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 근접하며 시장 불안 심화외국인 투자 이탈, 규제 족쇄로 한국 매력도 하락확장재정이 키운 유동성, 원화 가치 하락 요인으로 전문가 "규제 걷어낼 구조 개혁 이뤄져야"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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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경제 분야에서 국정의 화두로 내세운 것은 누가 뭐래도 '코스피 5000'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국내 증시가 저평가됐다며, 우선적으로 상법 개정안 수술을 통해 기업들의 거버넌스(지배구조)에 손을 댔다. 대통령의 입맛에 맞춰 금융 당국자는 "레버리지(빚투)도 괜찮다"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고, 국민연금은 거침없이 우리 주식을 사들였다. 이 동안 통화량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빚투로 주식을 사고, 버블이 커지는 동안 집값까지 춤을 췄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재임 동안 팽창 일변도였던 원화의 통화량은 현 정부 들어 재정 확장까지 맞물려, 고삐가 풀린 듯 늘어났다.경제의 거품이 커지는 동안,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정작 기업들의 체질이 변한 것은 없었다. 반도체를 제외한 기업들은 관세와 고환율 속에서 영업이익이 외려 쪼그라들었다. 반면 노란봉투법을 강행 통과시키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강화되는 등 반기업법이 연일 쏟아지면서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챈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릴리 만무했다.통화량이 늘어나면 통화 가치는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 반대로 해외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줄면 달러화 유입이 그만큼 적어지니 환율이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그 사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으로 연간 최대 200억달러까지 유출이 예정되면서 환율은 거침없이 솟구칠수 밖에 없었다. 외환 시장의 모든 것이 환율 상승을 향하고 있었는데, 현 정부는 '주가 상승'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했다.경제의 펀더멘털이 뒷받침되면서 주가와 집값이 올라가면 내수가 살아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짧은 시간 기업의 체질이 아닌, 유동성 장세로 증시가 올라가고 대출로 집값이 올라가다보니 통화량 증발과 원화 가치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잉태하고 만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포퓰리즘'이다.◇李 대통령의 '코스피 5000 집착' … 늘어나는 통화량에 원화 가치 수직 하락그렇다면 이 기간 이 대통령은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을까.이 대통령은 한미 관세 협상 담당자에 대한 '포상'을 얘기하면서도, 이후 수직 상승하는 환율 문제에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워룸'을 만들어 환율과의 전쟁을 벌였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외려 이 대통령은 환율 상승 국면에서도 계속 주가 상승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반도체에 가려 다른 기업들은 생사를 오가는데, 대통령은 이런 모습에 애써 눈을 감은 것인지, 발언을 꺼내지 않았다. 그 사이 경제 부총리는 시장 참여자들을 향해 '공갈포'를 쏘아대고, 서학개미들에게 환율 상승의 원인을 돌리고, 난데 없이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대기업 재무 책임자들을 불러 달러를 내놓으라는 황당한 모습을 연출했다.그리고 12월 24일, 기껏 '행동'에 옮긴 것이 바로 서학개미들이 국내로 돌아오면 양도세를 낮춰주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 증시에서 돈을 벌어 세금 걱정을 하는 투자자들에게는 희소식일지 모르지만, 이 또한 얼마나 약발을 받을지는 미지수다.요즘 시장 참여자들은 너무 영악하다. 대통령이 '코스피 5000'을 외치는 것이 통화량 증대로 우리 경제의 목줄을 외려 조일 것임을 시장은 너무 잘 안다. 여기에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반도체에서 생긴 세금으로 또 다른 민생 쿠폰을 발행하는 한편, 국채를 더 늘릴 것이라는 점을 일반 국민들도 눈치를 챈다.국채 발행에 거리낌이 없는 대통령을 알기에, 그로 인해 통화량이 계속해서 늘고 원화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 뻔한데 환율이 수직 낙하할 것이라고 시장이 믿기를 바란다면 대통령과 정부는 너무 순진하다. 규제를 풀고 감세를 통해 외국인들의 국내 투자 물꼬를 열고, 재정 건전성을 통해 나라 곳간이 튼실해져야 국가의 통화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데, 대통령과 정부가 거꾸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장이 원화 강세에 베팅을 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야 말로 1차원적 정책이라는 얘기다.◇환율 1500원에도 '코스피 대통령'에 장단 맞추는 관료들원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은 이미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 수준까지 떨어졌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87.1로,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이던 2009년 4월(85.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 말(86.6)과도 큰 차이가 없다. BIS가 해당 통계를 집계하는 64개국 가운데 꼴찌인 일본(69.4) 다음으로 낮다. 이 지수는 수치가 낮을수록 통화 가치가 낮다는 의미다.문제는 정부가 환율 대책을 계속 내놓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달 새 '국민연금 수익·외환 안정 뉴프레임워크' 가동, 기획재정부 외환수급 태스크포스(TF) 설치, '외환 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 등 대책이 잇따랐다.국민 노후 자산에 손댄다는 비판까지 무릅쓰고 국민연금을 동원하고, 수출 대기업의 달러 매도를 유도하며 시장 개입에 나섰다. 증권사의 해외주식 마케팅을 문제삼고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시기와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그럼에도 당국의 입김은 먹히지 않고 있다.24일에는 고환율 원인으로 지목된 이른바 서학개미의 투자를 국내로 돌리겠다는 일종의 고육지책도 내놨다. 해외 주식을 팔고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에게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이 골자다. 이날 '국내투자·외환안정 세제지원 방안' 발표에 앞서 외환당국은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구두 개입에도 나섰다.이에 전 거래일 대비 1.3원 오른 1484.9원에 출발한 환율은 구두개입 직후 20원가량 급락했는데, 시장에서는 정부가 시장의 이른바 '윈도 드레싱'을 위해 취한 조치로 풀이한다. 윈도 드레싱은 말 그대로 결산기를 앞두고 수익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치'를 하는 것인데, 그동안 기다리다가 연말을 앞두고 정부가 행동에 나선 것은 다분히 윈도 드레싱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이는 역으로 연초에 가면 언제든 다시 환율이 상승 곡선으로 돌아설 수 있음을 방증한다.정부 정책이 이어지는 동안 직설적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 온 이재명 대통령은 환율 문제에서 6개월이 지나도록 입을 꾹 닫았다. 외환시장 불안이 고조되는 국면인데도 전날 해양수산부 임시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공개발언은 물론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도 환율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었다. 이 대통령이 환율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취임 직후인 지난 6월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 연설이 마지막이다. 당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경제성장률은 4분기 연속 0%대에 머물렀다"며 윤석열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반면 이런 상황 속 정부 관료들과 여당은 대통령에 장단을 맞추면서 '코스피 5000 시대'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최근까지도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은 "코스피 5000이 달성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고, 진성준 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코스피가 4000 시대를 맞이했고 5000까지 뛰어오른다는 전망도 나오지 않나"라고 언급했다.코스피 지수가 4000선을 돌파했지만, 이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가 상승을 주도한 결과다. 이들 종목을 제외하면 코스피 지수는 여전히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의 합계는 코스피 전체의 약 35%에 달해 소수 대형주의 주가 흐름이 지수 향방을 좌우하는 구조가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가다.더욱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반년 만에 순매도로 돌아선 상태다. 금융감독원의 '11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13조3730억 규모로 순매도하며 6개월 만에 '팔자'로 바뀌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시가총액 기준 29.6%로 전월 대비 0.5%포인트 줄었다. -
- ▲ 서울 하나은행 위변조센터에 원화와 달러화가 함께 놓여있는 모습.ⓒ뉴시스
◇대통령, 노란봉투법과 기업 소송 외치는 사이 … 쪼그라드는 외국기업 국내 투자고환율이 굳어진 1차적 배경은 역시 '대미 투자 펀드'다.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미국에 매년 2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하면서 관세 불확실성은 줄었지만 달러 수요를 키우면서 환율 상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정부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달러를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설명했다. 외환자산 운용수익에서 대미 현금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향후 대미 투자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억달러 대미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라며 "기업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고 해외자본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구조적 자본유출이 이미 진행 중이다"고 지적했다.국내로 유입된 외화보다 해외로 유출된 외화 규모가 더 컸다는 점도 원화 약세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10월까지 증권 투자(724억7000만달러)와 해외 직접투자(223억2000만달러)를 합한 규모는 누적 경상수지(895억8000만달러) 흑자보다 52억1000만달러 더 많았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에서 2조6160억원을 순매도했고, 지난달에는 인공지능(AI) 거품 논란에 14조1700억원을 팔아치웠다.이런 흐름의 배경으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확장적 재정 운용이 거론된다. 내수 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과 소비 진작 정책이 잇따르면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급격히 늘었고, 이 같은 통화 팽창이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기업 환경을 둘러싼 규제 부담과 정책 불확실성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각종 규제 부담이 가중되며 기업 활동의 제약이 커졌다는 평가다.기업 지배구조 근간을 흔드는 1·2차 상법 개정안도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1차 개정안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명문화, 대규모 상장사 전자주총 개최 의무화,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3%로 제한 등이 핵심이다. 2차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집중투표제 의무화, 분리 선출 감사위원 수 2명 이상으로 확대 등이 골자다. 정부와 국회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개정안까지 추진 중이다.원청의 사용자성 확대와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연간 3명 이상 산재가 발생한 법인에 대해 영업이익 5% 이내, 하한액 30억원 과징금 부과, 중대재해 반복 건설사에 대한 등록말소 처분 등 강도 높은 제제 방안도 꺼내 들었다.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제재 일변도의 정책 기조로 기업 활동 전반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에 우리나라 제조업 임금이 경쟁국보다 높아지면서 생산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 임금 수준은 일본보다 27.8%, 대만보다 25.9%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하상우 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은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임금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만큼 생산성 제고와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며 "인건비 부담이 이미 큰 상황에서 법적 정년 연장과 같은 정책은 고용 이중구조와 청년 고용 악화를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전문가들은 고환율의 배경으로 기업하기 어려워진 환경을 공통적으로 지목한다. 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이 이어지면서 성장률 둔화와 자본 유출이 맞물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경제 친화적 정책을 펴며 투자를 유도하는 반면 우리는 상법개정안, 노란봉투법,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며 "이로 인해 국내 기업의 투자 유인이 약해졌을 뿐 아니라 해외 자본을 끌어들일 동인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강 교수는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달러가 미국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한국 경제 체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걷어낼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