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 대물림 창구' 비판 부담..최소지분 가질 수도한화 "旣철수"..LG·SK "검토"..포스코 "수익없어"LG 서브원 등 압박 거세질 듯..최소지분 보유할 수도
  • 삼성이 1일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 철수를 전격 선언했다.

    지난 5월25일 계열 MRO 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IMK)의 사업 영역을 계열사와 1차 협력사로 한정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완전히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힌 것이다.

    삼성의 갑작스런 행보에 LG, SK, 포스코 등은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여러 대책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어차피 소상공인으로서는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반응도 보였다.

    ◇ 삼성 왜 손 떼나 = 삼성이 이날 내세운 명분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

    그러나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침범한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최대한 낮은 자세로 임했음에도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창구'라는 식으로 비난이 더욱 거세지자 아예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초강수를 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재계 안팎에선 삼성이 자발적 결정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결국 이번 결정의 이면엔 지난 5월 발표한 1차 대책에 만족하지 못한 정부 및 중소기업계의 고강도 압박이 깔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을 위시한 대부분 대기업 계열 MRO들의 사업영역 최소화 결정 이후에도 물량 몰아주기 관행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여왔다.

    회사 관계자는 "사업 영역을 제한하고 중소기업 추천 사외이사 선임, 이사회 산하 동반성장 자문기구 설치 등 다각적인 대책을 내놨지만 사회적 논란이 가시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따라서 백약이 무효인 바에야 지분을 완전히 털어냄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없애고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삼성은 이 회사 지분을 전부 내놓겠다고는 했지만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인수 회사와 매각 일정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과 동반성장 및 상생협력에 부응한다는 원래 의도에 충실하려면 유관단체나 협회, 관련 중소기업에 지분을 파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58.7%에 이르는 삼성 계열사 지분 전체를 중소기업 및 유관기관이 떠안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다.

    이날 기준 IMK의 시가총액이 9천400억원인 만큼 매각 대금이 적어도 5천여억원에 달하는데 중소기업 입장에서 이를 넘겨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 측은 "우리로선 취지에 걸맞은 원매자가 나타나면 가장 좋지만, 원매자를 지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삼성은 지분 전량을 매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매각을 원활하게 하고 지분 인수회사가 원한다면 최소한의 지분은 보유할 수도 있다는 태도다.

    또 삼성 계열사는 그간의 거래 관행을 지키고 구매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IMK와 거래 관계를 유지할 방침이어서 실효성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 다른 대기업에 영향 줄까 = 이번 사업 철수 결정이 다른 대기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지난 5월에도 삼성의 영업 제한을 시작으로 LG서브원 등 다른 기업이 줄줄이 비슷한 대책을 내놓은 만큼 재계 전반이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의 소유권을 비롯해 기업지배 구조 등이 복잡하게 얽힌 만큼 삼성과 같이 과감한 지분 매각 결정까지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획기적인 2차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있다는 게 재계 안팎의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대기업 계열 MRO 중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곳은 LG의 서브원(3조8천478억원)이고 이어 삼성 IMK(1조5천492억원), 포스코의 엔투비(6천36억원), 웅진홀딩스(3천528억원), 코오롱 코리아이플랫폼(4천639억원), SK의 코리아MRO(1천28억원) 등 순이다.

    삼성보다 먼저 사업 철수를 선언한 곳은 한화다.

    한화 측은 이미 지난 6월 MRO 회사인 한화S&C의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한편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당국에도 통보했다고 밝혔다.

    LG는 이날 "사회에서 여러 각도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대로 LG도 그 방향에 맞춰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SK 관계자는 "코리아MRO의 시장 점유율이 0.5% 이내로 영향 자체가 제한적이지만 대-중소기업 상생 등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여러가지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엔투비는 경쟁사와 달리 대기업과 거래하기 힘드는 중소기업 3천여개사로부터 MRO 자재를 공급받아 포스코와 계열사 등에 일정 수수료(2~2.5%)를 받고 자재 구매를 대행해주기 때문에 중소 공급사의 납품단가를 무리하게 낮춰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른 대기업 계열 MRO 업체와 달리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준양 회장도 최근 엔투비를 방문해 동반성장 차원에서 영업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는 각오로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0.2~0.4%의 낮은 영업이익도 공급사나 구매사의 편의 향상을 위한 시스템 개선 등에 우선 사용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관련 단체는 별도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환영과 우려가 교차하는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일단 환영할 일이지만, 어차피 대형 업체인 IMK는 그대로 아니냐. 소상공인들 처지에서는 달라질 것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단체 관계자는 "삼성의 결정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MRO 사업 참여가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지만 어차피 다른 기업이 이 회사를 인수하면 똑같은 게 아니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