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 도서출판 <기파랑>>이 펴낸 880쪽의 방대한 논문집이다.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건국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 26편의 논문들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 “이승만과 미국이 분단의 원인” 이라고 보지 않는, 대한민국 건국을 진정 가슴 쓸어내리며 다행스럽게 역이고 자랑스럽게 역이는 국민들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왜 지당한가?”에 대한 학술적인 근거와 논리를 제공해주는 역작이다.


     “이승만의 건국노선” “근대 국민국가 체제의 막을 연 건국헌법” “대한민국 국가 만들기와 그 의의” 등의 제목이 보여 주듯, <재인식>은 극좌파, 민족주의 좌파, 일부 민족주의 우파, 중간파...들이 추구한 사회주의 변혁이나 좌우합작 노선을 배척하고 “가능한 자역에서나마 유엔감시하의 자유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체제의 근대적 국민국가를 세우기로 한 건국선배들의 선택이 얼마나 옳았는가 하는 것을 객관적이고도 학문적인 형식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매사 남노당의 전략전술대로 되었다거나, 김일성과의 좌우합작을 했다거나 했을 경우 오늘의 한반도는 과연 어떻게 되었겠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거의 확실한 추정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좌우합작을 거부한 이승만의 건국노선을 반(反)통일적인 분단의 ‘원흉’이라고 매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남쪽의 그런 자구책이 있기 훨씬 전부터 소련의 지시대로 김일성이 인민위원회라는 '정권'을 만들어 ‘민주기지’ 즉, 북한을 우선 공상당 1당독재의 아성으로 만든다는 '분단' 방침을 착착 추진한 것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는가? 김일성이 그런 것은 분단 행위가 아니고, 그에 대해 자유진영이 방어적으로 대처한 것만 분단이라 한다면, 세상에 그런 불공정한 판정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38선 이북에 배타적인 혁명독재를 추진했다는 것 자체가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 원초적 총체적 분단행위다. 공산당 1당 독재, 김일성 1인 독재가 서는데, 자유민주체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가만히 앉아서 눈 멀건이 뜬 채 죽으라는 말인가?

     중간파 사이의 좌우합작, 남북협상 때의 김구 등 일부 인사들의 북행(北行)은 무위로 끝났다. 이런 유파(類派)의 비장한 충정은 물론 충분히 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합작정권 시대는 조만간 통일전선의 마지막 효용성이 떨어졌을 때 동유럽의 경우처럼 우파와 중간파는 집에 가서 애보는 정도가 아닌, 함경도 어느 오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노선은 비(非)좌파에게는 최선의 또는 차선의 선태이었고, 그 선택으로 인해서 우리가 자유도, 인권도, 법치도, 지구적인 근현대 문명도, 시장경제도, 보수민주주의도, 진보민주주의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보수? 그건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진보? 그것도 대한민국 헌정체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김정일 아래서는 진보도 가능하지 않다. 거기선 이쪽 잣대의 진보로 튀었다가는 수구반동 김정일 수령 돋재에 의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특히 마르크스 레닌주의 어쩌구 떠드는 사람일수록 모가지 조심해야 한다. 거기선 머르크스-레닌이 금서(禁書)이기 때문이다. 의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는 아예 서유럽 수정주의 반동집단의 간첩으로 몰릴 것이다.

     남쪽에서 공산당 하다가 넘어간 사람들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몰살시킨 그들이, 공산당 근처에도 간 적 없는 김구 김규식을 일정 단계 이후에도 계속 우대했을 리는 절대로 없다. 그저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간혹 대남 선전용으로나 이용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대한민국 건국노선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는 그래서 이제는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고 승자의 만세를 불러야 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재인식>을 펴낸 집필진, 편집인, 발행인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