▲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뉴시스
    정권 교체 이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내란 몰이'가 진행되면서 사생활·인권 침해 우려는 물론,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공포가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번 법 개정이 환영받을 만한 내용임에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다.

    관가에서는 "법 개정 취지대로라면 공무원들이 휴대전화 제출 같은 내란 TF의 위법한 요구를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휴대전화 제출은 100% 본인의 동의에 의해 이뤄지며, 동의가 없으면 제출을 요구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포렌식도 하지 않기로 했고, 총리실에서 원칙과 절제를 강조했기 때문에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앞서 김민석 국무총리도 24일 내란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열고 "TF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며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직사회 반발을 의식해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내란 재판을 위한 전담재판부 설치까지 예고하면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육아휴직 대상 자녀 나이 기준을 상향하고 난임휴직을 별도 휴직 사유로 신설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존 육아휴직 대상 자녀의 나이는 8세(초등학교 2학년)까지였지만 앞으로는 12세(초등학교 6학년)까지 확대된다. 난임치료를 위해 질병휴직을 활용하던 현행 제도도 개선돼, 앞으로는 난임휴직을 별도 청원휴직 사유로 신설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허용할 예정이다.

    또 스토킹·음란물 유포 비위에 대한 징계 시효를 기존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피해자가 징계 처분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징계 절차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관가에서는 이를 두고 "전형적인 병 주고 약 주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