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준비위 "자발적 상생 참여"재계 사회공헌 확대 전기 될 듯
  • 범 현대가(家) 그룹사들이 모여 5천억원 규모의 사회복지 재단인 '아산나눔재단' 설립에 나서겠다고 16일 공식 발표하면서 재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지금까지의 많은 기업부설 재단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우선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의 무마 등 다른 요인이 개입되지 않고 오너들이 대의명분만을 위해 자발적으로 설립에 나섰다는 점이 눈에 띈다.

    기업 출연금이 아닌 사주들의 개인재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부문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 창업자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 떼를 이끌고 방북해 남북경협의 물꼬를 튼 것처럼 그의 후손들은 재벌의 사회공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안팎의 분석도 나온다.

    규모 면에서도 지난 2007년 8천억원을 들여 설립한 이건희장학재단(현 삼성꿈재단장학재단)에 육박하는 출연금을 확보했으며 향후에도 계속 확대될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산업계의 최대 화두로 '상생'이라는 키워드가 전면 부상했고 이 대통령이 지난 15일 '8.15 경축사'에서 같은 맥락에서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을 거듭 강조했다.

    아산나눔재단 설립이 다른 재벌기업들의 거액 기부 등 사회공헌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정주영 '나눔'정신 승계"..자발적 참여" = 범 현대가의 5천억원대 사회복지재단 구성과 관련해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대목은 설립 취지와 배경이다.

    범 현대가의 사회복지재단 출연은 지금까지 진행됐던 재벌들의 사회공헌 사례와는 차별성을 띈다.

    적지 않은 재벌기업들의 경우 물의를 빚은 사건 이후 기업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후약방문'식으로 사회공헌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범 현대가의 '아산나눔재단'에 참여하는 그룹사들을 보면 오너 일가 뿐 아니라 회사 경영과 관련해서 최근 검찰이나 사정 기관의 표적이 돼서 수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 없으며 불미스러운 소문도 들리지 않고 있다.

    아산나눔재단 준비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나눔'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양극화 해소를 위해 복지를 실현하고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재단 준비위는 특히 1977년 정 명예회장이 보유중인 현대건설 주식 50%를 출연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병원을 세우고 장학복지사업을 지원하는 등 함께 하는 공동체 구현에 매진했던 만큼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재단 발족을 준비해왔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숨겨진 의도는 없고 자발적인 상생 참여로 봐달라는 이야기다.

    재계에서도 이번 범 현대가의 사회복지재단 출연은 자발적 상생 동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분석을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 5천억 재원 어떻게 마련하고 쓰나 = 아산나눔재단은 지금까지 사회공헌 주체가 기업이었던 것과는 달리 오너들이 출연한 사재가 재원의 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아산나눔재단의 설립기금은 총 5천억원으로, 현대중공업그룹 6개사가 2천380억원을 출연하고, KCC 150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 100억원, 현대백화점 50억원, 현대산업개발 50억원, 현대종합금속 30억원 등이 380억원을 출연한다. 오너 일가가 운영하는 그룹사들이 총 2천760억원을 출연한 것이다.

    여기에 정몽준 의원이 현금 300억원과 주식 1천700억원 등 총 2천억원을 출연하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35억원),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부자(100억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50억원),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20억원),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20억원), 정몽진 KCC 대표이사 회장(10억원), 정몽익 KCC 대표이사 사장(5억원) 등 다른 오너 가족들도 사재 240억원을 출연한다.

    아산나눔재단은 그러나 5천억원이라는 금액의 용처 및 사업계획은 정하지 않은 상태다.

    재단 준비위원장을 맡은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는 재단 출범 시기 및 구체적인 사업 계획에 대해서는 "2-3주내에 출범할 것으로 예상하며 어떤 사업을 전개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의 뜻을 기리는게 재단 설립 취지라고 한 만큼 정 회장이 생전에 벌였던 장학사업이나 병원 설립 등 소외계층 의료지원 뿐만 아니라 정주영에 버금가는 청년 실업가의 육성을 위한 지원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재계는 예상하고 있다.

    ◇ 재계 사회공헌 확대될까 = 이번에 설립되는 '아산나눔재단'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8.15 경축사'에서 새로운 화두로 제시한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과 맞물려 재벌 기업들의 사회공헌 참여를 늘리는 일대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날 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 경제의 모델이 요구된다고 말한 부분에 주목하면서 범 현대가의 이번 복지재단 출연이 다른 재벌 기업들로 하여금 사회복지 기여도를 더 높이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범 현대가의 자발적 사회복지재단 출연은 액수 뿐 아니라 대표적인 재벌 오너 일가의 대대적인 참여라는 측면에서 볼 때 향후 다른 재벌 기업들의 사회공헌 참여를 늘리도록 하는 일대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미국의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등 거부들이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됐는데 아산나눔재단 구성을 계기로 국내에도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