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의 기아차 챙기기 본격화와 '정의선'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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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고작 7개 나라 뿐입니다. 자동차 산업은 한국인의 자존심입니다."(2000년 12월 양재사옥에 입성하며)

    기아차와 합병 1년여만에 기적을 만든 MK가 자동차에 대해 갖는 자부심은 상상 이상었다. MK는 양재 사옥 입주전 밤을 새워가며 직접 실내색상과 장식품을 고르면서 인테리어를 지휘할 만큼 '한국 자동차 메카'로 거듭날 '양재시대'의 기초를 다져갔다. 

    MK는 기아차 정상화외에도 해야 할 일이 쌓여있었다. 당시 제휴사인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상용차합작문제와 월드카 공동개발 등 각종 현안들을 매듭지어야 했고, 기아차 주력 모델 개발이나 인천제철, 현대강관, 현대모비스 등을 묶어 현대자동차 그룹을 본격 출범시키는 일도 쉽지않은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 국내 안팎의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일은 기아차 부활의 본격화를 위해 치러야 할 발등의 불이었다.

    ◆ "빛바랜 옵티마 효과"…기아차 시련과 도전

    통합초기 승승장구하던 기아차는 2003년 침체된 내수경기탓에 승용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두 회사의 시너지를 방해하는 변수들이 차츰 고개를 든 것이다.   

    수입차 임원을 지냈던 전 기아차 관계자는 "당시 기아차 영업력이 갈수록 악화됐다. EF쏘나타와 풀랫폼을 공유했던 기대작 옵티마가 실적이 저조했다. 비스토도 단종 까지 몰렸다. 리오나 스펙트라처럼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모델조차 제대로 못 팔았다. 영업 부문이 움직이질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현대차도 당시 GM대우 르노삼성의 공세에 내수 점유율 하락을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동생인 기아차가 제 몫을 못 해내니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겠냐는 안타까움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기아차 부진을 기아의 영업력 부족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내부 전략에도 문제가 있었다. 영업현장에서 현대차 라인업과 판매 간섭이 일어났다. 형과 아우의 차별화가 되지 않은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차종마다 맞붙어 싸우는 형국이었다. 현대의 뉴EF쏘나타와 기아의 옵티마가 그 전형적 사례다.

    기아차는 2000년 7월 옵티마를 출시했다. 옵티마는 현대·기아 통합 후 최초의 플랫폼(라인 작업대) 공유 차량으로 화제를 모았다. EF쏘나타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옵티마는 EF쏘나타와 동력전달장치와 차체 기본 구조가 같다. 옵티마는 시판 4개월 만에 EF쏘나타를 제치고 중형차 판매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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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신차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옵티마 출시 6개월 만인 2001년 1월 현대차가 전격적으로 뉴EF쏘나타를 내놓으면서 기아차는 결정타를 맞았다. 어이없는 전략 실책이었다. 현대와 기아는 통합 직후 R&D(연구개발) 부문을 통합했지만, 나머지 부문은 상당 기간 각자 가동시켰다.

    무엇보다 마케팅 부문이 따로 놀다 보니 차종 차별화나 판매 시점 등에 대한 내부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한 지붕 두 가족'이 서로 시장을 뺏고 뺏기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MK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03년 2월 두 회사의 마케팅 부문을 통합, 마케팅총괄본부를 신설해 주목을 받았다.

    여기엔 뉴EF쏘나타와 옵티마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최적의 효율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면 현대차가 언제라도 기아차의 마케팅을 지원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진 것이다. MK가 직접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준 것이다.

    이때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당시 정의선 현대차 부사장이 기아차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MK의 '기아차 챙기기' 신호탄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단지 플랫폼 통합으로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브랜드의 차별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두 회사가 똑같이 풀 라인업·대량 생산의 종합 자동차 메이커 지향에서 각자의 장점을 특화함으로써 상호 잠식을 최소화해야 하는 전략으로의 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전략 수정의 대회전 속에서 현대차에는 또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지금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2000년대 초중반은 선진국 메이커들에 비해 노동 유연성이 크게 떨어졌다. 경직된 노사관계 탓이다. 매년 열리는 임단협, 2년마다 열리는 단협 시즌이면 파업 등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졌다.

    당시 이같은 고충은 2003년 아산공장 EF쏘나타 택시 라인을 울산 5공장으로 옮기는 데 6개월, 2000년 울산 2공장 트라제 라인을 4공장으로 이관하는 데는 9개월 간의 협상을 거쳐야 했던 형편에서 잘 드러난다.

    ◆ 車역사 새로 쓴 '15년'…품질혁명 시험대에

    이같은 시련과 도전속에 고속질주 15년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합병한 이후 자동차 업계에서는 유례가 없는 질적·양적 성장을 실현했다. 
     
    지난해 현대차 매출은 87조3076억원, 기아차 매출은 47조5979억원을 기록해 1999년 14조2445억원과 7조9306억원보다 500%가 늘어났다. 15년 사이 현대·기아차의 매출 규모는 5배 이상 커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급격히 증가했다. 현대차의 경우 1999년 9061억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8조3469억원으로 8배이상 늘어났고, 기아차는 488억원에서 3조5223억원으로 무려 71배나 성장했다. 

    이같은 폭풍 성장은 지난해 12월 신형 제네시스 발표회에서 절정을 보여준다. 정몽구 회장은 "세계 명차와 당당히 경쟁할 자신이 있다"고 선언했다. 제네시스 경쟁상대로 BMW, 벤츠의 플래그십 차량을 제시한 것. 미국, 일본차를 넘어서 이제는 독일 브랜드까지 잡겠다는 자신감의 표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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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회장이 실천해온 현장경영과 품질혁명이 이런 자신감과 경쟁력을 가능하게 했다. 그룹의 모든 조직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고 세계가 놀랄 만한 '현대속도'라는 결실을 맺게 한 동력이다.  
     
    올해도 정 회장은 유럽과 중국으로 날아가 현장에 매달렸다. 품질 신뢰회복이  초점이다.
    유럽에서는 시장수요에 탄력적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강조하면서,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 현대차 체코공장을 방문해 유럽 현지 전략 차종들의 생산 품질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열정을 보였다. 
     
    현대·기아차 유럽 공장은 지난해 각각 30만3000대와 31만3000대를 생산하며 가동률 100%를 상회하는 생산실적을 나타냈다.
     
    중국에서도 정 회장은 현지 '7개 공장 확보, 연산 230만대 체제 진입'이라는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중국 충칭시에 현대차 4공장 건설이 유력하다. 현대차그룹은 2002년 12월 중국 베이징에 첫 공장을 세운 이래 지금까지 중국에만 6개의 공장을 가동 중이다. 2016년 가동목표인 충칭시 4공장을 포함해 총 7개의 공장에서 230만여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생산 안정화는 계열사 간 수직계열화와도 맥을 같이한다. 특히 지난해 현대하이스코의 냉연 사업을 가져가고 고로(용광로) 3기를 가동하는 등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의 면모를 갖추면서 올해 수직계열화를 통한 그룹 효율성 강화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현대제철은 올해 목표로 한 강판 판매량 1970만t중 31%의 비중에 해당하는 610만여t을 냉연사업에서 이루겠다는 방침이다. 이 가운데 약 400만t은 현대차에 공급하는 차 강판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매출액 대비 5% 이상 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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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현대모비스도 더욱 안정적 여건이 마련됐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지난해 17조51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2012년 대비 1조원 가까이 증가하며 글로벌 부품사의 면모를 보였다. 
     
    그룹계열사의 경영 전략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정 회장은 호평중인 신형 제네시스와 지난 7일 출고를 시작한 신형 쏘나타 등 주력 신차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데 집중키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토요타의 대규모 리콜과 GM 등 미국 3사 파산,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현대차 성장의 한 배경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올해 현대차가 진정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보일 신형 제네시스와 LF쏘나타가 기존 이상의 실력을 발휘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가 정 회장의 품질혁명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기라는 얘기다. 각국의 유력 자동차 브랜드와 소비자들이 정 회장과 현대차를 지금 주시하고 있는 이유다.