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은행권 대출…디폴트 땐 금융권 간접영향
  • 국내 금융권이 국가부도(디폴트) 위기를 맞은 그리스 채권 5억달러(미화 기준, 약 5천400억원) 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채권은 유럽 국가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보유한 것보다 적은데다 대부분 선박을 담보로 받아 그리스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더라도 직접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 금융권의 유럽계 자금 차입 비중이 커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으로 유럽계 자금이 본격적으로 이탈하면 간접적인 피해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디폴트와 유럽연합(EU)발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는 추가지원책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갈등과 그리스 정국 불안으로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 추가 지원안은 19일 유럽 재무장관 회담과 23~24일 정상회담 회의에서 논의된다. 채무조정안을 지지하는 독일과 반대하는 유럽중앙은행(ECB), 프랑스 간의 이견이 해소될지 주목된다.

    ◇韓은행권 5억달러 그리스 선박금융 채권 보유
    금융감독원은 19일 국내 금융기관이 올해 3월 말 현재 미화 기준으로 5억달러의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두 달 동안 채권 규모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은행권이 전량을 갖고 있다. 대부분 선박금융과 관련한 대출채권이다. 금감원은 구체적인 은행별 보유 현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정도 규모는 선진국 주요국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으로 프랑스가 그리스 국채 409억유로(약 62조2천억원)를 보유하고 있다. 독일(246억유로), 벨기에(100억유로), 이탈리아(96억유로) 순으로 액수가 많다. 유로존 보유 비중은 54%에 달한다.

    미국과 일본의 그리스 국채도 각각 21억유로, 37억유로로 한국보다 훨씬 많다.

    그리스 국채 3천300억유로 중 22%인 720억유로는 그리스 은행권에 있다. 나머지는 전세계 금융기관에 분산돼 있다.

    회사별로는 BNP파리바(50억유로), 덱시아(35억유로), 소시에떼 제너랄(20억유로) 등 프랑스계 금융회사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5일 프랑스 대형 시중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규모나 내용 안정적…간접피해는 클 듯
    국내 은행권이 보유한 그리스 채권은 소규모인데다 대부분 선박금융 관련 채권이어서 손실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선박금융이란 통상 해운회사가 선박을 담보로 빌리는 장기융자다. 그리스 해운사가 선박을 담보로 맡기고 한국 은행권에서 돈을 빌려 갔다.

    해운업은 관광산업과 함께 그리스 경제의 양대 축이다. 작년 세계 조선업계의 총 발주물량 3천8백만CGT(표준 화물선 환산톤수) 중 30% 이상이 그리스 선주한테서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작년 10월 초 그리스 해운사를 대상으로 50억달러의 선박금융 펀드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선 그동안 국책 금융기관과 대형 시중은행 수 곳이 그리스 해운사 대출에 소극적으로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재천 대신증권 연구원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박 담보 대출비율이 30%까지 떨어졌다. 채무자인 해운사가 파산해도 자금을 환수할 수 있어 위험도가 낮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간접 피해를 우려하기도 했다.

    스페인 등 인접 유럽 국가들의 `도미노 위기'가 우려되는 와중에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으로 미국 경제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스 2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16일 30%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위기감이 고조됐다.

    유럽계 은행을 상대로 한 차입 비중이 50%에 육박하는 한국 외화차입 구조를 고려하면 동반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프랑스 은행이 그리스 위기로 신흥시장에서 여신을 줄이면 국내 은행권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외국인 증시 자금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유럽계가 자금을 회수해가면 수급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연구원은 "유로존 위기의 `반사적 영향'이 어떻게 작용할지를 놓고 예의주시해야 할 상황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