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선임·보수·자사주 안건 등 곳곳서 반대, 기업들 초긴장연금 반대에도 고비넘긴 기업들, 집중투표제 이후 더 걱정 내년 전자주총 전자투표 의무화 시행도 부담주주가치 제고 넘어 경영권 간섭으로 확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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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주주 보호를 앞세워 의결권 행사 강도를 높이며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사 인선·보수·자사주·정관 변경 등 주요 안건에 잇따라 반대표를 던지면서 시장에서는 경영 간섭 논란도 커지는 분위기다. 올해 집중투표제 시행과 전자주총 의무화가 도입되면 기업과 주주 간 긴장감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대표와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한화생명에 대해서는 임원 보수 한도가 과도하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세아베스틸지주 박성준 사내이사 선임안에도 반대표를 던졌다.국민연금은 이날 의결권 행사 내역 공시를 통해 34개 상장사 주주총회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공개했다. 김미섭 대표에 대해서는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자”라고 판단했고, 양홍석 부회장에 대해서는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박성준 이사에 대해서는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의무 수행이 어렵다고 평가했다.또한 오는 26일 열리는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과 우기홍 한진그룹 부회장(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국민연금은 “기업 가치 훼손·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점을 반대 사유로 제시했다.영풍·MBK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결정에 따라 최윤범 회장 사내이사 선임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사측이 제안한 최윤범·황덕남·박병욱 이사 후보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김보영·이민호 감사위원 후보 선임안에 대해서는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는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 미행사는 사실상 반대와 같은 의미다.정관 변경안에 대한 반대 역시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신세계에 대해 시차임기제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고 봤고, 셀트리온과 크래프톤에는 이사 수 상한 축소를 이유로 반대했다. LS에코에너지의 전자주총 배제, HD현대일렉트릭과 케이씨텍의 사외이사 임기 단축 또는 연기 가능성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자사주 관련 안건도 주요 견제 대상이 됐다. 국민연금은 CJ대한통운, 롯데지주, 미래에셋증권, 셀트리온, SK이노베이션, 케이씨텍 등의 정관 변경안에 대해 최대주주 찬성만으로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이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한 한화솔루션, 셀트리온, HD현대마린엔진, 크래프톤 등의 임직원 보상 목적 자사주 처분안에도 반대했다. 자사주 취득 당시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운 뒤 이를 임직원 보상에 사용하는 것은 공시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이사 보수 한도 안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연금은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생명, 한화비전 등 한화 계열사를 비롯해 신세계, 롯데지주, 미래에셋증권, LG생활건강, LG CNS, 셀트리온, HD현대마린엔진, SK이노베이션, LS에코에너지 등의 이사 보수 한도 승인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CJ대한통운과 율촌화학의 재무제표 승인안에도 각각 수탁자책임활동 지침 위반과 과다배당을 이유로 반대했다.아울러 국민연금은 이번주 SK하이닉스·현대차·이마트 등이 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사주 보유·처분계획 승인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할 예정이다.SK하이닉스는 오는 25일 정기주총을 열고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을 승인받는다. 회사는 보유 중인 자사주 30만주를 임직원 보상용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지분 7.5%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이 계획에 반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자사주 취득 당시 공시 목적은 적정 주가 확보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였다”며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제도 목적으로 자사주를 처분하는 계획은 취득 당시 공시와 일관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현대차도 오는 26일 정기주총에서 임직원 보상 목적의 자사주 처분계획을 승인받는다. 현대차 지분 7.31%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자사주 취득 당시 공시 목적이었던 주주가치 제고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이마트는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간 신세계푸드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 자사주를 활용한 포괄적 주식 교환에 나설 방침이다. 회사 측은 해당 조치가 개정 상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국민연금은 기존 공시된 취득 목적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이마트 지분 7.89%를 보유하고 있다.이 같은 움직임은 상법 개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이사 임기 조정, 이사회 정원 축소, 자사주 처리 기준 정비 등 정관 변경을 서두르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 시행이 예정돼 있다.인선, 보수, 자사주, 정관 변경 전반으로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가 확대되면서 시장 긴장도는 높아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국민연금 반대에도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며 한숨을 돌렸지만, 내년 집중투표제 도입과 전자주총·전자투표 의무화까지 예정돼 있어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주주가치 제고와 경영권 방어 사이의 충돌도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흐름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최근처럼 인선, 보수, 자사주, 정관 변경 전반에 걸쳐 반대가 확대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경영 판단에 대한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내년부터 집중투표제와 전자주총이 본격 시행되면 의결권 구도가 급변할 수 있어 기업들의 대응 부담이 한층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