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은행 사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한다는 주변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재동포 황무영씨의 ‘신한은행 사태에 즈음하여’ 라는 글의 전문을 여기에 싣기로 하였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신한은행 사태에 즈음하여’
    많은 재일한국인주주들은 최근 벌어진 신한은행그룹의 사태를 원인도 모르고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라응찬 전은행장, 신상훈 직전은행장, 이백순 현은행장이
    서로 고소·고발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모두 함께 동고동락하며 오랫동안 일해 온 사이가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당초 설립 시에는 주주의 거의 대부분이 재일동포 한국인 1세로, 조국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재일한국인 주주들이 주식을 본점에 맡기고 배당금만 받았었는데, 소유 주식수의 다소나, 주가의 부침에는 관심 없이 매년 받는 배당을 고대하면서 서울에서 서로 만나는 것을 낙으로 삼았었습니다.
    현재 신한은행은 업계에서 최상위권으로 진입했지만 그 당시의 신한은행은 소규모의 은행으로 미약한 금융기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 한국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본점과 2~3개소의 지점으로 시작한 신한은행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습니다.
    당시의 신한은행은 재일한국인이 투자한 은행, 깨끗한 은행, 믿을 수 있는 은행의 이미지로, 은행창구는 활기찼고 직원들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은행이었습니다.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재일한국인 주주들은 그러한 신한은행을 믿음직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신한은행의 경영에 재일한국인의 뜻이 상당히 반영되었습니다.

    그 후 재일한국인의 세대교체가 진행되었고, 일본은 경제 불황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본정부의 부실금융기관 퇴출의 일환으로 재일한국인 금융기관인 각 지방의 商銀신용조합과 오사카興銀신용조합이 줄줄이 파산되었습니다. 오사카興銀신용조합은 재일투자금융주식회사설립과 신한은행설립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희건회장이 관계한 조합이었습니다. 이회장이 후계자로 지목했던 장남 이순재씨는 오사카興銀신용조합의 이사장, 신한경제연구소의 소장, 신한은행의 상무를 겸직하였지만 결국 일본에서의 불미스러운 금융사고로 인하여 퇴출되었습니다.
    재일한국인주주와 신한은행간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었던 재일한국인 원로1세들이 타계함과 더불어 이희건회장까지도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이희건-라응찬씨의 공동경영체제는 끝나고, 라응찬의 독주 경영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라응찬씨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재일한국인이 설립한 금융기관에 입사하여 현재의 지위에 이르면서 모든 권한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재일한국인의 소유 주식은 처음 100%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는 17%까지 비율이 줄어들었습니다. 작은 비율이지만 하나로 똘똘 뭉쳐있던 우리 재일한국인주주들은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방패로 사용하였던 우리 재일한국인 주주들에게 라응찬씨는 더 이상 신한은행이 재일한국인주주들의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노력해온 우리 1세들이 떠나간 사이, 라응찬씨는 자신을 신한금융그룹의 오너로 착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 중에는 라응찬씨를 신한금융그룹의 오너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라응찬씨는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시한부로 경영을 맡긴 것뿐입니다. 20년도 아니고 30년 이상 조직의 중심에 있으면서 지금도 그 정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은 과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일한국인 1세들의 개인적인 본국진출에는 많은 위험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생긴 것이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였습니다. 이것이 산실이 되어 역사상 처음 재일한국인이 공동 투자하여 1977년에 재일투자금융주식회사가 탄생하게 되었고 라응찬씨는 당시에 그 회사의 부장으로 입사하여 이사, 상무로 재직하였습니다. 우리 재일한국인주주는 당시에 경영에는 관계하지 않고 1년에 20%가 넘는 배당을 받으면서 기뻐했었습니다.

    이희건 회장의 평생 꿈이었던 은행경영은 전두환대통령의 허가로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신한은행입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신한은행은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라응찬씨의 수완은 인정합니다. 업계 최하위권에 있던 신한카드는, 카드 업계의 1위 LG카드를 흡수하여 동양 최대의 카드회사가 되었고, 또 업계 하위권이었던 신한은행은 국내에서 최고의 역사와 규모를 가진 조흥은행을 흡수하여 명실 공히 대형은행이 되었습니다. 또한 신한증권은 중견 증권회사를 흡수합병하여 몸집을 키웠습니다. 이와 같이 정상적인 노력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믿기는 어려울 만큼 회사의 몸집을 키워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급성장은 라응찬씨 특유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재일한국인의 경영철학은 없어진 것입니까? 우리가 원했던 것은 공명정대하고 건전한 금융기관이었고 우리의 경영철학을 모국에 심고자한 것이었습니다.

    신한은행 초기에는 감시기능이 있었습니다. 이희건-라응찬 체제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허필석 회장(재일한국인 도쿄 商銀신용조합)과 같은 중량급 재일한국인이 현역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은 없었지만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라는 공적인 조직도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재일한국인 1세들이 타계하기 시작하면서 본국투자협회는 라응찬씨의 관리 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신한금융그룹의 간판 역할이나 하고 대내외적인 풍파에 방패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신한금융그룹의 이사회는 라응찬씨의 주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일한국인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출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재일한국인 중에는 경제학자, 미래학자,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수한 인재가 많이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인재들을 활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태는 라응찬씨가 장기집권을 하려고 하다가 생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라응찬씨는 재일투자금융주식회사에 총무부장으로 들어와서 우리와 인연을 맺은 후 30년 이상 신한은행장을 3회 역임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신한지주회사를 만들고 거기서 사장, 회장을 네 번이나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국에도 일본에도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후계자 될 만한 사람은 제거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의 조국에 대한 꿈과 희망을 밟아버린 사실에 대해 어떻게 책임지겠습니까?
    라응찬씨는 이제 베일 속에 감춰진 비서실을 우리 주주들에게 공개하고 우리가 원하는 공명정대한 경영을 위해 능력있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라응찬씨, 신상훈씨, 이백순씨를 생각만 해도 화가 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한은행은 변함없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