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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수출했다. 불과 7대였지만 분명 ‘수출’이었다. 35년 뒤 이제 그 차를 만든 브랜드는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가 됐다. 품질 또한 세계 각국 전문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이야기다.
1990년대까지 현대차는 ‘밸류 포 머니(value for money)’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BBC>의 인기 프로그램 ‘탑기어’는 ‘엔진달린 세탁기’라고 혹평했다. 이렇게 ‘싸구려 차’의 대명사로 불렸던 현대·기아차는 2005년 정몽구 회장의 '품질경영' 선포 이후 절치부심 끝에 수 년 만에 세계인을 사로잡는 차를 계속 내놓고 있다.
포니와 스텔라, 엑셀로 ‘시장’을 열다
현대자동차의 첫 수출차인 ‘포니’는 이탈리아의 천재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을 맡았다. 깔끔한 디자인, 작은 차체에 알맞은 1.2리터의 미쓰비시 새턴 엔진을 실은 포니는 국내에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80년대를 주름잡은 포니2는 당시 우리나라 도로를 돌아다니는 차량 중 60%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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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기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대형차는 1978년 10월 독일 포드社와 합작으로 들여온 6기통 그라나다가 현대차의 ‘간판’이었다. 기술력의 한계였다. 현대차는 절치부심 끝에 1982년 스텔라, 1985년 그랜져, 1986년 포니2의 후속인 엑셀 등을 내놓았고, 해외 수출시장도 넓혀 나갔다.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SUV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미쓰비시와 손을 잡기도 했다. 1986년 현대차는 미쓰비시 파제로를 들여와 ‘갤로퍼’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이처럼 80년대 현대차는 외장은 자체 개발을 했지만 엔진, 서스펜션 등 핵심부품은 미국과 일본 기술을 가져와 베끼는 수준이었다.
이런 현대의 첫 도약은 1991년 ‘알파 엔진’을 단 스쿠프를 내놓으면서부터다. 현대차는 영국 리카르도社와 협력해 ‘알파엔진’을 개발했다. ‘알파엔진’은 1.5리터 SOHC 3밸브 방식이었다. ‘알파엔진’을 단 현대의 ‘스쿠프’는 92마력 자연흡기 방식과 129마력 터보차저 방식 트림이 출시됐다. ‘스쿠프 터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쿠페’였다. 대우 르망 레이서와 함께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액센트와 엘란트라, 쏘나타로 ‘마이카’ 시대 열다
이후 엑셀 후속으로 1994년 등장한 현대 액센트에도 이 ‘알파엔진’을 사용했다. 액센트의 엔진은 기존의 ‘알파엔진’ 출력을 낮추는 대신 연비를 높이는 개선을 거친 파워트레인을 사용했다. 액센트의 특징은 엔진보다 색상이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의 색상은 검은색 아니면 흰색이라고 할 정도로 개성이 없었다. 현대차는 여기에 새로운 생각(New Thinking)을 넣었다. 연보라색, 하늘색, 빨간색 등 온갖 색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귀여운 자동차'가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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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액센트를 내놓음과 동시에 중형차와 대형차 라인도 강화했다. 1985년 10월 첫 선을 보인 쏘나타는 스텔라 차체에 2.0리터 엔진을 얹은 것이었다. 그러다 1988년 6월 전륜구동 중형차 ‘쏘나타’를 선보였고, 1991년 2월에는 유선형 라인을 강조한 ‘뉴 쏘나타’를 내놨다. 패밀리카로써 최적이라는 ‘쏘나타’의 판매는 이때부터 급상승했다.
준중형차도 새로 선보였다. 1990년 10월 현대차는 스텔라의 후속이자 ‘전략차종’으로 엘란트라를 선보였다. 1.5리터와 1.6리터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엘란트라는 포르쉐 911과 질주하는 광고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1992년 1993년에는 최다 판매차종에 등극하기도 했다. ‘마이카’ 시대가 되면서 젊은 세대는 엘란트라에 빠져 들었다. 이렇게 엘란트라(아반떼의 수출명은 계속 엘란트라다)와 쏘나타는 ‘국민차’가 됐다.
그랜저도 달라졌다. 1992년 9월 현대는 미쓰비시와 함께 개발한 ‘뉴 그랜져’를 내놨다. 당시 ‘뉴 그랜져’는 미쓰비시의 ‘데보네어’라는 차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뉴 그랜져’는 구형 그랜져에 비해 유선형이면서 차체도 훨씬 커지고 성능도 우수해 소비자들에게 ‘사장님이 타는 차’라는 인식을 강하게 줬다.
현대차의 도전과 변화로 국내 자동차 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자신감을 얻은 현대는 1996년에는 쿠페 ‘스쿠프’의 후속인 티뷰론을 내놨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호황이었지만 수입차는 아직 거래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수입차는 언감생심이었던 젊은 세대들에게 날렵한 디자인과 기존 국산차에 비해 빠른 속도감을 가진 티뷰론은 엄청난 인기와 사랑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현대차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제 기반 자체가 휘청거린 것이다. 현대차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도약을 준비한다.
크기, 달리기보다 중요한 건 경제성과 안전, 디자인
90년대 초중반 호황기를 거친 사람들은 그러나 이미 커진 씀씀이를 줄이기 어려웠다. 자동차는 특히나 그 편리함을 버리기 어려웠다. 외환위기를 기회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이 생기면서 수입차 시장도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웠던 독일차, 미국차가 서울 시내에서 자주 눈에 띠기 시작했다.
현대차에게는 이런 변화가 고급 수입차와 맞먹는 편의사양과 안전, 디자인, 그러면서도 연비를 생각해야 하는 이중고로 다가왔다. 현대차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자 기아차를 인수했다. 그 전까지 업계 2인자로 불리던 기아차는 디자인은 그저 그래도 차가 튼튼하고 연비가 좋다는 인식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일본 마쯔다, 미국 포드와 기술제휴를 하고 있었던 기아차는 실제로도 1994년 가격 대 성능비가 뛰어난 ‘프라이드’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1998년 10월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차는 조직 슬림화에 맞춰 기술개발과 마케팅에 힘을 쏟았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도에 공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독자적으로 개발한 자동차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랜져XG’였다.
1998년 9월 출시된 ‘그랜져XG’는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대형차’라는 새로운 컨셉을 선보였다. 지금 봐도 멋진 디자인에다 뛰어난 성능의 자체개발한 엔진, 듀얼 에어백과 ABS 브레이크 기본 장착, 각종 편의사양 등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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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에는 프리미엄 세단으로 ‘에쿠스’를 선보였다. 거대한 차체는 운전기사를 둔 기업인이나 고위층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여기다 국내 최초로 3년 6만km 무상 수리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에쿠스’와 ‘에쿠스가 아닌 차’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2000년 6월에는 도시형 SUV ‘싼타페’도 내놨다. 싼타페는 근육질 디자인에 넓은 실내공간, 뛰어난 내구성과 성능, 안락한 승차감으로 젊은 층에서부터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정몽구 회장도 ‘싼타페’를 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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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에는 새로운 쿠페 ‘투스카니’도 내놨다. 당시 해외에서는 ‘현대 쿠페’로 판매됐던 ‘투스카니’는 현대차가 자체개발한 2.0리터 베타 엔진과 2.7리터 델타엔진을 장착했다. 여기다 ‘튜닝’을 해도 견뎌내는 단단한 프레임, 터보차져나 슈퍼차져를 장착하면 두 배 이상 출력이 올라가는 엔진으로 전 세계에 많은 팬이 생겼다. ‘투스카니’는 그 성능과 잠재력을 인정받아 국산차로는 처음으로 해외 언론의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내수 소비자들을 위한 변화도 있었다. 쏘나타는 ‘EF쏘나타’로 변신해 명실공히 ‘국민차’로 발돋움했다. 사회 초년생들조차도 취업과 동시에 차를 몰 수 있는 파이낸스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이들을 위한 ‘준중형급 세단’도 점차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아반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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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엘란트라 후속으로 선보인 ‘아반떼’는 사회 초년생부터 신혼부부까지 타기 좋은 차로 꼽혔다. 이후 경제성과 안전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1998년 3월 ‘올 뉴 아반떼’, 2000년 4월 ‘아반떼XD’를 내놓으면서 1.5리터, 1.8리터, 2.0리터 엔진을 장착한 다양한 모델을 선보였다. 이후 꾸준한 발전을 통해 ‘아반떼’는 ‘쏘나타’ 시리즈와 함께 현대차의 중요한 ‘캐쉬카우’가 됐다.
매너리즘에 빠진 현대차, 회장의 일갈에 정신 차리다
이렇게 외환위기의 파도를 극복한 현대차는 2002년 월드컵 등을 거치면서 점점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노조는 계속 파업을 했고 심지어 회사의 수익 30%를 내놓고 일부 경영권을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2003년 이후 새로 시작된 증시 랠리에서 다른 회사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오를 때에도 현대차 주가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몇몇 차종이 호평을 얻기는 했고 해외 수출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차는 싼 차’ ‘한국차는 불법이민자나 타는 차’라는 악평만 돌았다. 해외 판매가 늘어날수록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밀어내기식 수출’도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결국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나선다. 정몽구 회장은 ‘품질경영’을 선언하고 ‘가격이 아닌 성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정 회장은 그동안 느려터진 부품조달, 높은 공임, 문제점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등 AS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들은 후 불량률을 낮추고 북미시장에서는 10만 마일 무상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도 병행했다.
이와 함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라인’도 준비했다. ‘제네시스’는 그 이름처럼 ‘현대차의 새로운 세기’를 의미했다. ‘제네시스’는 출시도 되기 전인 2007년부터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2008년 1월 소비자들 앞에 나타난 ‘제네시스’는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차 중 최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호평을 얻었다. 특히 4.6리터 타우엔진을 얹은 수출형 제네시스는 북미 시장 등에서 ‘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라는 찬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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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2008년 10월 제네시스에 이어 ‘제네시스 쿠페’를 내놨다. 2.0리터 터보차져 엔진과 3.8리터 엔진은 자체 개발한 것을 장착했음에도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제네시스 쿠페’를 닛산 350Z나 포드 머스탱과 비교하기도 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세계 자동차 전문지들은 ‘제네시스 쿠페’에 큰 관심을 보였다.
2011년은 해외 언론의 찬사로 뒤덮인 해
정 회장의 ‘품질경영’ 노력은 5년 만에 큰 결실을 거뒀다. 2011년 벽두부터 현대차에 대한 세계 언론과 소비자들의 찬사가 이어진 것이다. 2011년 3월에는 북미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전문지 <JD파워>의 2011 내구품질조사(VDS)에서 3위를 차지했다. <JD파워>는 이 조사에서 현대차에 대해 “산업평균보다 4배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 초기품질(IQS)에 이어 내구품질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5월에는 신형 아반떼가 자동차 전문 조사기관 오토퍼시픽社의 '2011 자동차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고, 7월에는 美자동차 전문 조사기관 <스트래티직 비전>이 발표한 ‘2011 품질 만족도 조사’에서 쏘나타가 중형차 중 1위를 차지했다. 8월에는 에쿠스가 <JD파워>의 '상품성 만족도 조사'에서 전체 234개 차종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현대·기아차 4개 차종이 '2012 북미 올해의 차' 후보로 선정돼 자동차 기업 중 최다 후보를 내기도 했다.
현대차 측은 이 같은 성공이 현지전략형 모델 출시 덕분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가 물류운송비 절감, 유럽 현지인들의 취향 반영된 현지 전략 모델 개발을 위해 95년 터키 법인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현지화 전략을 시작한 것이 그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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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이후 북미와 유럽은 물론 러시아, 중국, 인도, 남미 지역의 기후상황, 도로여건, 현지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기능과 디자인을 적극 반영해 차량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인도 공장, 중국 북경현대기차, 북미 디자인센터와 유럽연구소,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현대차 체코 공장, 러시아 공장이 현재 가동 중이고, 2012년에는 브라질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이 같은 현지화 전략 모델로 현대차는 i10(인도)와 i20(유럽), 쏠라리스(러시아), 위에둥(중국) 등을 꼽았다.
현대차 “우리는 아직 배고프다”
특히 현대차의 쏠라리스는 러시아 내수시장에서 지난 6월에만 1만833대를 판매해 수입차 중 사상 최대의 월간 판매실적 기록했다.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7만6,649대에 달해 국내에서 판매된 BMW나 메르세데스 판매량의 몇 배에 달한다.
북미시장에서의 현대차 위상도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프리미엄 라인인 ‘제네시스’와 ‘에쿠스’는 소비자들은 물론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경제 전문지도 호평을 하고 있다. 美<포츈>은 ‘독일업체에 도전장을 낸 현대차’라는 제목의 에쿠스 시승기에서 “에쿠스는 운전석, 뒷좌석 어느 위치에서나 최고”라며, “현대차가 2010년 신형 에쿠스 출시로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언론의 평가는 판매로 이어졌다. 2011년 11월 말까지 현대차의 누적 판매량이 59만4,936대에 달한 것이다. 그 중 쏘나타와 아반떼는 각각 20만 대와 17만 대 이상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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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현대차의 판매량은 더욱 놀랍다. 2011년 11월 말까지 650만 대 이상을 팔아 시장 점유율 8% 중반을 넘어선, 세계 5대 자동차 브랜드로 발돋움한 것이다. 2012년에는 중국의 현대차 3공장(연산 40만 대) 완공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700만 대 판매와 9% 점유율 달성이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10여 년간의 실적을 보면 현대차의 품질경영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매출액은 3.6배, 계열사 수는 4배, 고용인원 1.9배, 자동차 판매대수는 2.4배, 순이익은 11배로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측은 “지금 나타난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도 현지 전략형 모델 강화과 유럽차 이상의 품질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