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정책 둘러싼 李대통령-기후장관 간 미묘한 이견'백지화 빌드업' 여론조사 시기·방식 미정… 없던 일로?글로벌 친원전 흐름 속 한국만 유보적 '경쟁력 후퇴' 우려
-
-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이 31일 충남 태안군 소재 한국서부발전본부에서 열린 태안석탄화력발전소 1호기 발전종료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2025.12.31. ⓒ뉴시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을 15년 만에 재가동하기로 한 가운데, 한국은 이미 확정된 신규 대형 원전 건설 계획을 보류하면서 전력수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정부는 신규 원전 2기 건설 여부를 국민 여론조사와 토론회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달 가까이 조사 시기와 방식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지난해 2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1.4GW급 대형 원전 2기 건설은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이를 다시 공론화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백지화 수순을 밟기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7일 기후부에 따르면, 원전산업정책관실은 신규 원전 2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날짜와 조사 방식은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정부 관계자는 "대국민 여론조사를 1월 중에 한다는 계획은 있는데 세부 설계가 아직 덜 됐다"면서 "조사 문항과 대상, 의뢰 기관 등을 어떻게 할 지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지난해 12월 "신규 원전 2기의 건설 여부를 국민 여론조사와 대국민 토론회를 거쳐 확정하겠다"는 김성환 장관의 제안으로 추진된 계획이 공전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이재명 정부 들어 '원전 정책'은 애매모호하게 전개되고 있다. 신규 대형 원전은 백지화할 것처럼 정책을 이끌면서도 소형모듈원전(SMR)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원전 기술은 장려하고 원전 수출에도 적극성을 보이면서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기후부 업무보고에서 원전 정책과 관련해 원전 건설에 얼마나 걸리는지의 문제뿐 아니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의 효용성과 SMR의 위험과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검증을 요구했다.특히 이 대통령은 "당적이 없는 사람이 대답해 보라"고 주문하며 특정 정파에 따라 원전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원전 정책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이후 신규 대형 원전 건설 백지화 '빌드업'을 해 온 김성환 장관의 태도도 좀 누그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장관이 나서서 추진하겠다던 여론조사의 시기·방식도 미정이고, 이와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고 있어 그렇다. 이러다 여론조사 계획 자체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이러한 상황 속에 세계 주요국은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오는 20일 후쿠시마 원전을 재가동한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고 후 약 15년 만이다. AI 산업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결정이다.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하며 2030년까지 신규 원자로 10기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24GW로 늘리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고, 중국은 2035년까지 신규 원자로 150기를 건설해 발전 비중을 두 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탈리아와 스위스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재도입을 선언했다.에너지 국제기구들도 일제히 전 세계 원전 설비용량 전망치를 상향하고 있다.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세계 원자력 설비용량이 638GW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해 집계한 현재 설비용량(376GW) 보다 262GW 증가한 수준이다. 또한 IEA가 1년 전 제시한 2040년 전망치(586GW) 보다 52GW 상향된 수치다.원전수출협회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각국의 신규 원전 도입 취소 등으로 전 세계 원전 설비용량이 감소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원자력 발전 확대가 다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처럼 일본·미국·중국 등 주요국이 '원전 확대' 정책에 집중하고, 국제 기구도 원전 전망치를 높이는 상황에서 한국만 신규 원전 건설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반하는 정책 노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정용훈 카이스트(KAIST) 교수는 "전 세계가 원전으로 다시 회귀하는 흐름"이라며 "간헐적인 재생에너지 중심으로는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고 주장했다.업계에서는 정책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글로벌 친원전 흐름 속에서 한국만 역행한다면, 향후 10~20년간 전력 공급 안정성과 국가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원전 신규 건설 없이 폭증하는 AI의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한데, 한국은 국가 에너지 정책을 정치화하고 있다"며 "대국민 토론회와 여론조사가 신규 원전 백지화를 위한 '빌드업' 과정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