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부실채권 확대 기대에 '불황형 금융' 주목비우량에도 민평 이하…부실채권에 쏠린 투자 심리불황 전제 투자 확산…향후 리스크에 대한 경계도
  • ▲ 서울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 서울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자금이 이른바 '불황형 금융'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실채권(NPL) 전문 투자사 회사채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부실채권 발생 가능성이 커질수록 수익 구조가 선명해지는 특성 탓에, 신용등급이 비우량(A0)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신F&I는 지난 10일 실시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2000억 원 모집에 1조5320억 원의 유효 주문을 받았다. 신용등급이 비우량이지만 모집액의 7배가 넘는 자금이 몰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회사채는 기업이 은행 대출 대신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통상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투자자는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만기별로는 2년물 900억 원 모집에 5790억 원, 3년물 1000억 원에 8160억 원, 5년물 100억 원에 1370억 원이 각각 응찰했다. 대신F&I는 최대 4000억 원까지 발행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리 수준도 눈에 띈다. 이번 회사채는 민평금리(민간 채권평가사가 산출한 기업 고유 금리)를 기준으로 ±30bp(1bp=0.01%포인트)를 제시했는데, 2년물과 3년물은 각각 민평 대비 –10bp, –28bp에서 낙찰됐다.

    비우량 A0 등급 회사채가 민평금리 이하에서 소화됐다는 점은 부실채권 업종에 대한 신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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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신에프앤아이
    ◇ 경기 둔화의 역설 … 불황에 강한 '부실채권' 회사채

    이번 대신F&I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의 배경에는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금리도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 속에 가계와 기업의 상환 부담이 지속되면서,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도 갚지 못하는 대출, 즉 부실채권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투자 심리에 반영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부실채권을 사들여 정리한 뒤 수익을 내는 NPL 전문 투자사들의 사업 여건이 오히려 개선된다. 경기 회복 여부와 관계없이 수익 구조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대신F&I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 기업으로 인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 측면의 매력도 수요를 끌어올렸다. 대신F&I는 비우량 등급이지만, 국채나 우량 회사채보다 높은 이자를 제공한다. 안전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위험 대비 수익이 괜찮다"는 판단이 퍼졌다는 설명이다.

    시장 수급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국채나 AA급 회사채 금리가 낮은 수준에 머물자 연기금과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 자금이 A급 회사채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여기에 부실채권을 전문으로 다뤄온 전업 투자사라는 점도 투자 심리를 뒷받침했다. 과거 회사채를 무리 없이 갚아온 이력과 업종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단기적인 신용등급보다 사업 구조에 대한 신뢰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 불황 속 '부실채권' 투자 선호 지속 … 자금 쏠림 경계도

    시장에서는 당분간 NPL 업황의 호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실채권 잔액과 은행 연체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NPL 매각 규모는 7조 원을 웃도는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NPL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대신F&I는 지난해 8월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도 1500억 원 모집에 2조 원이 넘는 주문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당시에도 두 자릿수 언더 금리에서 발행을 마쳤다.

    최근 수요예측에 나선 유암코(AA0) 역시 총 2600억 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에 약 1조3300억 원의 주문을 확보하며 부실채권 업황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재확인했다.

    부실채권 투자가 당분간 위축되기보다는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에서 부실채권 매각 물량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경기 불확실성이 클수록 오히려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우량 등급 회사채로의 자금 쏠림이 향후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시장 불안이 확대되면 A급 회사채가 가장 먼저 투자 회피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경기 부진을 전제로 한 자금 흐름이 이어지며 NPL 관련 금융 상품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