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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충남상회. 자전거포인 줄 짐작했는데 건어물점이다. 권성숙사장(57세)은 25년째 삼천리자전거로 건어물 배달을 해왔다고 한다. 어머님 때부터 따지면37년째인 것.
단골고객들에 대한 신뢰와 감사의 의미로 '자전거 간판‘을 달았다고 한다. 추억이 담긴 이색 간판들은 수원 못골시장의 자랑이다. 지난 4일 매서운 한파가 코끝까지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이 조그마한 골목시장엔 젊은이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하루 방문 고객수 1만5천명. 못골시장은 소위 가게마다 사연이 많아 '문화를 파는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수원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전통시장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 36명을 뽑아 그 중 17명을 못골시장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냈다. 못골시장의 청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살펴보았다.
남쪽입구에 들어서 '할머니야채' 근처, 어디선가 가녀린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못골참맛즉석두부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미연(19세)씨는 추위 탓에 손님이 뜸해진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더니 인기척이 보이자, 얼른 문 밖으로 나와 "두부사세요"를 외치기 시작한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손을 비벼가며 '두부사세요'를 외치고 있지만 고객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뚝심있게 계속 영업에 나선다.
미연씨는 올해 대학에 진학하게 된 예비대학생이다. 학비를 대야할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고한다.
행복건강원에서 시장체험을 하고 있는 대학 졸업반 김지현씨(23세)는 지나가던 손님이 발길을 멈추고 약재에 관해 문의를 하면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 주인에게 물어보고 밖으로 나와 고객에게 알려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현씨는 "시장이라고 하면 물건 품질이 별로 좋지 않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대형 유통점 못지 않게 청결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물건을 아주 소중히 다루시더라"며 "배우는 게 정말 많다"고 말한다.
문제점도 지적한다.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아 가격을 묻는 손님들을 응대할 때마다 일일이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야하는 게 번거로워요. 공산품처럼 가격이 딱 정해져 라벨이라도 붙어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래도손님들과 가격 흥정을 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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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학 졸업을 앞 둔 장수현씨(27세)는 ‘족발나라’에서 한파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족발이 담긴 무거운 솥을 옮기고 칼질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수현씨는 대학 졸업후 기업들의 요구는 높은데 자신은 충분한 ‘스펙’을 쌓지 못했다는 생각에 작은 사회경험이라도 쌓아 보고자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막상 시장체험을 해보니 상인 분들의 부드러움과 친절함에 정이 끌려요. 이 참에 장사를 제대로배워서 청년가게의 사장으로 성공해보고 싶어요. 여기서 일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지 않고내 가게라고 생각하고 일 할겁니다. 음식물 찌꺼기 처리처럼 궂은 일이 많아도 마냥 즐겁기만해요"라며 포부를 드러낸다.
못골휴식터에 들어서자 언뜻, 시장분위기와 맞지 않게 아주 젊어 보이는 남자가 마이크와 방송시설들을 열심히 점검하고 있다. "아 아 마이크시험중입니다" 큰 울림에 귀청이 깜짝 놀란다.못골시장 상인회의 이충환 회장(40세)은 상인회장치고는 매우 젊다.
이회장이 내건 못골시장의슬로건은 '웃음 한 바구니, 사랑 한 봉지, 못골종합시장!'. 이회장이 아르바이트생들 자랑을 한다. "수원시가 처음에 못골시장을 전통시장체험 공간으로 선정한 후 못골시장에 학생들을 좀 써달라고 제안했을 때만도 상인들 간엔 이 아이들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 반응이 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기대이상으로 일을 아주 열심히 잘 해주고 있어 지금은 자랑거리로 바뀌었죠".시간당 아르바이트 비용은 6천원, 의무 근로시간은 5시간이다. 수원시가 시간당 4000원, 상인이2000원을 부담한다. 그 돈도 상인들에겐 부담이다.
이 회장은 "이번 시장체험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청년들이 원한다면 시장상인들도 계속 같이 일할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혹은 정부가 더 지원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상인들 스스로 청년 고용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있을 것인가? 전통시장에서 흘리는 청년들의 땀방울이 희망의 씨앗인 것만은 분명하다.
취재= 김희일 기자, 사진= 양호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