品生品死 MK, 품질에 살고 품질에 죽는다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
  • 현대·기아차는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러도 세계 판매 순위 10위에 머물던 그저 그런 '값싼 브랜드'였다. 그러나 현대·기아차가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으며, 세계 5위 수준의 자동차메이커로 올라서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품생품사(品生品死)'. 품질에 살고 품질에 죽겠다는 정몽구 회장의 단호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매년 신년사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품질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정 회장은 지난 2005년 신년사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며 그 기본은 품질"이라 힘주어 말했다. 2006년에는 "품질은 제품의 근본적인 경쟁력인 동시에 고객의 안전과 감성적 만족에 직결되는 요소이며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라 역설했다.


  • ◆ 냉혹한 현실 마주한 MK…'품질'로 정면돌파

    1999년 현대자동차 회장으로 취임한 정몽구 회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직접 눈으로 수출현장을 둘러보고 싶어서다. 정 회장은 미국에서 현대차의 냉정한 현실과 마주한다. 미국 소비자들은 현대차의 품질에 불만을 표출하며 리콜을 요구했다. 심지어 현지 딜러들은 정 회장을 만나 좋은 차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차의 품질이 떨어져 팔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으나 품질 불량 차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회사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판매급감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 회장은 국내로 복귀하자마자 J.D.파워에 품질과 관련한 컨설팅을 받도록 지시했다. J.D.파워는 미국에 출시되는 신차를 대상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을 조사해 초기품질지수(IQS : Initial Quality Study)를 매긴다. IQS에 따라 미국시장 내 판매가 크게 좌우되는 만큼 J.D.파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J.D.파워는 당시 현대차에 5가지 사항을 지적했다고 한다. 첫째, 제품기획·설계·생산단계에 고객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둘째, 고질적 품질 문제는 모델이 바뀌어도 재발하고 있다. 셋째,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책이 불완전해 시장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넷째, 차량 한대당 문제발생 건수가 전체 브랜드 평균 대비 2~3배 높다. 다섯째, 협력업체 품질관리가 부족하다.

    정 회장은 J.D.파워의 충고를 허투루 듣지 않고, 강력한 품질 혁신 드라이브에 나섰다. 매월 품질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또 정 회장은 신차가 출시될 때 마다 직접 차를 몰아보며 사소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냈다. 개발담당자들도 정 회장의 열정과 전문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자신감을 회복한 정 회장은 미국 시장에 '10년 10마일 보증'이라는 히든카드까지 뽑아들었다.   

    성과는 즉각 나타났다. 2001년 7월 미국의 대표적 시사지 타임은 '현대차 고속 질주(Hyundai in High Gear)'라는 제목 아래 "10년 10만 워런티 제공을 통해 현대차의 품질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소비자 만족도 역시 향상되었다"며 "싼타페가 미국 최고 콤팩트 SUV에 선정된 것은 현대차 제품 개발 부문의 비약적 발전을 입증한 것"이라 평가했다.

    같은 해 12월 비즈니스위크도 "현대차가 미국 소비자의 니즈를 적극 반영한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선보이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영체제를 갖추어 세계 5대 자동차업체로 도약하는 중"이라 보도했다.   

    현대·기아차는 이후로도 계속 승승장구하며 세계 5대 자동차업체로 올라섰다. 하지만 정 회장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정 회장은 아직도 양재동 사옥의 품질상황실 앞에 'J.D.파워의 충고'를 액자로 걸어놓고 늘 초심을 다지고 있다.   



  • ◆뱁새가 황새를 따라잡다…토요타 맹추격

    품질에 목숨을 건 현대차의 성장속도는 무서웠다. 저 멀리서 팔짱끼고 현대차를 지켜보던 토요타도 바짝 긴장할 정도였다. 사실 1999년만 하더라도 J.D.파워 IQS 기준 현대차의 차량 천대 당 결함 건수는 250여개에 달했다. 당시 토요타는 130여 건으로 품질점수에 있어 현대차와 더블스코어를 보였다.

    정몽구 회장은 토요타를 따라잡으라는 특명을 지시한다. 자동차 시장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승리한다면 다른 시장에서의 경쟁도 유리할 것이란 판단 하에서다. 이를 위해선 소비자들의 구매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J.D.파워에 호평을 받는 방법이 가장 빨랐다. 토요타가 미국시장에 자리 잡기까지 펼친 전략도 이것과 같았다. 토요타를 잡겠다는 현대차의 패기는 '뱁새가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지지'식의 조롱으로 돌아왔다.  

    남들이 웃거나 말거나, 지난 2004년 현대차는 결국 토요타의 팔짱을 풀어버렸다. 현대차 J.D.파워의 IQS에서 사상 처음으로 토요타를 제치고, 일반 브랜드 부문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특히 차종별 평가에선 쏘나타가 캠리를 누르고 중형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미국의 자동차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Automotive News)'는 이를 두고 '사람이 개를 물었다(Man Bites Dog)', '지구는 평평하다(The Earth is flat)'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즈, USA투데이 등 해외 유수 언론들 역시 앞다퉈 현대차의 '미친 품질 향상'을 보도하고 나섰다.

    연이어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2004년 말 토요타의 부사장급 임원이 당시 현대차 품질총괄본부의 서병기 부사장에게 각사의 핵심공장을 서로 공개하면 어떻겠느냐는 편지를 보낸다. 토요타의 일본 나고야공장과 현대차의 울산공장을 서로 벤치마킹하자는 것이다. 결과는 현대차의 거절로 끝났지만 토요타가 현대차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데 의의가 있는 사건이었다.

    물론 생산규모면에서 토요타는 현재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또 하이브리드 차량을 앞세워 글로벌 친환경차 시장에서도 1위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역시 최근 중국 4공장 신설 및 각 공장 증설을 통해 토요타의 규모를 추격하고 있다. 친환경차 시장에서도 하이브리드는 물론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 전방위적인 대응을 통해 토요타를 긴장시키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지속적인 혁신 드라이브는 현대차가 경쟁업체들을 꺾고 세계 최강의 자동차 업체로 우뚝 서기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진제공=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