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 모조리 비상포스코 등 철강 셧다운 잇따라트럼프-중국 무역 충돌 격화땐 반도체도 충격파
  • ▲ 롯데케미칼 울산공장ⓒ롯데케미칼
    ▲ 롯데케미칼 울산공장ⓒ롯데케미칼
    트럼프 2.0을 앞두고 쏟아지는 중국발 저가 공세에 우리 산업 전반이 뒤틀리고 있다. 석유·화학, 철강 등 기간산업으로 꼽히는 제조업이 먼저 타격을 입고 있는데 미중간 무역갈등이 더욱 확산되면 반도체 등 첨단산업도 충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등 국내 대표 석유화학기업들은 3분기 모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이 413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LG화학과 한화솔루션도 각각 382억원, 310억원을 기록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부진은 중국의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며 공급 과잉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36.3%로 가장 크다.

    중국 정부가 내수 부양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시장에 풀면서 중국 기업들이 현지 생산시설을 늘리고 저가 공세에 나선 영향도 있다. 지난달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시장 예측을 뛰어넘는 50.1%로 집계됐는데 이는 6개월 만에 '기준치 50'을 상회한 것이다.

    석유·화학 기업을 계열사로 둔 LG, 롯데 등 그룹사들은 모조리 비상이 걸렸다. LG화학은 올해 초 스티렌모노머를 생산하는 대산·여수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추가 공장 매각 가능성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도 지난해 지난해 중국 공장을 모두 정리한 이후 말레이시아 자회사 매각도 검토 중이다.
  • ▲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19일 마지막 선재제품을 생산하고 가동을 중단했다ⓒ포스코
    ▲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19일 마지막 선재제품을 생산하고 가동을 중단했다ⓒ포스코
    철강도 중국발 위기에 고스란히 노출된 산업이다. 현대제철이 포항 2공장을 폐쇄한데 이어 포스코는 45년 넘게 가동해온 포항 1선재공장을 닫았다. 지난 7월 포항 제1제강공장에 이어 두번째 셧다운이다. 와이어로프 등에 들어가는 선재가 중국산으로 대체되는 추세가 심화되면서 가격 경쟁력에서 뒤쳐진 영향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철강 등 1차 제조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자동차·조선·건설 등 전방산업들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공급 과잉을 저가 수출로 해소함과 동시에 제조업 마진 훼손을 불러오며 자동차, 2차전지, 철강, 태양광 등 산업 전반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2기… 韓 산업 충격 불가피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이어지는 미국의 트럼프 2.0시대 개막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제조업 기반을 흡수하는 상황에서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주도권도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전미무역협회 존 매디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이 미국 제조업 부활보다는 아시아 내 제조업 재편을 촉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에 집중된 제조시설이 인도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이동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 제조업은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공급망 연계성을 고려한 대중 수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가 제시한 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 연계 생산은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진출이 상당 부분 이뤄진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기업들도 향후 사업 전략을 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 트럼프는 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 카드를 내비쳤는데 현지에 진출한 현대차그룹의 기아 공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규제 수위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예의주시하는 지점이다.

    미국은 안보 문제를 이유로 중국에 최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규제를 매년 강화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5나노 이하 기술에 대해 미국인이 투자 및 관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킨다. 단순히 미국 자본을 묶는 조치지만, 우리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구형 반도체 기술은 중국이 거의 따라온 상황에서 수출길까지 막히면 피해는 불가피해지고, 광물자원을 손에 쥔 중국이 또다른 수출규제를 내놓을 수도 있다"며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는 건 결코 우리나라에 이로울 것이 없다"고 했다.
  • ▲ 1998년 대우조선해양 방문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장남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 당선인은 재선 당선 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의 조선업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콕 집어 말했다ⓒ연합뉴스
    ▲ 1998년 대우조선해양 방문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장남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 당선인은 재선 당선 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의 조선업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콕 집어 말했다ⓒ연합뉴스
    준비된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될 수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 심화로 우리 기업에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예컨대 트럼프 정부의 보편관세가 높은 수입의존도와 우리 제품과 경쟁하는 미국 제품의 경쟁력을 고려할 떄 업종에 따라 부정적 영향이 상쇄될 수 있다. 많은 한국 기업이 이미 미국에 투자해 성과를 내고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제조업 다변화를 억제하는 보호무역정책이 오히려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생산 네트워크 구축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별 생산기지 다변화와 기술력 격차를 벌리는 등 우리 기업의 펀더멘탈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 이후 우리 조선업이 기술력으로 조명되며 승승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강한 경쟁력을 지닌 기업은 지금의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면서 "최첨단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하는 구도를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