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강달러 동반 상승에 원자재·물류비 급등정유·석화·항공·전자까지 수익성 방어 비상기업들 공급망 점검·투자 계획 재검토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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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급등과 고환율이 한국 산업계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중동 군사 충돌로 원유 공급망 불안이 커지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120달러선에 육박했고, 원·달러 환율도 1500원에 근접했다. 유가 상승이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를 밀어 올리는 가운데 환율까지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사업계획 전반을 다시 점검하는 국면에 들어섰다.9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한화·HD현대·GS 등 주요 그룹은 주말부터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긴급회의를 열고 영향 점검에 나섰다. 정유와 석유화학, 항공과 해운은 물론 전자와 자동차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응 시나리오를 재정비하는 분위기다. 업계는 이번 충격이 일시적 유가 급등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 차질, 소비 위축, 투자 지연으로 번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정유·석화부터 항공·해운까지 … 직접비용 먼저 흔들렸다가장 먼저 비상이 걸린 곳은 정유·석유화학 업계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커지자 원유와 나프타 수급 불확실성이 빠르게 확대됐다.9일 브렌트유는 장중 119.50달러, 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119달러대까지 치솟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90달러 안팎이던 국제유가가 단숨에 급등한 만큼 정유사들로서는 원가와 수급을 동시에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정유사들은 대체 원유 확보와 우회 수송 경로 마련에 나섰지만 대응 여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업체는 4월 도착분 수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부적으로 가동률 하향 조정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GS칼텍스는 비축유 활용과 우회 항로 확보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고, HD현대와 한화도 그룹 차원의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 중이다.석유화학 업계의 부담은 더 직접적이다. 국내 나프타는 절반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이 중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재고는 2~3주 수준에 불과하다. 여천NCC는 이미 고객사에 공급 감소 가능성을 고지한 상태다.나프타 가격도 지난 2월 27일 톤당 590달러에서 이달 3일 737달러로 24.9% 급등했다. 문제는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겹친 상황에서 이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업계에서는 시황 부진으로 NCC 가동률이 이미 80%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원료 차질까지 겹치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항공과 해운도 유가 상승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대한항공은 연간 예상 유류 소모량의 최대 50%에 대해 유가 헤지를 실행 중이지만, 유가가 추가로 오를 경우 부담을 완전히 상쇄하기는 어렵다. HMM은 유류할증료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선사들이 중동 항로를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할 경우 운항 기간이 약2주 늘어나고, 이는 곧 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최근 일주일 새 156.08포인트 오른 1489.19를 기록했다.◇전자·자동차도 안전지대 아니다 … 고유가와 고환율이 마진 깎는다전자업계는 정유·석화처럼 원료 수급이 직접 멈추는 구조는 아니지만, 비용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유가가 오르면 해상 운송의 유류할증료가 올라가고 철강·합성수지 등 핵심 원재료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 여기에 운임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환율 상승은 원화 기준 지출액을 더 키운다. 업계는 가전처럼 현지 생산과 글로벌 물류 비중이 큰 사업일수록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효과보다 물류비·원자재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실제 과거 물류 위기 때 삼성전자의 운반비는 2조9602억원으로 전년 대비 71.9% 늘었고, LG전자도 16.8% 증가했다. 이번에는 유가 급등과 환율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만큼 비용 압박 강도는 더 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는 현지 공장 조달 비중 조정, 우회 물류 검토, 권역별 생산체계 활용 등을 포함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반도체는 상대적으로 직접 충격이 작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산 거점이 동아시아와 북미에 집중돼 있고 항공 운송 비중이 높으며, 달러 결제 매출 구조상 환율 상승이 일정 부분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다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면 원자재 비용과 물류비가 누적되면서 중장기 수익성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자동차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고유가가 길어질 경우 내연기관차 수요가 둔화하고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선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그룹 등 완성차 업체들은 유가 흐름에 따라 제품 믹스 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부품과 소재, 물류 전반의 비용이 함께 오르면서 판매 전략만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압박이 생긴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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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변동성 … 기업들 투자계획까지 다시 본다기업들이 더 민감하게 보는 것은 절대 수준보다 변동성이다. 원가와 환율이 동시에 급등하면 기존 헤지 전략이 무력화될 수 있고, 가격 정책과 생산 계획, 투자 집행 시점까지 모두 흔들릴 수 있어서다. 실제 기업들은 통화 스와프와 옵션 등 환헤지 수단을 활용하고 있지만, 변동 폭이 커질수록 계획 수립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토로한다.산업계는 이번 상황이 단순한 비용 증가에 그치지 않고 거시경제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면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현대경제연구원은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한국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높아지며, 경상수지는 26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고유가와 고환율은 개별 기업의 비용 문제를 넘어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 투자 지연까지 부를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다.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연초 세운 투자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집행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당장 눈앞의 원가 상승을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불안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업계는 유가와 환율, 물류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국면에서는 비용 절감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며 공급망 재편과 생산거점 조정, 투자 우선순위 재조정까지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정부는 UAE로부터 6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고, 현재 국내 원유·석유제품 비축량은 약 1억5700만 배럴로 추가 확보 물량까지 포함하면 약208일분 대응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업계는 국가 비축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업 현장의 불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원유 전체보다도 특정 원료의 도입 시점, 해상 운송 차질, 가격 급등에 따른 채산성 훼손이 더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업계 관계자는 "중동 사태가 단기간에 진정되지 않으면 한국 산업계는 비용 방어를 넘어 생산 전략과 투자 계획까지 다시 짜야 하는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