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공동체 건설'이 정주영 명예회장의 생전 뜻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8일 5천억원대의 사재를 기부하기로 함으로써 고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든 범현대가가 2주만에 무려 1조원을 사회에 공헌한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아직도 사회공헌활동은 기업 위주로 하는 풍토가 강한 한국 재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범현대가가 기업 오너 개인들의 사재 출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정 명예회장의 생전 뜻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범현대가와 재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 ▲ 고 정주영 명예회장 부부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 고 정주영 명예회장 부부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정 회장의 5천억원 기부 발표는 지난 16일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을 제외한 범현대가 그룹사들이 5천억원 규모의 사회복지 재단을 만들기로 발표한 이후 2주도 채 되지 않아 나왔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범현대가가 2주만에 총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출연키로 한 것이다. 범현대가에서는 해비치재단과 아산나눔재단 이외에도 현대산업개발의 포니정재단, 현대백화점 사회복지재단 등 개별적으로도 사회공헌을 위한 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나 일단 가장 덩치가 큰 해비치재단과 아산나눔재단만 해도 재단 출연금이 웬만한 중견기업의 총자산을 능가하게 됐다.

    또 두 재단 모두 앞으로 출연규모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돼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나 카네기재단처럼 초대형 사회복지재단이 한국에도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대가의 복지사업은 정명예회장의 철학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그 뿌리는 34년전 아산이 설립한 아산복지재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산은 복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77년 7월 현대건설 주식 500억원 상당을 출연해 이미 의료사업과 사회복지 및 학술연구를 지원하는 아산재단을 설립한 바 있다.

    당시 출연한 500억원의 가치는 오늘날의 평가액으로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신을 '조금 부유한 노동자'라고 즐겨 표현했던 그는 "함께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나의 궁극적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정 명예회장의 후손들은 고인이 설립한 아산복지재단이 잘 운영되도록 측면에서 돕는데서 만족하지 않고 직접 사재를 출연해 또다른 형태의 사회공헌에 나섬으로써 그의 유지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정몽준 의원이 주도한 아산나눔재단에 이어 해비치재단도 개인 재산을 들여 설립했다는 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정몽준 의원 주도의 아산나눔재단의 설립기금은 총 5천억원.

    현대중공업그룹 6개사가 2천380억원을 출연하고, KCC 150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 100억원, 현대백화점 50억원, 현대산업개발 50억원, 현대종합금속 30억원 등 나머지 기업들이 380억원을 출연키로 했다.

    특히, 정몽준 의원이 현금 300억원과 주식 1천700억원 등 총 2천억원을 출연키로 하고, 정상영ㆍ정몽근ㆍ정몽규ㆍ정몽윤ㆍ정몽석 등 현대가문 오너들도 240억원의 사재를 내기로 해 주목받았다.

    범현대가의 장자격인 정 회장이 쾌척키로 한 5천억원은 100%가 정회장 개인의 재산이다. 이로써 해비치재단에 총 출연한 기금은 6천500억원이 됐고 그 재원은 모두 정 회장 개인이 소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이다.

    아산나눔재단 설립이 발표된 이후 정몽구 회장이 범현대가의 뜻있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두고 구구한 억측이 있었으나 이번 5천억원 사재 발표로 의문은 말끔히 해소됐다.

    정 회장은 처음부터 범현대가의 적통을 이어받는 사실상의 장손으로서, 또 가장 큰 기업의 오너로서 별도로 한몫의 기여를 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던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범현대가가 이렇듯 창업자의 뜻을 받들어 사회에 공헌하는 데 선의의 경쟁을 벌여나감으로써 미국의 록펠러 가문이나 카네기 가문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명문 기업가 집안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