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산불 사투, 수장은 술판 … 횡단보도 시민 덮칠 뻔한 '아찔한 추태'산림청 '역할 축소론' 기폭제 될판 … "낙하산 인사가 부른 재난대응 공백"
  • ▲ 김인호 산림청장이 지난달 22일 경남 진주시 집현면 대암리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이 일몰 전에 진화될 수 있도록 서부지방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 등 가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투입해 총력대응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인호 산림청장이 지난달 22일 경남 진주시 집현면 대암리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이 일몰 전에 진화될 수 있도록 서부지방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 등 가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투입해 총력대응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적으로 산불 위험이 최고조에 달한 '산불조심기간', 산불 방재의 총책임자인 김인호 산림청장이 만취 운전 사고를 내고 직권면직됐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재난 대응 시기에 터진 수장의 추태에 산림청 내부뿐만 아니라 공직 사회 전체가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

    사건은 지난 20일 밤 11시경, 경기 분당시 신기사거리에서 발생했다. 김 청장은 면허 정지 수준의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던 김 청장의 차량은 승용차와 버스를 연달아 들이받았다.

    현장 CCTV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시민과 충돌하기 직전의 긴박한 모습이 담겼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살인 미수'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김 청장을 음주운전 및 치상 혐의로 입건하고, 버스 승객 등의 부상 여부를 정밀 조사 중이다.

    이번 사건이 더욱 공분을 사는 이유는 시점 때문이다. 최근 이상기온으로 산불 위험이 커지자 산림청은 '봄철 산불조심기간'을 예년보다 열흘 앞당긴 1월 20일부터 시행 중이었다. 

    지난 13일 7개 부처 합동 '산불방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사고 당일(20일)에도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각별한 대응을 주문할 만큼 상황은 엄중했다. 

    김 청장이 술에 취해 사고를 내던 시점에도 현장은 사투 중이었다.  21일 하루에만 전국 12곳에서 산불이 났으며, 경남 함양과 충남 예산에서는 강풍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밤샘 진화 작업이 이어지고 주민 9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긴박한 상황이 계속됐다.

    특히나 지난해 3월 183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산불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이다. 당시 초동대처 미흡으로 산림청장이 비판받은 바 있는데, 이런 조직의 수장이 보인 행태로는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산림청공무원노동조합은 곧장 성명서를 내고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 일탈을 넘어 산림청 조직 전체의 명예와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국민과 직원들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해 4월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해 4월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임명된 김 청장은 이재명 정부가 집권 초기 운영한 공직자 국민추천제에서 자신을 산림청장으로 추천하는 '셀프 추천' 글을 올려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취임 6개월 만에 이뤄진 불명예 퇴진은 역대 산림청장 가운데 가장 짧은 재임 기록이 될 전망이다. 

    김 청장의 비위는 산림청의 조직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이미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산림청의 산불 진화 기능을 소방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림재난방지법' 개정안은 소방 당국이 산불 진압의 주도권을 갖도록 명시하고 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야간 비행이 안 되는 헬기를 구매한 김 청장을 강하게 질책한 바 있다. 이번 사고는 이러한 불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산불진화 같은 위험한 작업은 전문기관인 소방청에 맡기고, 산림청은 잔불 정리 등 지원 역할로 재편해야 효율적"이라며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산불은 특정 시기가 집중돼 있기 때문에 산불 전담 인력을 따로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소방청에 산불 업무를 이관하면 인력과 장비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과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 라인으로 알려진 이른바 '성남 패밀리'로 분류되는 김 청장은 30년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산림청 산림정책평가위원, 국가환경교육센터장, 생명의숲 이사를 역임해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임명 6개월 만에 최악의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게 됐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전문성과 도덕성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번 '음주운전 면직 사건'이 처참하게 증명하고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안전과 재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부기관의 수장에 보다 적합한 인물을 앉혀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청 노조는 "산림청장 임명 시 산림행정과 재난 대응 체계에 대한 전문성과 조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춘 인물을 임명할 수 있도록 인사 검증 기준과 절차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