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고작 2~3주…민간 의존 구조에 드러난 '비축 사각지대'수출 막고 매점매석 단속…'시장 통제'에도 공급 확대 한계NCC 가동률 50~60% 급락…멈추면 산업 전반 '도미노 충격'작년 나프타 수출 비중 7% 불과…정부 대책 실효성 의문
  • ▲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재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브리핑을 열고 중동 전쟁에 따른 비상경제 대응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구윤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2026.03.26. ⓒ뉴시스
    ▲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재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브리핑을 열고 중동 전쟁에 따른 비상경제 대응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구윤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2026.03.26. ⓒ뉴시스
    정부가 중동 전쟁 장기화로 공급망이 사실상 막힌 나프타(납사)에 대한 매점매석 금지와 수출제한 등 긴급 수급안정 조치를 뒤늦게 단행했지만, 4월 말~5월 초로 예상되는 '셧다운'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는 원유와 달리 국가 비축체계가 존재하지 않고, 민간 기업의 재고에 의존하는 구조다. 현재 민간이 비축하고 있는 나프타 재고는 최대 2~3주치로, 이 물량이 바닥나면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 석화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나프타 수급 구조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통상부는 나프타 수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 '나프타 수출제한 및 수급안정을 위한 규정'을 고시하고 27일 0시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지난 3월 24일 국무회의 심의·의결과 대통령 승인을 거쳐 확정됐다. 

    나프타는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 쓰이는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로 산업 공급망의 핵심 품목이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타이어, 포장재 등 거의 모든 제조업의 기반이다. NCC 가동이 멈추면 국내 제조업 전반에 걸쳐 '도미노 충격'이 불가피하다. 나프타는 국내 수요의 약 4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중동산 비중이 77%에 달해 이번 중동 사태의 영향을 크게 받는 품목으로 꼽힌다.

    정부는 그간 무역보험 지원과 대체 수입선 확보 지원 등을 통해 기업 애로를 완화하는 한편,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해 공급망 기금을 통한 저리 융자 등 금융 지원도 병행해왔다. 이번 고시는 수급 불안 장기화에 대비해 보다 직접적인 시장 개입에 나선 조치다.

    우선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등 나프타 관련 사업자는 생산·도입·사용·판매·재고 현황을 매일 산업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수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매점매석 행위에 대한 규제도 강화된다. 정유사의 주간 반출 비율이 합리적 사유 없이 전년도 대비 20% 이상 감소할 경우 산업부 장관은 판매 및 재고 조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수출은 원칙적으로 전면 제한된다. 산업부 장관의 별도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수출이 가능하며, 기존 수출 물량은 국내 공급으로 전환된다.

    아울러 산업부 장관은 필요 시 정유사에 나프타 생산을 명령하고, 국내 생산분이나 해외 도입 물량을 특정 석유화학 기업에 공급하도록 하는 등 직접적인 수급 조정에도 나설 수 있다.

    이번 규정은 3월 27일부터 5개월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며, 시행 즉시 모든 나프타 수출이 제한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나프타는 대한민국 산업을 지탱하는 기초 원료인만큼 정부는 수급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국외도입 지원 등을 통해 도입 물량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정부는 보건의료, 핵심산업, 생활필수품 생산에 영향이 없도록 나프타를 최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석유화학 업계엔 "공급망 관리에 책임감을 가지고 나프타 도입 등 수급대응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프타와 관련 석유화학제품이 이번에 제정된 고시의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유통·관리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 ▲ 25일 대구 한 대형마트에 종량제봉투 구매 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나프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비닐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비닐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 우려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종량제 봉투 구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026.03.25. ⓒ뉴시스
    ▲ 25일 대구 한 대형마트에 종량제봉투 구매 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나프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비닐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비닐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 우려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종량제 봉투 구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026.03.25. ⓒ뉴시스
    문제는 정부의 이같은 긴급 수급안정 조치가 나프타 공급을 늘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석화 업계에서는 정부가 비축유를 풀어 나프타를 조달하더라도 소량에 불과하고,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나프타 재고가 2~3주 분량에 그쳐 5월 셧다운은 막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여수, 대산, 울산 등 주요 NCC 가동률은 전쟁 전 80% 수준에서 현재 50~60% 수준으로 하락했다. NCC는 한번 가동을 중단하면 설비 손상이 발생해 막대한 비용이 들고, 재가동에도 수주가량 걸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석화 업계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생활 현장에서도 나프타 수급 차질에 따른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종량제 봉투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면서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종량제봉투 구매를 '1인 2장'으로 제한했다.

    수출제한 조치에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나프타 총 유통 물량은 약 55만828배럴이다. 이 중 93%에 해당하는 약 51만484배럴이 내수로 공급됐다. 수출 물량은 7%(4만344배럴)에 그쳤다.

    이런가운데 사단법인 에너지안보환경협회는이날 3차 긴급 진단 보고서를 내고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나프타 쇼크 대응 방안으로 '순환형 에너지 안보(Circular Energy Security)' 전략을 제안했다.

    이 협회는 "나프타를 단순 석유화학 원료가 아닌 '국가 전략 물자'로 재분류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반도체·의료 등 필수 산업에 우선 공급하는 배분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정부가 지금 상황에서 할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한 것 같다"며 "나프타의 경우 그동안 수급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지정이 안됐을텐데 앞으로 국가 비축 체계 같은 걸 도입하면 위기 상황 발생 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장 원장은 "이번 사태는 워낙 특수한 케이스여서 정부 예산이나 공간 등  면에서 볼 때 어떤 품목을 지정을 해야 할지는 나중에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