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도 고밀개발…용적률 완화에도 초기단계 사업지 다수주요 사업지 갈등 확산…재정착 어려움에 원주민 이탈 우려
  • ▲ 사진은 서울 성북구 빌라 밀집지.ⓒ연합뉴스
    ▲ 사진은 서울 성북구 빌라 밀집지.ⓒ연합뉴스
    정부가 주도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3년 만에 신규 후보지 공모를 시작하며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강화된 이주비 대출 규제가 원주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살던 집을 내주고 전세집을 얻어야 하지만 대출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긴 까닭이다. 

    25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현재 도심복합사업은 전국 49곳, 약 7만6000가구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이 중 29곳은 복합지구로 지정됐으며 9곳은 사업 승인이 완료됐다. 시공사 선정이나 사업 승인 단계에 진입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곳도 있으나 상당수 사업지는 여전히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도심복합사업은 LH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시행을 전담해 민간 정비가 어려운 역세권과 저층 주거지를 고밀 개발하는 방식이다. 용적률을 최대 1.4배까지 높여 사업성을 확보하고 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여 민간 재개발보다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일례로 법정 상한이 250%인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도심복합사업 특례를 통해 용적률을 35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렇게 확보된 추가 용적률은 공공성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뿐만 아니라 일반분양 물량 확대로 이어진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토지주들의 실질적인 분담금 부담을 낮추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특히 복잡한 조합 설립 과정을 생략하고 공공이 직접 키를 잡는다는 점에서 시장의 큰 기대를 모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사업성이 아닌 자금줄에서 불거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10·15 가계부채 관리 대책'의 여파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이주비 대출 한도는 6억 원으로 제한됐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역시 40%로 묶였다. 이주비 대출 역시 주택을 담보로 삼는 구조인 탓에 동일한 규제 잣대가 적용된다. 

    특히 다가구·다세대 주택 비중이 높은 도심복합사업지의 특성이 발목을 잡는다. 대다수 집주인이 전세를 끼고 있어 세입자 보증금 반환과 본인의 임시 거처 마련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지만 LTV 40%라는 대출로는 이를 감당하기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1주택 위주인 재건축 아파트와 달리 도심복합사업은 다가구 주택이 많아 돌려줘야 할 보증금 규모 자체가 크다"며 "지금 같은 대출 규제 하에서는 현금 동원력이 부족한 원주민은 사업 참여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사업 주체인 LH 내부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해 대책을 마련 중이다. LH 관계자는 "이주비 대출은 가계대출 규제에 포함되는 사안이라 공공사업이라고 해서 별도의 금융 지원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며 "이미 사업 승인을 받은 일부 지구는 규제 적용을 피할 수 있지만 신규 후보지나 승인 전 단계 사업지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 특성상 이주와 보상이 선행돼야 하는데 금융 규제로 이주가 지연되면 사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관련 부처와 개선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자금 압박은 원주민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공이 공급 확대를 목표로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기존 주민을 밀어내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서울 주요 사업지에서도 구조적 한계는 반복되고 있다. 미사업승인 난 곳 이외 사업승인이 나도 문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북구 수유12구역은 세입자 비중이 높은 구조 탓에 공공임대 물량만으로는 재정착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은평구 증산4구역 역시 분담금 부담과 사업성 논란이 이어지며 공공 주도 개발 방식에 대한 주민들의 경계심을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영등포구 신길2구역과 도봉구 쌍문·방학역 일대처럼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지역은 이번 대출 규제의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과 이주비 마련이 동시에 필요한 구조인 만큼 금융 규제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도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미추홀구 제물포역 북측 사업지에서는 보상안에 대한 이견으로 일부 토지주들이 협의를 거부하면서 수용 절차로 이어지는 등 주민 간 갈등이 불거졌다. 동암역 남측 일대 역시 공사비 상승과 사업성 문제로 원주민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며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분담금과 보상 문제가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대출 규제까지 더해지며 진입 장벽이 한층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공공이 속도를 내기 위해 제도를 설계했지만 정작 원주민이 감당할 수 있는 금융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며 "이주비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신규 후보지 상당수가 사업 초기부터 동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부터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추가 후보지 공모를 진행 중이며 5월까지 제안을 접수받아 6월 중 후보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공급 확대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금융 규제와 정비사업 구조 간의 정합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