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프타 물량, 호르무즈 봉쇄로 최대 2주치 한계톤당 가격 600달러 → 1100달러…생산할수록 적자NCC 가동률 50~60% 급락하고 석화 업계 불가항력 선언정부, 나프타 등 석화 품목 대상 긴급 시장 명령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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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산업통상부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부 제공) ⓒ뉴시스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붕괴 위험에 직면했다. 나프타 공급이 막히고 가격이 두 배 가까이 급등하면서, 업계에서는 오는 4~5월 주요 석유화학 공장의 셧다운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나프타를 비롯한 주요 유화 제품들을 대상으로 '긴급 시장 명령'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23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요 석화 기업들이 확보한 나프타 재고는 평균 2주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1개월 이상 유지되던 재고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중동발 공급 차질과 해상 운송 불안이 동시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4월 중순 이후부터는 원료 부족으로 일부 공장이 가동을 멈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가격 충격은 이미 현실화됐다. 중동 사태 이전 톤당 약 600달러 수준이던 나프타 가격은 최근 1100달러 선까지 치솟으며 약 80~100% 급등했다. 원유 가격 상승과 물류 차질, 보험료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단기간에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가격 상승이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톤당 24달러 수준까지 하락하며 사실상 붕괴 상태에 진입했다. 일반적으로 손익분기점은 약 300달러 수준으로 평가되는데, 이를 크게 밑돌면서 '생산할수록 손해'인 구조가 고착화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인 셈이다.이에 따라 국내 주요 석유화학 단지의 가동률도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여수, 대산, 울산 등 주요 NCC(나프타 분해시설) 가동률은 현재 50~60% 수준까지 하락했다. 일부 기업은 추가 감산을 넘어 셧다운까지 검토하고 있으며, 고객사에 공급 차질을 통보하거나 '불가항력(Force Majeure)' 선언을 준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특히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주요 기업들은 원료 확보 지연에 따라 납품 일정 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이는 단순한 수익성 악화를 넘어 공급망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이번 사태의 파장은 석유화학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프타는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생산의 핵심 원료로, 플라스틱, 합성섬유, 타이어, 포장재 등 거의 모든 제조업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NCC 가동이 멈출 경우 자동차, 가전, 건설, 유통 등 전방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 차질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도미노 충격'이 불가피하다.이미 일부 기업들은 수출 물량을 줄이고 내수 공급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내수 비중 확대는 수익성 악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구조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내수 공급 비중을 기존 40%대에서 90% 수준까지 끌어올렸지만, 이는 단기적 대응일 뿐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이번 위기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 원료의 상당 부분을 중동 지역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특정 지역 리스크에 과도하게 노출된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원유 및 나프타 수입의 핵심 통로로, 이곳이 봉쇄될 경우 사실상 대체 수급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산업연구원은 지난 19일 보고서를 통해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고 국제유가가 150~180달러, LNG 가격이 150~200% 치솟을 경우 국내 제조업 생산비 증가폭이 최대 11.8%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 ▲ 중동 사태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이어가면서 석유화학 업계가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자 전방 산업인 타이어 업계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뉴시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부는 비상 수급 점검회의를 열고 나프타를 포함한 석유제품 수급 상황을 집중 점검하는 한편, 수입선 다변화와 물류 지원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마련하고, 중소·중견 석유화학 기업의 자금 부담 완화에 나섰다.특히 산업통상부와 재정경제부 등 관계부처는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나프타 등을 대상으로 '긴급 수급 안정화를 위한 조정' 명령을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이 명령은 천재지변, 국제통상여건의 급변 등으로 핵심전략기술 관련 품목의 안정적 수급과 산업 공급망의 원활한 기능에 지장이 초래되고 국민경제 활동이 현저하게 저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발동할 수 있다.긴급 조치가 시행되면 정부는 5개월 이내 시한을 정해 해당 품목의 생산 및 국내우선공급 등 공급계획을 수립 및 변경하고, 운송·보관·비축 또는 양도까지 지시하게 된다.수급 안정화 조정은 2019년 말 소부장특별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신설됐는데, 지금까지 이 법에 따른 긴급 조치가 발동된 적은 없었다. 다만,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고 2021년 요소수 품귀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생산 및 공급·유통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긴급 수급 조정 조치'를 단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소부장특별법이 아닌 물가안정법에 따른 것이었다.정부와 국내 정유사들은 미국·아프리카·북해 등 중동 대체 원유 확보에 나선 상태다. 다만 물량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운송 기간이 길어 단기간 내 공급 공백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동산 원유는 주로 '중질·고유황' 특성을 갖는 반면, 미국·북해산 원유는 '경질·저유황' 중심이라는 점도 문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정유소 상당수가 중동산 원유를 전제로 설계돼 원유 성질이 바뀌면 정제 효율과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다.전략 비축 확대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한국은 원유 중심의 비축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나, 나프타와 같은 석유화학 원료에 대한 별도 비축은 미흡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한시적으로 나프타를 경제 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수출 등을 통제한다는 방침이다.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적 위기를 넘어 산업 구조 재편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나프타 중심의 기존 석유화학 구조에서 벗어나 에탄 기반 생산 확대, 친환경 원료 전환, 재활용 소재 확대 등 중장기 전략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결국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4~5월 국내 석유화학 공장의 셧다운은 현실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이와 함께 석화 업계 구조조정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20일 정부에 여천NCC·DL케미칼·한화솔루션·롯데케미칼 등이 참여하는 여수 1호 프로젝트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이 제출됐다. 여천NCC는 현재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지분을 절반씩 보유하고 있다.기업결합 이후엔 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이 여천NCC 지분을 각각 3분의 1씩 보유하게 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3일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이 제출한 대산 1호 프로젝트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을 승인했다.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산업 위기를 넘어 한국 제조업 전반의 생산 차질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복합 위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