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 3만가구 임박…지방 건설사 자금난 심화철조망 치고 승강기 막고…할인분양에 입주민 충돌 확산우회 할인마저 법원 제동…벼랑 끝 건설사들 사면초가
-
- ▲ ⓒ연합뉴스
공사를 마쳤는데도 팔리지 않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전국 3만가구에 육박하면서 경영난에 빠진 건설사들이 '할인분양'이라는 최후 수단을 꺼내 들고 있다. 그러나 기존 입주민들은 자산가치 하락을 이유로 철조망 시위와 진입 봉쇄로 맞서고 있어 단지 내 갈등은 사실상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최근 사법부가 옵션 무상제공 등 우회적인 할인방식까지 실질적인 가격인하로 판단하면서 관련 분쟁은 전국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건설사들은 생존을 위한 우회로마저 막힌 진퇴양난에 빠졌지만 민간계약 특성상 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크지 않아 갈등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6년 1월 기준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9555가구로 전월보다 3.2% 증가했다. 2024년 초 1만가구 수준이던 물량이 2년만에 약 3배로 불어난 것으로 업계가 한계선으로 여기는 3만가구 돌파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전체 물량 가운데 지방 비중은 86.7%(2만5612가구)에 달한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방 건설사 자금조달지수(FBSI)는 역대 최저 수준인 40선까지 떨어졌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지방 중소건설사 현금성 자산 보유액이 전년 대비 18.4% 감소했다며 할인분양 없이는 현금 흐름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건설사들이 고육책으로 가격인하에 나서자 기존 입주민과의 갈등은 극단적인 집단행동으로 번지고 있다. 2024년 6월 대구 수성구의 한 단지에서는 시행사가 공매를 통해 기존 분양가보다 최대 4억원가량 낮은 가격에 물량을 내놓자 이에 반발한 기존 입주민들이 단지 정문에 윤형 철조망을 설치하고 이삿짐 차량 진입을 실력으로 막아섰다.2024년 1월 경기 용인의 한 단지에서도 잔여세대를 기존보다 약 20% 낮은 가격에 분양한 뒤 갈등이 불거졌다. 입주민들은 할인분양 세대의 커뮤니티 시설 이용을 금지하고 승강기 사용까지 제한하는 등 단지 내 '사회적 격리'에 가까운 조치를 취하며 맞섰다.2024년 초 전남 광양의 한 아파트에서는 할인분양 가구가 입주를 시도하자 기존 입주민들이 500만원에 달하는 승강기 사용료를 요구하며 이사차량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를 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한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이 쌓여 자금줄이 막히면 현장의 수많은 하도급 업체와 근로자들까지 연쇄 피해를 입게 된다"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이자만 하루 수천만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할인분양은 수익을 포기해서라도 회사의 파산을 막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말했다.직접적인 분양가 인하가 기존 입주민과의 정면충돌로 이어지자 최근 건설사들은 분양가는 유지하되 혜택을 늘리는 '간접할인'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발코니 확장 무상제공, 고가 가전 옵션 지원, 중개수수료 대납 등 기록에 덜 남는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가 수치를 직접 낮추면 집값 하락의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명목상 가격은 유지한 채 옵션 비용을 빼주는 방식을 택해왔다"며 "수분양자 입장에서도 실질적인 할인 효과를 누리면서 기존 입주민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어 일종의 암묵적 절충점으로 작용해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이런 우회전략도 사법부 판단 앞에서는 제동이 걸렸다. 최근 법원은 건설사가 제공한 수수료 지원이나 옵션 무상혜택 등을 단순한 마케팅 비용이 아니라 '실질적인 할인분양'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법원은 건설사가 '가격보장제(프라이스 보장제)'를 약속했다면 공매나 간접지원 방식을 동원했더라도 이를 분양가 인하로 봐 기존 입주자에게 차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택했던 건설사의 우회전략이 되레 대규모 차액 반환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문제는 이런 갈등을 중재할 공공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할인분양은 민간 주체 간 사적계약의 영역인 만큼 행정력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은형 연구위원은 "할인분양은 민간계약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여서 지자체가 행정적으로 개입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사실상 없다"며 "현행법상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기에는 법적 분쟁에 따른 부담이 너무 크다"고 분석했다.
결국 건설사는 도산을 피하려면 분양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기존 입주민은 자산가치 방어를 위해 이를 막아설 수밖에 없어 양측 충돌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업계에서는 지자체의 소극적 행정을 지적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미분양 매입 세제 지원과 기존 입주민 보상 가이드라인 등 현실적인 중재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 같은 갈등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