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넘어 '숙적' 된 국내 전선업계 1·2위기술·특허·영업비밀 둘러싼 연쇄 충돌3년 끈 경찰 수사 마무리, 이제 공은 검찰에
  • ▲ LS전선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 ⓒLS전선
    ▲ LS전선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 ⓒLS전선
    국내 전선업계 1·2위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의 해저케이블 공장 도면 유출 의혹 사건이 검찰의 손으로 넘어가며 중대 분기점을 맞았다. 양사가 해상풍력과 초고압직류송전(HVDC) 시장을 겨냥해 해저케이블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경찰이 약 3년간 수사 끝에 대한전선 임직원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에게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기소하면 형사재판과 별도로 LS전선 측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불기소하더라도 민사 절차를 통해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법정에서 다시 다툴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양측이 추가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장기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경찰, 3년 만에 영업비밀 부당 취득으로 결론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최근 대한전선 임직원 4명, 가운종합건축사사무소 관계자 7명, 설비업체 관계자 2명 등 13명과 대한전선·가운종합건축사무소·설비업체 등 법인 3곳을 수원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다. 혐의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다. 

    경찰은 이들이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충남 당진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과정에서 LS전선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기술을 설계에 반영했는지 여부를 수사해 왔다. 가운종합건축사무소는 앞서 LS전선의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 일부 건축을 진행한 곳으로이후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 1공장 건설을 맡아 실행하는 과정에서 공장 도면 유출 의혹이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LS전선은 가운건축이 회사 내부 기술이 담긴 자료를 무단으로 대한전선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에는 이음새를 최소화하기 위해 케이블을 한 번에 설치하는 장조장을 포함한 생산, 보관, 이동 설비가 포함돼 있어 설계단계부터 핵심 보안사안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대한전선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대한전선은 타사 영업비밀을 활용한 사실이 없고 독자적인 기술과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당진 해저케이블 공장을 구축했다는 입장이다.

    검찰로 사건이 송치된 뒤 LS전선 측은 "해저케이블은 국가 핵심기술이자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의 기반"이라며 "임직원들의 수십 년간 노력과 헌신, 막대한 투자로 축적해 온 핵심 기술과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기술 탈취 및 침해 행위에 대해 원칙에 따라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전선 측은 "검찰 송치는 수사기관의 1차 판단으로 위법성이나 책임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면서 "대한전선은 당진 해저케이블 1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타사의 영업비밀을 활용한 사실이 없다. 향후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을 충실히 설명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 대한전선 당진 해저케이블 공장 ⓒ대한전선
    ▲ 대한전선 당진 해저케이블 공장 ⓒ대한전선
    ◆ 부스덕트 소송, 모회사 지분 매입까지 사사건건 '충돌'  

    두 회사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사는 앞서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 특허를 두고 5년 넘게 법정 공방을 벌였다. LS전선은 2019년 대한전선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일부 승소했다. 특허법원은 지난해 3월 2심에서 대한전선의 특허권 침해를 일부 인정하고 관련 제품의 생산·사용·양도 금지와 완제품·반제품 폐기, 손해배상 약 15억원을 명령했다. 이후 양측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LS전선 승소가 확정됐다. 

    7년 전에는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것을 두고 LS전선과 대한전선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냈는데 재판부는 LS전선에 단독책임을 묻고 손해 55억원 배상을 판결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모회사 간 갈등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대한전선의 최대주주인 호반그룹은 지난해 3월 장내에서 ㈜LS 지분을 매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LS는 LS전선 지분 90% 이상을 보유한 LS그룹 지주회사다. 당시 호반 측 지분율이 3%를 넘어서자 시장에서는 단순 재무투자를 넘어 경영권 압박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상장사 지분 3% 이상을 보유하면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 이사·감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 열람 등 일정한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 호반그룹은 지분 매입 사유로 '단순 투자'를 밝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호반그룹이 보유하던 ㈜LS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모회사간 갈등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호반은 해당 거래로 수천억원대의 차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당시 사건을 LS전선과 대한전선을 둘러싼 긴장 관계가 경영권 이슈로 번진 사례로 보고 있다. 


    ◆ 해저케이블 패권 경쟁 치열한데…  

    이번 사건은 국내 해저케이블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는 두 기업이 글로벌 전력망 시장을 앞두고 정면 충돌한 사안으로 특히 경찰이 3년 가까이 수사를 이어온 끝에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넘겼다는 점에서 업계는 향후 검찰 판단과 법정 공방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업계가 이번 사건을 무겁게 보는 이유는 쟁점이 단순히 케이블 제품 기술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설비 배치, 생산라인 구성 방식 같은 제조 인프라 노하우가 영업비밀로 인정될 수 있는 지에 있다. 

    해저케이블은 일반 전선과 달리 생산 설비 규모가 크고 공정 난도가 높다. 수백㎸급 초고압 전력을 바다 밑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생산라인 배치, 설비 구성, 공정 동선, 품질검사 체계가 유기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공장 설계가 생산성, 수율, 품질, 납기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특히 HVDC 해저케이블은 진입장벽이 높은 사업으로 꼽힌다. 공장 1곳을 짓는 데 수천억원대 투자가 필요하고, 수직연속압출(VCV) 설비와 대형 권취·검사 설비 등 전용 인프라가 요구된다. LS전선이 동해사업장을 중심으로 해저케이블 생산 역량을 키워온 반면, 대한전선은 당진 해저케이블 공장을 앞세워 후발주자로 속도를 내고 있다. 양사가 모두 해상풍력과 장거리 송전망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해저케이블 시장 주도권 경쟁과 맞닿아 있다. 


    ◆ 검찰 판단에 따라 법적 다툼 갈린다

    해저케이블 공장 도면 유출 의혹은 검찰 판단에 따라 향후 전개는 크게 갈린다. 검찰이 기소할 경우 형사재판이 시작된다. 이 경우 LS전선은 형사재판과 별도로 손해배상 청구나 영업비밀 사용금지 등 민사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대한전선도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혐의를 다투게 된다. 기소 자체만으로도 대한전선은 해외 발주처 실사와 대형 프로젝트 입찰 과정에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불기소가 나오더라도 분쟁이 끝날 가능성은 낮다. 검찰이 영업비밀성 자체를 부정한 것인지, 영업비밀은 인정하되 형사처벌에 필요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인지에 따라 후속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영업비밀성은 인정하면서도 형사 입증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LS전선이 민사소송으로 다시 다툴 여지가 크다. 반대로 영업비밀성 자체가 부정될 경우 LS전선은 기술보호 범위와 제도 보완 문제를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대한전선 역시 검찰 판단에 따라 대응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불기소가 나올 경우 대한전선은 독자 기술과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해저케이블 사업을 추진했다는 기존 입장을 강화할 수 있다. 다만 LS전선이 민사 대응에 나설 경우 당진공장 설계 과정과 협력업체 관리 체계 등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장기화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와 생산라인 구축 노하우를 법적으로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검찰 판단은 하나의 분기점일 뿐, 양측의 법적 공방은 법원 판단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