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위기에 기간산업 역할론 부상석화제품 품귀 속 손익분기점 회복세파산 몰아간 한진해운 전철 기억해야"비용절감보다 경쟁력 재건 청사진 앞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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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국가산업단지 전경.ⓒ뉴데일리DB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공급 과잉에 더해 최근 나프타 수급 위기까지 겹치며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불황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 정부는 업계를 향해 구조조정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뚜렷한 사후 지원책 없이 섣불리 단행되는 설비 감축이 국가 핵심 기반 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24일 산업통상자원부 및 업계에 따르면, 정부 주도 아래 국내 3대 석유화학 산업단지 중 여수와 대산에서는 구조개편 프로젝트가 가동되며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일 여수 산단 소속 여천NCC, DL케미칼,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등은 정부에 '여수 1호 프로젝트 사업 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제출했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NCC를 여천NCC와 통합해 신설 법인을 세우고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은 강해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21일 SNS를 통해 "울산까지 구조개편이 이어질 때 비로소 석유화학 산업 전체가 다시 설 수 있다. 이제 울산의 시간"이라며 공개적으로 압박에 나섰다. -
- ▲ S-OIL 울산공장 전경.ⓒS-OIL
◇ 외부 충격에 증명된 산업 논리이처럼 업계 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학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장기적인 산업논리보다 당장의 재무 지표를 우선시하는 금융논리로만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최근 중동발 나프타 대란은 우리 석화 산업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란 충돌으로 사우디, 카타르 등 중동 주요국과 중국의 석화 설비 가동률이 30%대 밑으로 추락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에 비상이 걸렸지만 국내 석화업계는 오히려 기간산업으로서 버텨주고 있다.실제로 에틸렌 등 주요 석화 제품 가격이 전주 대비 74% 넘게 뛰며 52주 최고가를 기록했고 업계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이달 초 35달러에서 최근 241달러까지 치솟아 통상적 손익분기점에 근접했다. 증권가에서는 롯데케미칼의 적자 폭 축소와 함께 한화솔루션, LG화학 등 주요 업체들이 일제히 흑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또한 올해 6월 완공되는 S-OIL의 샤힌 프로젝트도 국내 공급 과잉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와 달리 글로벌 품귀 현상과 맞물리며 도리어 초기 안착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업계에서 몇 년 전 구조조정이 완료됐다면 지금 이 시기에 해외 물량에 매달려 국내 제조업 전체가 입을 타격이 훨씬 컸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누가 더 싸게 만드느냐보다 위기 국면에서 누가 멈추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국가 핵심 산업의 경쟁력임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한진해운·요소수 사태 교훈 삼아야 … "정부의 실질적 인센티브 필요"막대한 적자를 감수하고 자금을 쏟아부으며 버티는 기업들에 뚜렷한 안전망 약속 없이 구조조정을 속행하라는 것이 가혹하다는 지적도 여기서 기인한다.실제로 과거 단기적인 금융 논리에 밀려 국가 핵심 인프라를 포기했다가 타격을 입은 선례들이 존재한다. 2017년 부채 비율 등 금융논리로 접근해 파산에 이른 '한진해운 사태'가 대표적이다.당시 정부는 파산을 결정했고 이후 한국 해운업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업황은 쇠약해졌다. 홀로 남은 현대상선(현 HMM)이 전대를 다시 꾸리고 노선을 확보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방적인 희생을 치러야 했다. 정부가 유인책이나 흡수 합병 지원 없이 방치할 경우 기업이 받게될 영향과 결과를 보여준다. 2010년대 초반 채산성 악화를 이유로 국내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가 2021년 물류 마비를 겪은 요소수 대란 역시 마찬가지다.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현재 석화 업계의 위기는 이란 전쟁 등 외부 충격에 의한 영향이 큰데 정부가 사후 지원 약속 없이 자율 구조조정만 강요하고 있다"며 "당장 값싼 중동·중국산을 사다 쓰는 게 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를 위해 기초 설비를 버리는 것은 요소 산업을 포기했던 것과 같은 패착"이라고 지적했다.이 교수는 이어 "비용 절감만 따지다 기초유분 생산 기반을 무너뜨리면 결국 우리가 지어준 중동 공장이나 자원을 무기화하는 중국이 우리 목줄을 쥐게 될 것"이라며 "단순한 구조조정 압박을 넘어, 핵심 산업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청사진과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리더십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