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장관 발언 뒤 새만금 이전론 확산 … 선거판 타고 논란 증폭청와대도 뒤늦게 "검토한 적 없다" 진화 … 정부 초기 대응 도마 위기업은 침묵, 시장은 불안 … 산업정책 예측 가능성 훼손 우려 커져
  • ▲ ⓒ챗GPT
    ▲ ⓒ챗GPT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 정치권이 다시 '삼성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충북은 취임 100일 내 삼성 유치 양해각서 체결을 말하고, 대구는 삼성 반도체 팹 유치를 내걸었으며, 전남·광주는 500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약속했다. 평택처럼 대형 반도체 공장 하나만 들어오면 일자리와 인구, 상권, 세수까지 한꺼번에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공약의 배경으로 깔려 있다.

    문제는 반도체가 선거 구호로 움직일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공장 입지는 표 계산이 아니라 산업 인프라와 기업 투자 판단으로 정해진다. 더구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은 이미 법원에서 승인 처분의 적법성이 재확인된 사안이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삼성 유치' 공약은 지역 민심을 자극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국가 전략산업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택은 결과였지 공약이 아니었다

    6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지방선거 국면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를 공약으로 내건 지역은 최소 7곳으로 거론된다. 충북과 대구, 전북, 전남·광주, 강원 등에서 "삼성 팹 유치" "용인 산단 일부 이전"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같은 공약이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전남·광주권에서는 500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구상까지 제시됐다. 반도체 공장 하나만 들어와도 지역 경제 지형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평택은 삼성전자 캠퍼스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도시다. 공장 가동 이후 상권과 주거 수요가 커졌고, 인구도 14년 전 42만명 수준에서 올해 61만명까지 늘었다. 지역 입장에선 "삼성만 들어오면 도시가 달라진다"는 기대를 품을 만하다.

    하지만 평택의 성공을 결과만 보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평택은 처음부터 수도권 전력망과 광역 상수도, 교통망, 항공물류 접근성, 기존 생산거점과의 연계, 협력사 집적이라는 조건을 함께 갖춘 곳이었다. 반도체 공장 유치의 성패는 선언이 아니라 인프라가 가른다. 평택은 정치 구호가 만들어낸 도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산업 기반 위에 공장이 올라간 사례에 가깝다.

    ◇새만금 이전론 키운 것은 정치권만이 아니었다

    이번 논란이 더 커진 배경에는 중앙정부의 어정쩡한 초기 대응도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입주하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며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되는 것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새만금 이전론과 지방 분산론을 사실상 공론장 위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용인시와 산업계에서 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논란이 확산된 뒤에야 청와대는 1월 8일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기업 이전은 기업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장관 발언 이후 2주 가까이 해석 경쟁과 정치권 공방이 이어진 뒤에야 공식 진화가 나온 셈이다. 업계 안팎에선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반발 여론이 커진 뒤에야 수습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왔다.

    더구나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은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승인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단까지 받았다. 이미 국가산단 계획의 법적 정당성이 다시 확인된 상황에서 선거 국면마다 입지를 흔드는 것은 산업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스스로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처럼 장기 투자와 대규모 기반시설, 협력사 연계가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산업일수록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더 중요하다.
  • ▲ 정치권의 일방적 공약은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사수 시민대책위원회 로고ⓒ시민대책위 제공
    ▲ 정치권의 일방적 공약은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사수 시민대책위원회 로고ⓒ시민대책위 제공
    ◇정작 삼성은 침묵, 현실성 있는 건 ‘원주식 기반 조성’

    정작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반갑지 않다. 정면 반박에 나서면 특정 지역 민심을 자극할 수 있고, 침묵하면 정치권이 다시 기대를 부풀리는 재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선을 긋기도, 그렇다고 호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놓인 셈이다.

    과거 총선 때도 삼성전자 본사나 공장 이전 약속이 잇따랐지만 관련 구상은 실제 기업 투자 계획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삼성이 직접 입장을 강하게 내기보다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대로 현실성 있는 지방 전략은 따로 있다는 평가가 많다. 원주 사례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원주는 반도체 공장 이전 자체보다 인력양성, 테스트베드, 신뢰성 검증센터, 소부장 기업 유치, 산업단지 조성에 초점을 맞춰 왔다. 반도체 교육기관과 실증 기반을 구축하고 관련 기업 유치 성과를 쌓아가는 방식은 "삼성 팹 이전" 같은 정치 구호보다 한 단계 현실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진다. 대기업 공장을 당장 끌어오겠다고 선언하기보다 기업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기반을 먼저 만드는 전략이라는 점에서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의 반도체 공약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표를 의식한 대형 유치 선언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업 기반을 쌓는 방식이다. 전자는 공약으로는 강할 수 있지만 실행 가능성은 낮고, 후자는 속도는 느려도 실제 산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는 선거 때마다 꺼내 드는 지역 개발 카드가 아니라 국가 제조업 경쟁력을 떠받치는 핵심 산업이다. 정치권이 이를 입지 나눠먹기식 공약으로 소비할수록 기업은 더 말을 아끼게 되고, 산업정책의 신뢰만 흔들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필요한 것은 전력과 용수, 인력과 물류, 소부장과 연구개발이 이어지는 산업 기반을 어떻게 축적할 것인지에 대한 경쟁"이라며 "표는 구호가 만들 수 있어도 산업은 결국 실행과 신뢰가 만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