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큰시장.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문을 연 상인들과 점심 장보기에 나선 손님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벌겋게 버무러진 떡볶이와 쫄깃한 순대, 뜨끈한 올갱이 된장국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정겨운 풍경. 파릇한 과일과 채소, 얼음 마사지를 하고 있는 생선들, 짭짜름한 냄새를 풍기는 건어물들 까지 미로같은 골목 구석구석 없는 것이 없는 보물상자다.

    지난 12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68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의 미소금융사업 이후 고리로 일수업을 하던 10여명의 사채업자가 사라졌다는 보고였다. 미소금융사업의 첫 결실. '불법 고리사채'로 인해 골치를 겪으면서도 '신용' 탓에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웠던 재래시장 상인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킨 막대한 성과였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도마큰시장의 미소금융 수혜자 점포에 방문해 격려하고 있다(왼쪽부터 금융위원회 권혁세 부위원장, 대전광역시 염홍철 시장, 미소금융중앙재단 김승유 이사장) ⓒ 뉴데일리

    그 주인공은 바로 이 곳, 도마큰시장. '도마동의 큰(大) 시장'이라는 뜻의 도마큰시장은 1960년대 초반 주택가 골목에서 시작돼, 현재 대전 서남부권 뿐만 아니라 근동의 시, 군, 읍을 포함하는 광역권 손님들이 찾는 중부권 최대의 단일 종합시장으로 성장했다. 도마큰시장은 현재 노점상 160개를 포함한 총 494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상인과 노점상, 종업원 등을 포함한 총 1,940여명이 밀집해 운영되고 있다. 일일내방객은 주중 16,000여명, 주말 22,000여명에 달한다.

    ◆ 금액 회전율 400%, 상환율 100%. '사채업자' 설 곳 없는 도마큰시장성공 비결은?

    도마큰시장 상인회는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부터 2009년과 2010년 2회에 걸쳐 2억원의 대출자금을 교부받아 현재까지(20일 기준) 총 207건, 7억4천4백50만원의 대출을 집행했다. 금액 회전율 400%에 달하는 성과. 대출액중 약 97%를 어려운 소상인들의 상환능력을 고려해 100일에서 200일의 일수상환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의 회수율은 100%다. 대손율이 높아 최소 30~40%대의 금리는 받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서민대출 상품의 상식을 깨뜨린 성공사례다.

    진짜 '신용'을 되찾은 도마큰시장 상인들의 얼굴은 유독 밝아보였다.

    손중달(56) 상인회장은 "이곳 사람들은 모두 새벽 3시부터 저녁 10시가 넘어서까지 말 그대로 '피 같은 돈'을 벌고 있다"며 "최근 정부의 규제로 미소금융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불과 3년여 전만 해도 모두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는 것 조차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사채에 손을 벌리고, 고금리에 삶이 피폐해지는 악순환을 겪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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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마큰시장 손중달 상인회장이 과거 고금리 사채업자들에게 피해를 당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

    과거에는 연이자 70%를 육박하는 고리로 일수업자에게 100만원을 빌려 쓰면 100일동안 매일 1만2000원씩을 갚아야 하는 구조였다면, 미소금융은 여유 있는 날 아무때나 1만2000원을 이자로 내면 된다. 더이상 그 누구도 사채업자에게 가려 하지 않는 분명한 이유다.

    그는 "지금 도마큰시장에는 사채업자들이 모두 사라졌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매일 가게 문을 열 때마다 눈에 띄었던 사채업 광고 전단지가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간혹, 미소금융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이 한 두명 들어올 때도 있지만, 곧장 나가버린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도마큰시장에서 미소금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우선 금리와 자격요건을 꼽았다. 일반 자금 대출과는 달리 '맞춤형 금융상품'인 만큼, 상인들의 편의에 맞춘 간편한 절차가 큰 호응을 얻었다. 신청서와 주민등록 사본, 임대차 계약서 등 최소한의 서류로 1천만원 이내를 연 4.5%가량의 이자로 빌릴 수 있다.

    이러한 절차 간소화가 이뤄질 수 있는 까닭은 일반 기업과 정부가 아닌, 시장상인회가 직접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담보·무보증 대출인 만큼 그동안 꼼꼼한 자격 심사로 인해 일부 불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던 미소금융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재래 시장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상인회가 직접 자금을 융통함으로써 빠른 자금회전과 높은 회수율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실질적으로 미소금융의 지출을 낮춰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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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채업 광고들 ⓒ 뉴데일리
    또 하나의 성공 비결은 '일수'로 자금을 융통한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영세상인들의 경우 물건 구입 값 등 한 번에 큰 돈이 필요하지만, 실제 수중에 언제나 몫돈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날 그날 물건을 더 사두고, 집에 쌀이 떨어지면 사오고, 아이가 학비를 달라고 하면 주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갚아야 할 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모두 써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자금을 짧게 돌려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제대로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일수가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손 회장이 도마큰시장에 터를 잡은 것은 30여년 전. 단칸 셋방에 부인과 아이들을 데려와 이곳에서 수산물 장사를 시작했다. 그에게 도마큰시장은 이미 '삶의 터전'과도 같은 것. 이곳에 있는 다른 상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손 상인회장이 강조하는 것 역시 여기에 있다. 그가 돈을 빌리러오는 상인들에게 언제나 강조하는 말은 한가지. "보증인이 상인회가 아니라 당신의 옆과 앞의 이웃들이다. 만일, 이것이 깨진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는 마련돼 있다. 현재는 대출금의 회수율이 놓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만일 대출액이 회수되지 않을 경우에는 지자체와 구, 상인회가 각각 30%씩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손 회장은 "돈을 융통하는데 있어 위험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시장 상인들 만큼은 손해가 나면 내 집을 팔아서라도 갚겠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추석 긴급자금의 신청을 받았지만, 신청자가 몰려 이미 금액을 초과된 상태"라며 "요청금액을 하향조정해서라도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게 하겠다"고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도마큰시장에 전통시장 소액대출 추가지원금 1억원을 전달하고 있다(왼쪽부터 미소금융중앙재단 김승유 이사장,금융위원회 권혁세 부위원장, 하나은행 김정태 은행장,염홍철 대전광역시장, 대전 도마큰시장 상인들) ⓒ 뉴데일리

    추가 지원금 1억원 전달SK미소금융재단 한민시장 고객지원센터 개소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이날 도마큰시장을 방문하고 전통시장 소액대출 재원으로 추가 지원금 1억원을 전달했다. 미소금융이 추구하는 모범사례로서 자리매김한 도마큰시장의 성과를 격려하기 위한 목적이다. 김승유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염홍철 대전광역시장, 김정태 하나은행장, 신헌철 SK미소금융재단 이사장 등 주요 관계자들도 자리를 같해 "대전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전통시장 소액대출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며 "꼭 필요한 상인들에게 자금이 돌아가는 만큼, 얼마든지 예산을 배정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권혁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재래시장 지원 뿐 아니라 SK미소금융재단의 화물업자 지원 등 맞춤형 지원사업으로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사회적 문제와 정부의 세금감면 요구 등 현상이 미소금융을 정점으로 사라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 SK미소금융재단은 대전 서구지점 개소식을 대전 한민시장 고객지원센터에서 열었다. 특히, SK미소금융재단은 대전 서구 외에도, 경기 광명, 서울 금천 2개 지점을 이날 함께 개소하여 총 8개 지점으로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미소금융 전국지점은 63개소로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