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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참여연대는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바깥세상으로 나온 한국 좌파진영의 발전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최근 들어 참여연대는 그 속내를 완전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활동하고 있다는 참여연대의 고민은 어떤 것일까.
참여연대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참여연대는 처음부터 운동권 출신들의 권력 진출을 위해 선배와 후배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이들의 공직 진출은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시작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참여연대 사람들은 승승장구했다. 참여연대의 자문위원, 고문, 각종 위원장을 맡았던 이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다양한 정부 직책을 얻었다.
실제 2006년 9월 자유기업원이 출간한 ‘참여연대 보고서’ 중 ‘참여연대의 권력유착’ 편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참여연대 임원 150여 명이 313개의 공직을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참여’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에서는 158개 공직에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맡은 자리 또한 그저 명목상의 지위만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대통령 산하기관에 121개, 국무총리 산하 기관에 35개, 정부 각 부처 산하 88개 등으로 ‘참여연대는 권력층 진출의 창구’라는 지난 정권 당시의 조롱이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통령 산하 자리 중 63군데(52.1%), 각 부처 산하 자리 중 51군데(58.0%)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 임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잘 알려진 이로는 한명숙 前총리, 김명곤 前문화관광부 장관, 권오승 前공정거래 위원장, 이백만 前청와대 홍보수석, 곽노현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등이 있다. 한명숙 前총리가 참여연대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1999년 공동대표를 지냈다. 김명곤 前문화관광부 장관은 1997년부터 자문위원을 맡았다. 권오승 前공정거래위원장은 참여연대 자문위원을,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운영위원을 지냈다.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는 참여연대에서 집행위원, 고문, 자문위원, 운영위원 등을 두루 거쳤는데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규제완화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런 참여연대의 승승장구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쇠락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맡았던 자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거나 폐지됐다. 그들은 자신의 원래 소속으로 돌아가거나 시민단체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 4월 촛불난동으로 그들의 힘이 다시 빛을 발하는가 싶었지만 이내 수그러들었다. 그 이후 벌어진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도 나섰으나 예전같은 호응은 얻지 못했다. 최근에는 11월 열릴 예정인 ‘G20 대응회의’에 옵저버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으나, 별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의 고민
설립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권력의 핵심까지 근접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추락한 탓일까.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목표를 모색 중이다. 하지만 그들의 본래 이념과 가치관은 변함이 없다.
최근 김기식 집행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민주대연합을 통해 복지 정책을 최우선으로 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 후 나온 것이다.
6.2 지방선거 직후 민주당,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성향의 정당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며 기뻐했다. 2012년 대선에서 자신들이 승리할 것만 같은 느낌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곧 그들의 ‘뇌내망상(腦內妄想)’임이 밝혀졌다.
지방선거 직후인 6월 3일부터 5일까지 중앙일보와 한국리서치, SBS, 동아시아연구원(EAI)이 공동으로 전국 904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범야권이 잘 해서’라는 응답이 2.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범야권이나 무소속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라는 대답도 8.8%에 불과해, 지방선거의 결과는 ‘좌파 진영이 잘해서가 아니라 현 정권에 실망해서’ 나온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범야권은 발칵 뒤집어졌다. 지방선거에서 선전했다고 좋아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참여연대 또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MB정부 심판’이라는 선전활동은 어느 정도 효과를 봤느지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공감한다'는 응답자가 65.6%에 달했지만 그 반대급부를 챙길거라 생각했던 야권에 대한 지지율은 '민주당과 야권 후보가 나아서'라는 응답자까지 포함해도 11.2%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참여연대 핵심 지도부는 고민 끝에 복지와 ‘민주 대연합’이라는 해법을 내놨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2010년 6월 11일 자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자유주의 세력과 사민주의적 진보 세력이 ‘큰 집’을 짓고 그 내부에 모여 역동적으로 경쟁하면서 대안과 미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식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드러낸, 새로운 대안은 바로 미국 민주당 방식의 거대연합.
그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연대의 성과를 기반으로 하나의 연합정당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여러 정파가,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 세력(민주당)부터 사민주의적 진보 세력(민노당 등)까지 역동적으로 경쟁하게 되면 혁신과 미래 비전의 동력이 생기지 않겠냐”면서 “미국 민주당의 경우 리버럴(자유주의)부터 프로그레시브(진보주의)까지 다양한 세력이 그 안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면서 역동성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김 위원장은 이런 기초 인식과 목표 속에서 꾸준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는 ‘민주대연합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5일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이를 조금 더 발전시켜 구체적인 정책 목표까지 내놨다. 바로 ‘복지동맹-연합정당론’이다. 그는 “지방 선거에서 좌파 교육감들이 당선된 것의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가 바로 ‘무상급식’이며, 이런 국민들의 바람은 복지국가에 대한 강한 열망”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최근 박근혜 前한나라당 대표의 활동을 보면)다음 대선에서는 복지문제를 자기 아젠다로 가져가려는 건 분명해 보인다”면서 “민주개혁진보진영이 반MB-정권탈환론으로 나서서는 안 된다. 자칫 (복지국가라는) 진보의 가치를 보수에게 빼앗길 수 있다”며 좌파 진영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김기식 정책위원장의 주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와 주요 언론에 의해 지난 정권 당시 좌파 진영의 문제점과 민주당 등의 실정이 공개되면서,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좌파 진영 전반이 대중적 지지 기반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고선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실패에 달린 참여연대의 미래
좌파 진영이 이 주장대로 움직인다면 2012년 대선을 통해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참여연대 또한 그들이 원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다시 펼칠 수 있을까. 확실한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활동을 보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그들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지하는 것인 듯하다.참여연대의 속내가 아직도 그대로인 건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의 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UN안보리 서한발송’ 사건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좌파 성향의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펼치고 있다.
그는 6월 17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은폐된 진실의 문제제기는 시민단체의 책무”라며 참여연대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했다. ‘정부의 천안함 사태를 다루는 태도를 보면서 국민들이 이를 또 선거에 이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했다’는 주장도 했다.
지난 6월 21일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던지는 것,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시민운동의 사명이다. 물론 우리가 최종적으로 틀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이 많은 시민들의 질문을 대변하는 것을 멈추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운동이다. 살아 있는 운동이라면 시민들로부터 의문이 제기될 때 용기 있게 대변해야 된다, 그게 참여연대의 창립정신이고, 앞으로도 우리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지켜야 할 정신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며 자신들의 행동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참여연대 핵심 책임자의 생각이 과거 그들의 ‘대중적 지지기반’이었던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 플러스’가 지난 5월 28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천 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정현안국민여론조사’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 조사결과를 믿느냐’는 항목에 응답자의 72.6%가 ‘신뢰한다’고 답한 것이다.
또한 앞서 인용한 6.2지방선거 직후 중앙일보-SBS 등의 공동여론조사에서도 여당을 반대한 이유 중 ‘천안함 관련 불신’이 10.8%에 불과했다는 점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여기다 참여연대가 발간하는 <월간 참여사회>에 실린 글에 따르면 최근 UN안보리 서한 발송과 우파단체의 시위 이후 일주일 사이 1천여 명이 새로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자랑하지만, 총 회원 수가 1만500여 명(회비 납부자 기준)이고, 일일 탈퇴자가 50여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이 같은 여론조사를 포함, 참여연대의 그간 활동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있고, 참여연대의 UN안보리 서한 발송에 분노한 국민들이 지금도 다수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현 정부가 심각한 실정을 저지르거나, 좌파 진영 전체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참여연대의 쇠락은 소리 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