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만기 집중된 이달 중순이 고비
  •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3위 경제권인 이탈리아가 `제2의 그리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국채 매입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만기 채권의 수익률은 7일 오전 5.50%를 기록했다. 지난 5일 5.56%에 비하면 다소 하락한 것이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채권 수익률이 6% 이상으로 상승하면 자금 조달 비용에 빨간 불이 켜지고, 7%대에 육박하면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길이 사실상 막혀 디폴트 위기에 몰리게 된다.

    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 6월 이탈리아 신용등급(Aa2)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려놓은 데 이어 조만간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의 애널리스트들은 스탠더드&푸어스와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이탈리아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가시권에 접어들었다고 밝혔고, JP모건체이스는 이달 중순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이 여러 단계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이탈리아 국채 만기가 이달 중순에 집중돼있는 점이 큰 부담이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만기 국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이탈리아 경제가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유로존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탈리아 출신인 마리오 드라기 ECB 차기 총재는 지난 5일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들의 국채를 무한정 매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상황이 다시금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우선 1조9천억 유로(2천870조 원)에 달하는 국가채무다. 이탈리아의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로 유로존 역내에서 두 번째로 높다.

    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연정의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고, 노동계를 비롯한 각계의 재정감축안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고 설득해낼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점도 위기의 중대한 요소다.

    이탈리아 정부는 ECB의 국채 매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달 12일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며 총 455억 유로(약 71조 원)에 달하는 재정감축안을 마련했다. 이는 2014년이었던 균형재정 달성 시점을 1년 앞당긴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적자 축소와 세수 확대를 위해 고소득층에 대한 연대세(solidarity tax)를 신설하려 했다가 스스로 철회하는 등 강도높은 긴축안으로부터 후퇴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귄터 외팅거 유럽연합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6일 "이탈리아의 정치권은 끔찍할 정도로 엉망"이라며 "ECB가 이탈리아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맹렬하게 비난했다.

    사정이 다급해지자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6일 저녁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연간 소득 50만 유로 이상의 고소득층에 대해 3%의 추가소득세(부유세)를 신설하고, 부가가치세 세율을 20%에서 21%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또 연금 개혁을 시행하고 재정균형을 위한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번 재정감축안의 의회 통과 여부를 정부 신임투표와 연계시키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상원은 7일 재정감축안에 심의에 착수했으며, 베를루스코니 총리측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가결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시장은 재정감축안이 확정되는 오는 20일의 하원 표결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노동계가 재정감축안에 반대하며 총파업에 나서고, 집권연정 핵심 파트너인 우파 북부연맹이 지방정부 지원금 축소에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탈리아의 위기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