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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권이 공격적 마케팅을 앞세워 55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보험료를 거둬들였지만 정작 실속은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자금 유입 규모에 비해 적립금 증가폭이 제한되면서,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점유율 확대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수익률 중심의 수수료 개편까지 예고하면서 그동안 계열사 물량에 의존했던 보험사들의 퇴직연금 비즈니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사의 퇴직연금 수입보험료는 25조 3979억 원으로 전년 17조 3430억 원 대비 46.4% 급증했다. 손해보험사 역시 같은 기간 22조 2931억원에서 29조 7187억원으로 증가하며 외형 덩치를 키웠다. 양 업권을 합치면 1년 만에 55조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매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전체 적립액은 104조 7415억원으로 전년 대비 고작 7% 늘어나는 데 그쳤다. 퇴직금 지급과 만기 재배치 등 구조적 자금 유출이 이어지는 가운데, 증권사 등 타 업권으로의 자금 이동까지 겹치면서 순증 효과가 제한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체 퇴직연금 적립액은 496조 8021억원 규모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은행권 적립액이 260조 5580억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증권업권이 131조 5026억원을 기록했으며 보험업권은 104조 7415억원으로 최하위에 머물러있다.
업권별 상품 구조를 보면 보험업권의 쏠림 현상은 타업권에 비해 유독 두드러진다. 보험업권의 전체 적립금 가운데 DB(확정급여)형이 80조 3846억원으로 전체의 약 76.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시장의 성장세인 개인형 퇴직연금(IRP) 비중은 약 5.9%(6조 2037억원)에 불과해 다른 업권 대비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이러한 기형적 구조는 보험사들이 개인 판매보단 제조업 기반 계열사의 물량 확보나 법인 영업에만 치우쳐 온 결과로 풀이된다. DB형 중심 구조는 기업 단위 계약 의존도가 높은 특성상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성장하는 IRP·DC 시장 확대 흐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증권업계는 IRP형이 49조 1368억원, DC형이 38조 64억원으로 두 유형의 합계가 전체 적립금의 약 66%를 차지하며 개인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은행권 역시 DB형 101조 8187억원, DC형 80조 5291억원, IRP형 78조 2102억원 등으로 각 유형별 비중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타 업권이 시장 변화와 가입자 니즈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동안 보험사만 유독 과거 방식인 DB형에 갇혀 있는 모양새다.
특히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DB형 구조는 대형 법인의 자금 운용에는 유리하지만 개인 투자자를 유인할 매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기준 실적배당형 상품 기준으로는 증권사가 평균 13%대를 기록하며 6~8%대에 머문 은행과 보험사를 크게 웃돌았다.
수익률 격차가 벌어지자 가입자들의 대규모 '머니무브'가 현실화됐다. 업계에서는 1년 새 보험사에서 증권사로 이동한 순유출 규모만 약 1.5조 원에서 2조 원 사이로 추산하고 있다.
업권별 수수료 경쟁력 또한 가입자들의 선택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실제 업권별 평균 수수료율은 증권사가 0.25%로 가장 낮았으며, 은행(0.36%)과 보험사(0.41%) 순으로 나타나 보험업권의 비용 부담이 가장 컸다. 삼성생명의 경우 업계 1위인 연간 약 2232억원 상당의 수수료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증권사들이 IRP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펼친 '수수료 제로' 정책이 맞물리며 대규모 머니무브를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2024년 말 도입된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 역시 보험업계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기존 상품을 유지하면서 사업자만 바꿀 수 있게 되자 수익률에 민감한 가입자들이 번거로움 없이 보험사를 떠나 증권사로 계좌를 통째로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수수료 부과 체계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며 보험사를 압박하고 있다. 수익률과 상관없이 적립금 규모에 비례해 수수료를 챙기던 기존의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 당국의 확고한 방침이다. 수수료를 서비스 항목별로 세분화하고 운용 성과와 연동하는 방식이 골자다.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가입자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이 투명하게 공개돼 타 업권과의 비교가 한층 쉬워질 전망이다. 수익률 경쟁력이 낮은 사업자일수록 수수료 수익 기반이 약화될 수 있어 보험업권의 수익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험업계는 더 이상 금리 마케팅이나 계열사 물량에만 안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현재와 같은 자금 이탈 흐름이 지속될 경우 보험업권의 점유율 축소가 구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계도 실적배당형 상품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생애주기펀드(TDF) 등 자산배분 전략을 고도화하는 등 더 이상 공격적 마케팅이 아닌 투자 성과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