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원전 건설 여부 다시 여론에 부치기로김성환 장관 "국민 여론조사와 토론 거쳐 확정"AI 전력수요 폭증 속 대안 없이 공론화로 떠넘겨전문가 비판 고조 "정책 정치화가 전력 불안 키워"
  •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주요 정책과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02. ⓒ뉴시스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주요 정책과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2025.12.02. ⓒ뉴시스
    정부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미 확정된 대형 원전 2기 건설 여부를 다시 여론조사와 대국민 토론에 부치기로 하면서 '탈원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 일관성은커녕, 국가 에너지 전략을 정권 성향에 따라 흔드는 위험한 방식이라며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명확한 대안 없이 신규 원전 추진을 사실상 멈춰 세운 채 공론화 절차로 떠넘기는 것은 대책 없는 탈원전의 재시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과 전력 공급 불안이라는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1차 총괄위원회 회의에서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 2기의 건설 여부를 국민 여론조사와 대국민 토론회를 거쳐 조기에 확정해 12차 전기본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이미 지난 2월 11차 전기본에서 설비용량 1.4GW급 대형 원전 2기 건설이 확정된 사안으로, 정권 교체 이후 부지 선정 등 후속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공론화를 통해 국민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에너지업계에서는 "중대한 국가 에너지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AI·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원전 건설을 미루거나 중단할 경우 전력 공급 불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 수요는 이미 예측치를 뛰어넘고 있는데,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추상적 구호만 반복하고 있다"며 "대안 없는 탈원전은 결국 전력난과 요금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됐던 '탈원전' 정책이 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 건설에는 15년이 걸린다"며 추가 원전 착공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해왔다. 

    이에 원전 업계에서는 "11차 전기본에서 합의된 신규 원전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되는 수순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원전 생태계가 붕괴되고 전문 인력이 대거 이탈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업계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며 "2040년까지 최대 재생에너지 보급 가능량을 도출하고,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전력 시스템에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석탄발전은 과감히 줄이고, LNG발전은 수소 혼·전소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 전력망 보강 비용, 대규모 ESS 구축 부담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 대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원전 축소와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적인 목표만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15년 단위의 중장기 설계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면 국가 에너지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력 인프라는 한번 결정하면 수십 년간 유지되는 만큼, 단기 정치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지금 시점에 원전 건설 여부를 다시 여론조사로 묻는 것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며 "정책의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이미 여야 합의로 확정된 11차 전기본을 다시 여론조사로 되돌리는 것은 정책의 연속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전문가 논의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력 수요는 치솟고, 원전은 멈춰 있고, 재생에너지는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결국 전기요금 폭등이라는 결과만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신규 원전은 멈춰 있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력 공급 불안과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사실상 재가동하면서도 그에 따른 비용과 위험은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이날 회의는 12차 전기본 수립 방향을 논의하는 총괄위원회의 첫 회의로, 전력 분야 전문가와 유관기관, 관계부처 등이 참여했다. 12차 전기본에는 2026년부터 2040년 사이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을 관리하기 위한 수요 전망과 발전 설비 구축 계획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