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 축소에도 영업익-순익 동반 '흑자'상품 축소-제품 확대 … 매출구조 재편 효과'자큐보' 상업화 가속 … 신약 중심 체질 전환연임 가능성 속 업계 최장수 CEO, 임기 24일 만료작년부터 오너 3세 경영일선으로 … 정기주총 분수령
  • ▲ 성석제 제일약품 대표이사 사장. ⓒ제일약품
    ▲ 성석제 제일약품 대표이사 사장. ⓒ제일약품
    제일약품이 외형 축소에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수익성 회복 흐름이 확인되면서 2005년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업계 최장수 전문경영인' 성석제 대표의 연임 가능성에 다시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다만 오너 3세 경영 본격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올해 정기주주총회가 경영체제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3일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제일약품은 지난해 매출 5663억원, 영업이익 206억원의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189억원에서 흑자전환하면서 2017년 6월 제일파마홀딩스로부터 분사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2.68%에서 3.65%로 반등했으며 순이익도 -301억원에서 320억원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다만 매출의 경우 지난해 7045억원에 비해 19.6% 감소하면서 201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익성 개선 배경에는 지난 1년간의 급격한 매출구조 변화가 있다. 제일약품의 2024년 총매출에서 제품과 상품 매출 비중은 각각 29.5%, 68.9%였다. 그러나 2025년 3분기 누적 제품 매출 비중은 42.5%까지 증가하고, 상품 매출 비중은 55.0%까지 줄어들었다.

    제품은 제약사가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품목이며 상품은 외부에서 매입해 판매하는 품목을 뜻한다. 1년새 매출구조가 상품 중심에서 제품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한 모습이다.

    지난해 상품 매출이 크게 줄어든 것은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와의 코프로모션(공동판매·영업)계약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제일약품은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 △진통소염제 '리리카' △골관절염 치료제 '쎄레브렉스' 등 대형 품목의 유통을 10년 이상 맡아왔다.

    2024년까지도 회사의 전체 매출에서 이들 3개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9%에 달했으나, 지난해 계약이 종료되면서 대규모 매출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뿐만 아니라 신경병성 통증치료제 '뉴론틴'도 연간 20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한 도입의약품이었으나, 지난해 1분기 이후부터 유통사가 변경되면서 매출이 약 26억원에 그쳤다. 한국다케다제약의 '란스톤 LFDT(활동성 십이지장 궤양 치료제)' 상품 역시 지난해 1분기 이후 거의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점을 비춰보면 코프로모션을 종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체 개발 신약 '자큐보'가 이 자리를 메우면서 오히려 빠른 체질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자큐보는 제일약품의 신약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가 자체 개발해 2024년 10월 출시한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다.

    국내 37호 신약인 자큐보는 출시 후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면서 지난해 3분기 누적 44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제일약품은 자큐보의 지난해 매출을 700억원으로 예상하며 올해 17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연구개발비용을 정상적으로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이익을 냈다는 점에서 국내 바이오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신약 상업화 사례로 꼽힌다. 특히나 자큐보를 통해 창출한 현금을 다시 항암신약 '네수파립' 등 후속 파이프라인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았다는 점도 시장 평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 ▲ 경기 용인시 소재 제일약품 백암공장 고형제동. ⓒ제일약품
    ▲ 경기 용인시 소재 제일약품 백암공장 고형제동. ⓒ제일약품
    이처럼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도입 상품 비중은 줄이고, 자체 제품 매출은 빠르게 확대하면서 체질 전환이 곧 실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대규모 매출 감소에도 원가율이 떨어지면서 2021년부터 이어진 적자 흐름이 끊긴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의약품 도매상'이라는 오명을 떨쳐내고 체질 전환의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성과는 성 대표의 체제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7번의 임기 동안 성 대표는 단순 외형을 키운 경영인이 아니라 신약 중심 구조전환이라는 중장기 과제를 실행에 옮긴 인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1960년생인 성 대표는 밀리포어 아시아 관리담당 상무, 한국화이자제약 재정담당 상무와 운영담당 부사장, 영업 및 노사담당 부사장 등 글로벌 제약사에서 영업마케팅과 관리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고 2005년 제일약품 대표이사로 합류했다. 이후 약 21년간 회사를 이끌면서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장기 집권 전문경영인이다. 그의 임기는 24일 만료 예정이다.

    외형 확대를 위해 도입품목 육성에 힘을 줬고, 대형 품목 집중 육성, 제네릭 출시로 신규 시장 개척 등 전략을 추진했다. 이후 온코닉테라퓨틱스 설립과 자큐보 개발 과정에서도 그룹 차원의 의사 결정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외형 성장 둔화라는 단기 성과의 한계를 내실과 체질 개선으로 만회했다는 점에서 추가 연임이 충분하다는 시각이 업계에 적지 않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너 3세 경영 본격화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상철 대표는 창업주인 故한원석 회장의 손자이자 한승수 제일파마홀딩스 회장의 장남이다. 2025년 공동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1976년생인 한 대표는 연세대 산업공학과와 미국 로체스터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2006년 제일약품에 입사한 뒤 마케팅·경영기획 등 핵심 부서를 거쳤다. 2016년 11월 제일헬스사이언스가 분사하면서 대표를 맡았고, 2017년 6월부터는 그룹 지주사 제일파마홀딩스 대표, 2023년 3월부터는 제일약품 사장으로 선임됐다.

    특히 온코닉테라퓨틱스 설립을 주도하면서 신약 중심 전략의 상징적 존재로 인식된다. 여기에 한 대표의 동생인 한상우 마케팅본부 전무도 지난해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오너 일가 중심의 경영체제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이다.

    업계에서는 성 대표의 8연임을 두고 '성과는 충분하지만, 구조적 변화가 더 큰 변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대표가 독자 경영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성 대표는 임기 종료와 함께 자연스럽게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년 넘게 회사 성장에 이바지한 성 대표의 성과는 분명하지만, 한 사장의 공동대표 선임은 분명 의도가 있는 인사"라며 "결국 성 대표의 재신임은 오너인 한 회장의 의중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오너 3세 체제가 아직 연착륙 중이라고 판단될 경우 성 대표가 '과도기적 파트너'로서 한 차례 더 연임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일각에서는 자큐보 이후 네수파립 등 후속 파이프라인 성과가 가시화되는 시점까지는 경험 많은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제일약품그룹이 성과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어 성 대표의 8연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오너 3세가 경영일선에 본격 등장한 것 역시 맞지만, 아직 성 대표 체제의 안정성을 흔들 이유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은 '최장수 CEO' 타이틀을 유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주총은 '성과를 낸 전문경영인 체제의 연장'과 '오너 3세 체제의 본격 전환' 사이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제일약품 측은 "성 대표의 연임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지금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