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2026 동계 올림픽 공식 트레일러 공개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스톱모션 방식으로 인간 고유의 스포츠 정신 부각올림픽 성화 연상시키는 불꽃 활용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빛'으로 치환BBC 크리에이티브(BBC Creative), 노민트(NOMINT) 제작
  • AI(인공지능)가 전 세계를 뒤흔들며 삶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인 스포츠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광고가 극찬을 받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 국영방송 BBC가 다음 달 열리는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공개한 공식 트레일러 영상이 겨울 스포츠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최근 AI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영역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는 가운데, 45초 분량의 'Trails Will Blaze(궤적은 불타오를 것이다)'는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다.

    BBC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은 BBC의 인하우스 크리에이티브 조직인 BBC 크리에이티브(BBC Creative)와 스톱모션·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 전문 프로덕션 스튜디오 노민트(NOMINT)의 디렉터이자 설립자인 야니스 콘스탄티니디스(Yannis Konstantinidis)가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 손으로 완성한 스톱모션 작품으로, 최정상급 동계 스포츠 선수들이 돌로미티 산맥을 가르며 지나가고 그 뒤에 빛의 궤적을 남기는 모습을 상상력으로 구현했다.

    이번 캠페인은 선수들이 새로운 지평을 열고 말 그대로 '개척자(trailblazer)'가 되는 것에 관한 메시지를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완성했다. 특히 올림픽 성화를 연상시키는 불꽃을 활용해, 속도선이나 눈보라 대신 선수들의 '움직임'을 '빛'으로 치환했다.

    BBC 크리에이티브 측은 "올림픽 성화는 올림픽의 상징적인 존재이며, 매 동계 올림픽마다 기록이 경신되고 개인 최고 기록이 깨진다. 그래서 우리는 'Trails will Blaze'라는 캠페인 슬로건을 생각해냈다"며 "스포츠 선수들이 'trailblazer'가 되는 것처럼, 전에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기법들을 시도해보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업계에 진정한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전체 영상 제작은 물리적인 모형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3D 프린트로 제작한 선수 피규어 700개를 미니어처 산악 세트 위에서 프레임 단위로 촬영했다. 불꽃과 스파크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강철선, 버섯가루, 철가루 등 14가지 서로 다른 연소 기법을 사용했으며 숙련된 폭죽 기술자들과 협력했다. 또한 사람이 풀무를 사용해 직접 바람을 불어 넣어 불꽃이 더 밝게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어떤 장면도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들이 탄생했다. 특히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경사면을 내려오면서 불꽃 궤적을 남기는 선수의 모습은 동계 올림픽의 스포츠 정신과 혼(魂)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BBC 크리에이티브 관계자는 "제어할 수 없는 요소(불꽃)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상당한 제어가 필요한 매체와 결합한 작업"이라며 "이는 CG(컴퓨터 그래픽)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거칠고 혼돈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스 우도트(Jess Oudot) BBC 크리에이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CD)는 "이 캠페인은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궤적을 기념하는 작품이며, 선수들이 각자의 종목에서 한계를 밀어붙이듯 우리 역시 스톱모션의 한계를 밀어붙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콘스탄티니디스 디렉터는 "기술적으로 매우 까다롭고, 크리에이티브적으로도 짜릿한 프로젝트였다"며 "BBC 크리에이티브와의 첫 대화부터 우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신뢰와 실제적인 크리에이티브적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세가 필요했다"고 전했다.

    영상 배경 음악에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로열 앨버트 홀에서 라이브로 녹음한 베르디의 '레퀴엠'을 새롭게 편곡한 음악이 삽입됐다. BBC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은 TV와 스트리밍, 디지털 전반에 걸쳐 2026년 대회 중계와 함께 방송될 예정이다.
  • ▲ BBC 2026 동계 올림픽 공식 트레일러 'Trails will Blaze' 캠페인. ©BBC
    ▲ BBC 2026 동계 올림픽 공식 트레일러 'Trails will Blaze' 캠페인. ©BBC
    AI가 창작의 영역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지금, BBC의 'Trails Will Blaze'는 정반대의 선택으로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캠페인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단순히 'AI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스포츠 정신을 말이 아닌 '제작 방식'으로 증명했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은 AI가 만들어낼 수 없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700개의 실물 피규어를 프레임 단위로 촬영한 스톱모션, 실제 연소 기법으로 구현한 불꽃 효과는 모두 통제와 복제가 불가능한 물리적 과정이다. 이는 기록과 결과보다 신체, 시간, 우연이 축적돼 만들어지는 스포츠의 본질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콘텐츠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제작 방식이 일치하는 크리에이티브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속도나 승패 대신 선수들이 만들어 낸 'trail(궤적)'에 집중한다. 빛으로 남은 흔적은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노력과 반복, 실패의 시간을 의미한다. 스포츠를 결과나 성과 중심이 아닌, 인간이 한계를 뛰어 넘어 온 궤적의 서사로 풀어낸 것.

    완벽함을 지향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불꽃의 제어 불가능함과 불규칙성을 오히려 캠페인의 핵심 장치로 활용했다. 이는 스포츠가 가진 긴장감과 실패 가능성, 우연성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미학으로 끌어안은 선택으로 풀이된다. 

    결국 'Trails Will Blaze'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로 올림픽 정신을 해석함으로써, AI 시대에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방법을 증명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